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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낀 현대중공업, 두산 '마지막 퍼즐' 푼다

  • 2020.09.29(화) 11:58

[워치전망대-이슈플러스]
현대중공업지주, 두산인프라 인수전 참가
소송리스크-인수자금 부담 덜고 산은과 '도전장'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를 검토한 사실이 없다."(지난 8월7일)
"두산인프라코어 예비입찰 제안서를 제출했다."(지난 9월28일)

현대중공업지주가 두산인프라코어 인수 추진에 대한 조회 공시 답변을 53일 만에 뒤집고 이번 인수합병(M&A)의 가장 강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재무적 투자자인 산업은행인베스트먼트(KDBI)를 통해 '실탄'도 확보했다. 현대중공업지주가 두산그룹 채권단인 산은과 손잡고 두산 재무구조 개선계획(자구안)의 '마지막 퍼즐'(두산인프라코어)을 맞추게 된 셈이다.

이번 딜이 성사되면 국내 건설기계 시장에도 큰 파장이 예고된다. 현대중공업지주 계열의 현대건설기계와 두산인프라코어가 합쳐지면 '공룡' 굴삭기 업체가 탄생하게 된다. 과거 한 회사였다 분리 매각된 대우조선해양(옛 대우조선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옛 대우중공업)가 현대중공업지주 지붕 아래에 다시 뭉치게 되는 것도 관심이다.

◇ 현대중공업 마음 바꾼 이유

지난 28일 현대중공업지주는 두산인프라코어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위한 예비입찰에 제안서를 제출했다. 이날 예비입찰에는 MBK파트너스, 글랜우드PE 등 사모펀드도 참여했다. 지난달 초까지 '인수 의사가 없던' 현대중공업지주의 마음이 바뀐 것은 2가지 이유로 분석된다.

우선 두산인프라코어의 잠재적 '소송 리스크'가 없어지며 매물 가치가 높아졌다는 점이다. 2011년 두산인프라코어는 종속기업인 '두산인프라코어 차이나'의 기업공개(IPO)를 전제로 3800억원을 투자한 사모펀드와 현재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 사모펀드는 '두산인프라코어 차이나'가 상장에 실패하자 지분 매각에 나섰지만 두산 측이 실사자료를 제공하지 않는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가만 7151억원에 이르는 재판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이 컸지만 두산은 M&A 결과와 상관없이 소송 결과에 책임지겠다고 나서며 소송 리스크를 제거했다.

여기에 재무적 투자자 KDBI가 나서 현대중공업지주에 힘을 보태면서 인수 자금 부담을 덜었다. 두산인프라코어의 '몸값'은 1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현재 두산인프라코어의 시가총액(1조94200억원)에서 두산중공업이 보유한 두산인프라코어 지분 36.07% 가치와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한 값이다. 2005년 두산중공업 컨소시엄이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지분 51%를 인수한 가격이 1조6880억원이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그룹은 대우조선해양 인수도 추진하고 있어 자금 상황이 빠듯하다. 최근에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가 터지면서 수주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이 가운데 산은이 인수자금 지원에 나선 것이다.

두산중공업의 채권단인 산은 입장에선 두산인프라코어 인수전 흥행이 반가운 일이다. 현재 두산그룹은 자구안 이행을 통해 1조7000억원 가량의 유동성을 확보했는데 '마지막 퍼즐'인 두산인프라코어를 남겨두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등 매각 작업이 꼬인 산은 입장에선 두산의 채권단 체제 '조기 졸업'이 절실한 상황이다.

2019년 3월 대우조선해양 인수 본계약을 위해 계약식장에 들어서는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오른쪽)과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부회장(왼쪽)/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지난해 현대중공업그룹은 19년간 주인을 찾지 못해 산은 등 채권단 관리에 있던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기도 했다. 당시에도 산업은행은 현물출자 방식을 통해 현대중공업그룹의 인수 부담을 줄여줬다.

한 업계 관계자는 "두산인프라코어가 전차 엔진 등 군수 물자 생산도 맡고 있어 해외 자본이나 사모펀드에 매각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산은 계열의 산은인베스트먼트가 재무적투자자로 현대중공업지주와 손잡은 것을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 '6조 건설기계 공룡' 탄생할까

현대중공업지주가 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하게 되면 국내 건설기계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국내 굴삭기 시장은 두산인프라코어와 현대건설기계, 볼보건설기계코리아 등 3사가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두산인프라코어가 1등이고, 현대건설기계와 볼보건설기계가 2~3위를 다툰다"고 전했다. 두산인프라코어와 현대건설기계의 '규모의 경제'가 더 강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두산인프라코어는 경기의 흐름을 타지만 국내 1위다운 실적을 거두고 있다. 올 상반기 매출은 3조9849억원, 영업이익은 3353억원이다. 여기서 이번 매각 대상에서 제외된 밥캣의 실적을 뺀 건설기계와 엔진 사업부는 매출 1조9801억원, 영업이익 1842억원이다. 건설기계·엔진 부문 영업이익률은 9.3%다.

두산인프라코어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상위 10위 안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해외 언론 인터내셔널 컨스트럭션(International Construction)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전세계 건설기계 순위에서 '두산'(두산인프라코어+밥캣)은 시장점유율 3.3%로 9위를 차지했다.

현대건설기계도 올 상반기 매출 1조3047억원, 영업이익 526억원을 거뒀다. 두산인프라코어에 비하면 영업이익률이 4%대로 저조한 편이지만 이번 딜에 성공하면 시너지가 날 것으로 기대된다. 이동헌 대신증권 연구원은 "현대건설기계 입장에선 계열사가 되는 두산인프라코어와 공급망, 유통망, 기술 공유 등의 시너지를 확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작년 기준 두산인프라코어(밥켓 제외)와 현대건설기계 두 회사의 매출을 더하면 6조5787억원에 이른다. 다만 M&A에 성공하더라도 합병은 장기 과제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해외 시장에서 두산인프라코어가 가지는 브랜드력이 높고 입찰 과정에서 오히려 불리해질 수 있어서다. 이동헌 연구원은 "매각이 완료되다고 하더라도 사업영역이 겹쳐 합병을 진행할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국내기업의 역사적 측면에서도 이번 딜은 흥미롭다. 성사될 경우 두산인프라코어와 대우조선해양이 다시 한 '지붕' 아래서 지낼 수 있게 되어서다. 두 회사의 전신인 대우중공업과 대우조선공업은 1994년 합병해 7년간 '동거'한 사이다. 현재 진행중인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과의 해외 기업결합 승인까지 모두 성공하면 대우조선해양과 두산인프라코어가 다시 한 그룹사 지붕 아래 지내게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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