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넣고 세차만 하던 주유소가 바뀌고 있다. 택배 접수는 물론 식료품 판매, 정보기술(IT)을 접목한 미래형 설비를 갖추는 등 다양한 실험이 진행중이다.
이런 변화는 주유소가 '앉아서 돈을 번다'는 말이 무색해졌기 때문이다. 한국주유소협회에 따르면 2010년 1만3000곳에 이르렀던 국내 주유소는 과열경쟁 탓에 문을 닫는 곳이 많아져 2017년 3월 1만1996곳으로 약 7년새 7.7% 줄었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유업계에서 나오는 배경이다.
21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S-Oil 등 국내 정유 4사는 제각각 자사 브랜드를 단 주유소에 다양한 변화를 주고 있다.
주유소를 지역 물류 거점으로 활용하는 움직임이 대표적이다. SK이노베이션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기업 자산 공유 인프라 구상'에 따라 자회사 SK에너지가 보유한 전국 주유소 3600여개를 물류 허브로 조성하는 방안을 모색해왔다.
▲ 주유소 거점 택배 서비스 '홈픽' 개념도. (사진: SK에너지) |
그 결과물로 SK에너지는 지난 20일 GS칼텍스와 함께 전국 주유소를 택배 집하장으로 쓰는 '홈픽(Homepick)'을 선보였다. 이달부터 서울 전역을 대상으로 시범 서비스에 들어간다.
홈픽을 이용하는 고객이 네이버, 카카오톡, CJ대한통운 앱, 홈픽 홈페이지(www.homepick.com) 등으로 택배를 접수하면 중간 집하업체인 물류 스타트업이 물품을 수거해 주유소로 옮기고 CJ대한통운이 배송하는 방식이다. 주유소의 남는 공간을 활용해 추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다.
GS칼텍스는 곧 고급 편의점과 카페를 결합한 주유소를 선보일 예정이다. 미국의 신개념 편의점으로 웬만한 대형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보다 높은 매출을 올리는 '와와'를 벤치마킹한 전략이다.
주유소가 대부분 교통이 편리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는 점과 GS리테일 등 그룹 내 유통계열사가 있어 힘을 받을 수 있는 실험이다. GS칼텍스는 이를 위해 온라인 플랫폼 기반 자동차 관리 서비스업체 '카닥'에 전략적 투자해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주유소를 미래형 공간으로 바꾸는 실험도 현재진행형이다. 에쓰오일(S-Oil)은 주유소에 차를 몰고 온 고객이 신용카드를 직원에게 건네지 않고도 주유비를 결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업무협약(MOU)을 이달 1일 KT와 체결했다. S-Oil은 주유소에 사물인터넷을 설치해 센서가 고객의 차량을 인식하면 주유비를 자동으로 결제하는 시스템을 계획하고 있다.
▲ 현대오일뱅크 복합에너지스테이션 조감도. (사진: 현대오일뱅크) |
주유소와 가스충전소를 합치는 수준을 넘어서 차량용 연료 전 품종을 한 곳에서 판매하는 '기지'를 만들려는 시도도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휘발유, 경유는 물론이고 액화석유가스(LPG), 수소, 전기 등 차량용 연료 전 품종을 판매하는 국내 1호 복합에너지스테이션을 울산에서 운영중이다.
과거 휘발유, 경유, LPG 또는 LPG와 수소를 동시에 판매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차량용 연료 전 품종을 한곳에서 판매하는 것은 현대오일뱅크가 처음이다.
이처럼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차원에서 주유소를 활용한 새로운 비즈니스를 발굴하려는 노력들은 더 다양하게 나타날 전망이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성장 한계를 맞은 주유소를 되살리려는 노력은 정유사 특징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며 "앞으로도 주유소는 다양한 산업과 융합이 이뤄지는 실험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