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 동안 공적자금 수혈을 받으며 국책은행인 산업은행 아래 있던 대우조선해양이 현대중공업그룹 품에 안긴다.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지주가 1개월여 전 발표한 합의안을 확정해 본계약을 맺은 결과다.
다만 이걸로 전부 마무리되는 건 아니다. 양측 거래가 완전히 종결되려면 본계약 이전 건너 뛴 실사를 거쳐야 하고, 국내외 기업결합 심사 등 여러 문턱도 넘어야 한다.
현대중공업그룹과 산업은행은 8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사에서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관한 본계약을 체결했다. 현대중공업지주 권오갑 부회장, 산업은행 이동걸 회장이 직접 서명했고 현대중공업 가삼현 사장과 최대현 산업은행 기업금융부문 부행장이 배석했다.
이번 계약은 지난 1월31일 현대중공업과 산업은행이 맺은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관한 기본합의서를 확정하는 것이다.
합의안은 현대중공업이 1조2500억원 규모의 물적분할을 통해 '한국조선해양엔지니어링(가칭)을 설립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산업은행은 보유 중인 대우조선해양 지분 전량을 출자하는 대신 한국조선해양의 주식(전환우선주 1조2천500억원 포함)을 받는다. 한국조선해양은 유상증자로 1조2500억원을 추가해 대우조선에 차입금 상환용으로 투입한다.
민영화라고 하지만 산업은행이 아예 손을 떼는 것은 아니다. 한국조선해양의 최대주주는 현대중공업지주, 산업은행은 2대주주가 된다. 한국조선해양은 대우조선뿐만 아니라 현대중공업(사업법인),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등 4개 조선사를 자회사로 둔 세계 최대 조선그룹의 지주사가 된다는 게 산업은행 설명이다.
산은 이 회장은 "작년 권 부회장과 한국 조선업의 미래를 걱정하며 나눈 담론이 이런 결실을 맺게 됐다"며 "중국과 싱가포르 등 경쟁국의 추격 속에서 산업재편의 적기를 놓치면 우리 중공업도 과거 일본처럼 쇠락할 수밖에 없다는 절박함이 있었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지주 권 부회장도 "이번 대우조선해양 인수는 우리나라 조선산업의 성장과 발전을 주도해 온 현대중공업그룹의 사명감과 책임감에서 출발한 것"이라며 "새로 출범하는 한국조선해양은 컨트롤타워 겸 연구개발(R&D) 및 엔지니어링 전문회사로 발전시킬 것"이라고 화답했다.
산업은행 측은 대우조선이 국책은행 관리에서 벗어나 조선업에 전문성을 가진 현대중공업 그룹에 편입됨으로써 시장을 선도하고 사업도 확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날 체결된 본계약서에는 ▲현대중공업 및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실사 실시 ▲'중대하고 부정적인 영향'이 발생되지 않는 한 거래 완결을 위해 최선의 노력 경주 ▲기업결합 승인 이전까지는 현대 및 대우 양사의 독자 영업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위법한 행위 금지 등의 내용이 담겼다.
양측은 이날 계약식에서 대우조선해양 임직원의 고용안정 및 협력업체 기존 거래선 유지 등 상생발전방안을 담은 공동발표문을 발표했다. 또 학계·산업계·정부가 참여하는 '한국조선산업 발전협의체(가칭)'를 구성해 기자재업체, 협력업체 등 조선 산업 생태계를 복원시키겠다는 방안도 제시했다.
한편 이날 거제도에서 상경한 대우조선해양 노동조합원 500여명은 정오께부터 산업은행 본점을 둘러싸고 '동종업체 매각 반대' 등을 주장하는 시위를 벌였다. 현대중공업에 매각할 경우 대규모 구조조정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반발을 의식한 듯 이 회장은 기자회견 도중 예정에 없던 신임 대표이사 내정 소식도 전했다. 이날 산업은행 주도의 대우조선해양 경영정상화 관리위원회는 이성근 현 대우조선해양 부사장을 신임 대표 후보로 확정했다. 이 대표 후보는 1979년 대우조선공업 입사해 현재 조선소장을 맡고 있다.
앞서 지난 1월말 합의안 발표 직후 대우조선 정성립 사장은 경영정상화 관리위원회에 사의를 밝혔다. 이날 계약식에도 대우조선해양 경영진은 참석하지 않았다. 대우조선해양은 오는 14일 이사회, 29일 정기주주총회를 열어 신임 대표이사 선임절차를 마무리할 에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