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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세 동갑내기' 박세창·조원태의 닮은꼴 운명

  • 2019.04.04(목) 09:52

입사 후 경영행보 판박이
빨라진 승계 시계.. 경영능력 검증 돌입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비슷한 삶을 살았다. 두 사람 모두 운수업을 한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았고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그룹의 수장으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쳐왔다. 4형제라는 점도 일치한다. 그리고 얼마 전 자의반, 타의반으로 경영권을 내려놓게 된 것까지 닮았다.

그래서인지 아들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과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의 인생도 묘하게 겹친다. 일찌감치 후계가 결정된 터라 경영권을 물려받기 위한 두 사람의 행보는 판박이다. 두 사람은 2000년대 초반 아버지 회사에 각각 입사했다. 20년도 채 안되는 짧은 시간에 알짜 계열사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적잖은 업적을 냈고 재계의 평가도 비슷하다. 심지어 하루 차로 퇴진한 아버지 때문에 갑작스레 경영 전면에 나서야 하는 예상치 못한 운명까지 서로를 닮았다.

◇ 흥망 경험한 3세 경영인

두 사람은 일찍이 후계자로 지목됐다. 박 사장은 금호가의 계열분리 과정에서, 조 사장은 한진가의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미래 항공 업계를 이끌 3세 경영인으로 낙점됐다.

단지 '장남'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두 사람은 올해 각각 입사 17년, 16년차로 금호가와 한진가의 흥망성쇠를 모두 경험했다. 성장과 위기를 거듭한 회사에서의 경영 수업은 그 자체만으로 탄탄한 기반이다.

박세창 사장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연거푸 인수하며 재계 순위 7위까지 올라서던 때를 몸소 경험했다. 당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자산 규모는 26조원으로, 1946년 택시 회사로 시작한 이래 가장 성장했던 시기였다.

영광의 순간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승자의 저주'란 말이 금호 일가의 꼬리표가 될 정도로 회사는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무리하게 사들인 값을 치뤄야 했다. 계속 쌓여가는 빚에 인수한 회사를 도로 내놔야 하는 상황이 초래됐고 그룹의 양대 핵심 계열사인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를 워크아웃까지 몰아갔다. 재계 순위 7위를 찍은지 불과 1년도 안돼 회사는 산산조각이 났다. 박 사장은 입사 8년 만에 회사의 극단을 모두 경험했다.

조원태 사장은 그나마 형편이 좀 나았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외형 확장에 힘쓰던 한진그룹이 2000년대 들어선 내실 경영에 중점을 둠으로써 사세 확장에 따른 리스크는 크게 경험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도 한진해운의 파산은 뼈아픈 교훈으로 남아있다. 한진해운은 세계 10위 안에 이름을 올린 국내 유일 선사였다. 2008년 리먼사태 여파로 운임료가 호황기 절반에 떨어지는 등 해운업 불황이 시작됐고 용선료로 인한 손실이 눈덩이 처럼 불어나면서 한진해운은 10년간 악화일로를 걸었다.

그 결과 한진해운은 지난 2017년 창립 40년 만에 간판을 내렸고 수송보국(輸送報國)을 이루겠다던 할아버지 고(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꿈도 꺾였다. 조 사장이 대한항공 사장에 오른지 불과 한달만의 일이였다.

◇ 아직 짙은 아버지의 그림자

회사의 흥망(興亡)을 두루 경험한 덕에 두 사람은 경영 전반의 이해도와 대처 능력에 있어 남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박 사장은 사장 취임 2개월 만에 그룹내 정보기술(IT) 계열사 아시아나IDT를 상장시킨 데에 후한 점수를 받았다. 아시아나IDT는 상장 추진 때만 해도 공모가(1만 5000원)가 희망공모가(1만 9330~2만 4100원)를 크게 밑돌고 공모 주식수까지 줄여야 하는 굴욕을 맛봤다.

상장 철회의 기로에 몰렸지만, 박 사장은 이를 강행했고 결국 아시아나IDT는 안정적으로 국내 증시에 입성했다. 지난해 11월 상장 이후 줄곧 상승세를 이어가며 현재는 아시아나항공의 자금난에 적잖은 보탬이 되고 있다. 아시아나IDT는 올초 아시아나항공에 50억원의 배당금을 지급했다.

조 사장의 경영 감각도 나쁘지 않다는 평가다. 특히 지난 2009년 대한항공 여객사업본부장 시절 "글로벌 금융위기를 탈피하자"며 선보인 역발상 전략은 주목할만 하다.

조 사장은 당시 국내 여행객 수요 감소에 맞춰 미국과 아시아에서 출발해 인천공항을 거쳐 제3국으로 가는 환승 수요를 공략했다. 그 결과 세계 항공사들이 대부분 적자를 내는 와중에 대한항공은 1300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조 사장이 대한항공 총괄 부사장으로 재직하던 2016년에는 대한항공 영업이익이 1조1208억원으로 창사 이래 최대였던 2010년 1조2357억원에 육박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미국 델타항공과 태평양 노선 조인트벤처(JV)협정 체결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얄궂게도 이들의 업적은 아직까지는 그룹 총수인 아버지 후광에 가려졌다. 두 사람 모두 입사 후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는데 오너 일가의 후광 효과로만 해석될 뿐 그들의 온전한 경영 능력으로 평가받진 못하고 있다.

◇ 소통·변화는 강점…경영능력 입증해야

다만 조직 문화를 이끌어가는 데 있어선 아들이 아버지 보다 앞서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40대 젊은 경영인 답게 변화와 소통에 대한 거부감이 덜하다는 게 장점이다. 권위와 카리스마로 대변되는 두 아버지와는 대조적이다.

박 사장은 아시아나IDT 사장 취임 당시 취임사를 생략하는 대신 직원들에게 일일이 이메일을 보냈다. 한 사람, 한사람과의 소통의 창구를  열어놓은 것이다. 근무복장도 자율화 시켰다. 이는 현재 그룹 전체로 확대되는 추세다.

앞서 그룹 전략경영본부에 재직할 당시에는 그룹의 문화 개선을 위해 직원들을 상대로 자유로운 의견 게재를 주문하기도 했다. 그룹내 다소 유연해진 조직 분위기는 박 사장의 공이 컸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조 사장도 격식이나 의전은 배제하는 스타일로 유명하다. 수습사원 수료식이나 현장직원들을 격려하는 자리인 '엑셀런스 시상식'에도 빠짐없이 참석하는 편이다. 최근에는 임직원들과의 스킨십을 더욱 늘리는 등 가족의 일탈이 낳은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이다.

조 사장은 올 초 신년사에서도 임직원과의 소통을 중점에 뒀다. 조 사장은 "임직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겠다"며 "성과에 대해서 정당하게 보상하고 유연한 조직 문화를 만드는데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이러한 노력에도 두 사람의 이른 승계에 대한 재계의 시선은 아직 곱지만은 않다. 경영 성과를 논하기엔 시기적으로 이르기도 하고 아버지의 후광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위기 국면의 회사를 맡기기엔 경험적인 측면에서 역량이 부족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금호아시아나그룹과 한진그룹도 지금으로선 승계 작업 보단 조직 안정화에 더 방점을 두는 분위기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전문 경영인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진그룹은 우기홍 대한항공 경영전략본부장과 이수근 정비본부장 등이 조 사장을 보좌하는 형태로 전열을 가다듬는 중이다.

다만 두 그룹의 경영 상황이 어느 정도 안정 궤도에 오르면 박 사장과 조 사장의 경영 승계 작업이 본격화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항공업계의 경영 승계가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곧 두 사람의 경영능력 검증이 속도를 내야 한다는 의미다.

박 사장은 알짜 계열사가 아닌 그룹 전체에 대한 관리 능력을 가졌는냐를 입증하는 게 급선무다. 그간 핵심 계열사만 거친 탓에 그룹 차원의 과제를 해결한 경영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특히 금호타이어 인수 실패 이후 핵심 계열사에서 경영 능력을 입증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항공 업종에 대한 근무 경험이 적다는 점도 그의 단점으로 꼽힌다.

조 사장은 '갑질'로 대표되는 일가의 오명을 벗어나는 데 주력해야 하는 상황이다. 임직원과 고객들로부터 신뢰를 되찾는 것이 우선이다.

특히 조양호 회장의 사례를 통해 주주들이 대표이사를 끌어내릴 수 있는 상황을 직접 목격했다는 점에서 주주가치 제고에도 신경써야 한다. 관건은 지난 2월 한진그룹이 발표한 경영 발전 방안의 이행 여부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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