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현대자동차그룹을 또 다시 압박하고 나섰다. 주요 계열사에 14조원 가량이 초과자본 상태라며 이를 자사주 매입에 써 주가를 끌어올리라는 주문이다. 엘리엇은 현대차그룹 주요 계열사 지분을 2~3% 들고 있는 주주다.
▲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 총괄부회장 |
엘리엇은 지난 13일 "현대차와 현대모비스가 최소 14조원 규모의 초과자본금을 자사주 매입에 투입해주주들에게 환원하라"는 내용을 담은 서신을 현대차그룹 이사진에게 보냈다며 이를 공개했다.
엘리엇은 "현대차는 8조~10조원, 현대모비스는 4조~6조원에 달하는 초과자본을 보유하고 있다"며 "과거 잉여현금흐름도 불투명한 운영으로 상당한 자본이 비영업용 자산에 묶여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 강남 글로벌비즈니스센터부지(옛 한전부지 매입), 현대건설 인수 등을 두고 하는 지적이다.
엘리엇은 이어 "주주환원 수준이 업계 평균에 지속적으로 미달하고 있다"며"현금흐름에 대한 일관되지 못한 보고 방식으로 인해 그룹의 사업을 통해 발생하는 실제 흐름이 왜곡되거나 불투명하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주주들에게 초과자본금을 환원하고 현재 저평가된 가치를 고려해 자사주 매입 방안을 우선적으로 검토하라"며 "모든 비핵심 자산에 대한 검토를 실시할 것"을 주문했다.
이 같은 주장은 엘리엇이 지난 8월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콘웨이 맥켄지에 의뢰해 분석한 보고서에 기반한 것이다.
콘웨이 맥킨지는 현대차의 시가총액 중 현금 비중이 수 년 째 50% 가량으로 동종 기업 평균인 18%(작년 기준)보다 크게 높다며 "이는 투자자들이 재무상태표 상의 자산에 모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현대자동차의 현금을 통한 가치 창출능력에 대한 신뢰가 결핍됐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 엘리엇이 '주주들의 희생이 뒤따르는 비효율적 현금사용'이라고 지적하며 제시한 현대차 재무상태 개요/자료=엘리엇 매니지먼트 |
엘리엇은 지난 4월 현대차그룹 계열사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의 주식을 1조5000억원어치 보유하고 있다고 밝힌 이후 현대차그룹에 경영 개선을 지속적으로 주문하고 있다. 그룹 지배구조 개선안에는 반대 의사를 밝히고, 별도로 만든 방식을 제안하는 식이다.
지난 9월에도 현대차그룹 이사진에 서신을 보내 "현대모비스의 AS(애프터서비스)부문을 떼어 현대차에 합병시키고, 남겨진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를 합병시키라는 개편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 같은 엘리엇의 접근은 투자차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행동주의 펀드 계열의 전형적 방식이라는 해석이다. 이번 주장도 자사주 매입으로 현대차그룹 3사 투자 이후 주가 하락으로 본 손실을 메우려는 차원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코스피 시장에서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의 주가(보통주 기준)는 올 초 각각 주당 16만원, 3만4000원, 27만원선이었지만 최근에는 10만원, 2만8000원, 19만원선으로 20~40% 가량 하락한 상황이다.
이번 엘리엇 주장에 대해 현대차는 별도의 공식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다만 지난 9월 엘리엇 제안 때에는 "특정 주주만 주요 사안 논의나 의사결정에 참여시키는 것은 규정상 맞지 않는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일각에서는 엘리엇의 압박 재개가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작업 재시동이 임박했다는 걸 시사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