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전 라디오 방송에 나와 일본의 수출규제에 상응조치를 언급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오후에는 추가적인 언급을 삼갔다. 전날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정부와 정치권 대응에 쓴소리를 내뱉은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말을 아꼈다.
이날 오후 2시 서울 중구 대한상의 20층 챔버라운지에서 열린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기업인 간담회'에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에 대한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와 관련해 우리 정부와 재계의 분위기를 파악하려는 취재진들로 붐볐다.
홍 부총리는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으로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투자와 수출이 어렵고 기업인들이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걸 잘 안다"면서도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해선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본의 수출규제를 "명백한 경제보복"으로 규정한 뒤 "상응할 수 있는 조치를 강구하겠다"며 강경 입장을 밝힌 것과는 대조적인 행보다. 그렇다고 자신의 발언을 뒤집지는 않았다.
홍 부총리는 간담회가 끝난 뒤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자 "오늘 이미 말을 많이 했다"며 기존 입장과 달라진 게 없다는 점을 시사했다. '말폭탄'으로 일본을 지나치게 자극하는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긴 것으로 보인다.
그는 라디오 방송에서도 "보복이 보복을 낳는다면 일본에도 불행한 피해가 될 것이기에 잘 마무리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박 회장 역시 몸을 낮췄다. 1층 로비에서 홍 부총리를 직접 맞이한 박 회장은 행사 시작전 모두발언에서 "어제 발표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는 기업입장에서 주목할 내용이 많다"면서 "경제상황 인식에 대한 정부와 경제계의 간극이 줄었고, 경제활력을 높이기 위한 정부의 여러가지 고민들을 엿볼 수 있었다"고 했다.
특히 "투자에 대한 세제지원이나 합리적인 최저임금 결정의 지원, 사회안전망 등은 저희 건의가 상당부분 반영됐다"며 후한 점수를 줬다.
불만사항은 완곡하게 전달했다. 그는 "개별 규제를 정부가 일일이 심사해 승인하는 관문 심사 방식은 기업들에게 또 다른 장벽으로 다가온다"면서 "심사이전 단계부터 사업을 벌일 수 있게 보완하거나 여러부처에 걸친 복합사업 모델도 신속한 결정이 내려질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해달라"고 요청했다.
박 회장은 하루전만 해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일본은 치밀하게 정부 부처간 공동 작업까지 해가며 선택한 작전으로 보복을 해오는데 우리는 서로 비난하기 바쁘다"며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또 "중국, 미국 모두 보호무역주의로 기울어지며 제조업 제품의 수출이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우리는 여유도 없으면서 하나씩 터질 때마다 대책을 세운다"고 꼬집었다.
이날 간담회에는 홍 부총리와 박 회장을 비롯해 삼성전자 윤부근 부회장, 현대차 공영운 사장, 롯데지주 황각규 부회장, 전국 상공회의소 회장단 및 기재부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약 1시간 가량 비공개로 열린 간담회는 정부가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의 주요 내용을 설명한 뒤 업계의 건의와 애로사항을 듣는 식으로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