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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전영현 삼성SDI 사장의 '정중동(靜中動)'

  • 2019.07.11(목) 10:12

2017년 소방수로 호출…2년여만에 흑자 전환
수익성 중심 기조, 투자로 '중심 이동' 가능성

"헝가리 법인 2차 투자계획이 지지부진하다. 삼성SDI의 전기차 배터리 투자계획은 다른 회사 대비 부진하다."-김병주 SNE리서치 상무

삼성SDI가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조용하다. 2017년 5월 헝가리 공장 준공식을 개최한 이래 새로운 투자처 발굴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있다. 선두주자 LG화학은 물론 후발주자 SK이노베이션이 그간 새 공장부지를 낙점한 것과 대조적이다.

업계에선 삼성SDI가 과거와 달리 투자에 있어 더 신중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SDI의 길었던 적자를 끝낸 '소방수' 전영현 삼성SDI 사장이 미래 먹거리 전기차 배터리사업 수익성 확보, 사업확대 사이 갈림길에 섰다.

◇ 반도체 유전자로 '적자탈출'

전 사장은 반도체 전문가로 불린다. LG반도체를 시작으로 삼성전자 D램 개발실에 합류한 뒤 메모리사업부장(사장)까지 승진했다. 2017년초 삼성SDI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전 사장이 수장으로 왔던 2017년 삼성SDI는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직전해 삼성SDI가 배터리를 납품한 갤럭시노트7 발화 사건으로 인한 비용, 2015년 1분기부터 시작된 9분기 연속 영업적자 행진에 몸살을 앓았다.

전 사장은 취임 이래 임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삼성전자의 반도체 성공 유전자를 삼성SDI에 심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전격적으로 도래하는 전기차 시대를 선점한다면 반도체가 이룬 영광을 다시 한 번 SDI에서 재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취임 후 회사 수익성 개선에 팔을 걷었다. 삼성SDI는 그해 2분기 55억원의 영업이익(연결기준)을 거둔 것을 시작으로 2017년 한해 영업이익 1169억원을 거뒀다. 지난해 연간 매출은 9조1583억원, 영업이익은 7150억원으로 두 수치 모두 2004년 이후 최대다.

특히 전지사업을 담당하는 에너지솔루션부문이 활약했다. 이 부문은 지난해 연간 매출액 6조9572억원, 영업이익 3974억원을 거뒀다. 각각 전체 사업실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6%, 56%에 달한다. 지난 2014년(-263억원)부터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한 것과 비교해 몰라보게 달라졌다.

전 사장이 소형전지, ESS제품에서 수익성을 크게 끌어 올렸기 때문이란 평가가 나온다. 무선청소기 등 코드가 없는 전자제품 시장 돌풍, ESS시장 확대가 이를 뒷받침했다. 증권업계는 삼성SDI가 두 제품군에서만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 6000억여원을 번 것으로 추정한다.

다만 최근 삼성SDI의 행보에서는 전 사장의 '고민'이 읽힌다. 삼성SDI는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LG화학, SK이노베이션에 상대적으로 밀리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회사들이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는 것과 대조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삼성SDI 배터리가 탑재된 전세계 전기차(중국 출시 제품 제외) 배터리 출하비중은 올해(1~5월 기준) 7%로 2017년 10.8%에 비해 낮아졌다.

다만 전 사장이 배터리를 팔 곳이 없어 투자를 망설이는 것도 아닌 것으로 업계는 바라본다. 완성차 업체들의 수요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폭스바겐을 시작으로 다임러 등 글로벌 유수의 회사들이 납품받는 배터리 모듈을 표준화하고 있다. 과거 개별 자동차 모델에 규격이 다른 배터리 모듈을 한 개사로부터 공급받은 것과 대조적이다. 전기차 시장이 커지면서 발생한 배터리 수급난을 공급선 확대로 잠재우기 위한 목적이다.

모듈 표준화와 함께 배터리 공급선을 다변화하는 변화도 진행되고 있다. 현대차가 배터리 공급업체를 LG화학에서 SK이노베이션으로 확대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간 현대차는 LG화학, 기아차는 SK이노베이션식으로 공급구조가 일원화됐었다.

최근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공격적으로 투자확대에 나선 것도 믿는 구석이 있어서다. 전 사장 입장에서 신규 공급선을 잡아 투자를 늘리지 못할 이유가 없다.

◇ '전략적 인내' 관측도

이 때문에 당장은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서 적자가 불가피하다는 점이 전 사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그룹 차원에서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지목해 힘을 실어주고 있는 있는 LG화학이나 SK이노베이션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점도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실제 삼성SDI는 아직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서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2000억원 안팎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SDI가 의욕적으로 투자를 진행한 헝가리 법인은 지난해 1022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전지사업 비중이 높은 삼성SDI는 화학사업, 정유·화학사업 등 내부적으로 뒷받침이 있는 LG화학, SK이노베이션과 상황이 다르다. 이 때문에 취임후 흑자를 이끌어낸 전 사장이 전기차 배터리 투자로 인한 부담을 감내하면서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기는 어려운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화학업계 관계자는 "삼성SDI가 헝가리 공장 제품수율 안정화에 최근까지 애를 먹은 것으로 안다"며 "해외공장에서 높아지는 인건비와 세금 등으로 상당한 적자를 보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전 사장의 배터리 사업 전략이 '전략적 인내'의 일환이란 해석도 나온다.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에 유리한 전기차 배터리 보조금제도를 내년 이후 폐지하고,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본격 개화하는 시기에 맞춰 투자를 진행해 손실폭을 최대한 줄이는 전략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관측이다.

전 사장은 올해 주주총회 때 '수익성 바탕 질적 성장 추구'를 공언하면서도 "자동차전지와 소형 원형 전지를 중심으로 투자를 진행해 미래 성장의 발판을 마련해 나가겠다"며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애정을 잊지 않았다.

삼성SDI도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투자는 이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자동차와 소형전지 등 배터리부문 투자액은 1조8000억원으로 총 매출 대비 21%, 배터리부문 매출 기준으로는 26%에 달해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올해 헝가리 법인에 5600억원 투자를 진행했고, 지난해 미국 배터리팩 공장증설에 6000만달러(약 700억원)를 투입하는 등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는 것이 삼성SDI의 설명이다. 삼성SDI 관계자는 "매년 전기차 배터리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매출 규모도 타사 대비 매우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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