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25km'라는 속도는 빠른 걸까 느린 걸까? 차를 타고서는 지정체 구간에서 속터지는 속도일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뛴다고 생각하면 100m를 14초대(14.4초)에 끊는 속도다. 1분이 아까운 출근길, 지하철 역에서 회사 바로 앞까지 마지막 1km를 이 정도 속도로 이동할 교통수단이 있다면 어떨까? 시속 25km란 다름 아닌 전동 킥보드 시범사업에 임시로 정해진 제한속도다.
'고고씽'이라는 브랜드로 전동 킥보드 등을 공유해 회원들이 사용토록 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는 매스아시아는 이런 생각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전에 없던 사업이다 보니 교통수단으로서 받아야할 규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니, 과연 어떤 기준에 사업을 맞춰야 할지조차 답이 나오지 않았다.
지난 2일 만난 매스아시아의 정수영 CEO(최고경영자, 대표이사)는 공유 모빌리티 사업을 "도시교통의 모세혈관을 이어주는 것"이라고 먼저 소개했다. 지하철, 버스를 타고 이동해도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또 버스정류장에서 회사까지는 힘들게 걷거나 뛰어야 하는 현실 속 도시교통의 최종 단계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라스트 마일' 공유 모빌리티 사업이란 얘기다.
그는 "글로벌 컨설팅회사의 조사를 통해서도 교통수요의 60%는 5마일(8Km) 이내의 '라스트마일(Last-mile)'이라는 분석이 있다"며 "이 거리를 이동하기 위해 택시를 타거나 걷는 것보다 여러 측면에서 편안하고 부담 없는 교통수단을 제공하는 것이 우리 서비스의 시작점"이라고 했다.
공유 모빌리티도 '시민 편익' 이미 검증
공유 모빌리티 사업은 이미 사회적으로 필요성이 공인됐다. 서울 '따릉이', 대전 '타슈', 수원 '반디클', 창원 '누비자' 등 지방자치단체 별로 각각 시행 중인 공공 자전거사업만 봐도 그렇다. 너무 멀지는 않은 거리를, 도심에 대기오염물질을 뿌리지 않고, 걷는 것보다 편하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하지만 자전거를 벗어나 전동 킥보드, 전기 자전거 등으로 수단이 바뀌면 얘기가 또 달라진다. 전에 없던 탈것이다 보니 관련 규제가 정비돼 있지 않은 것이다.
"전동 킥보드가 차도 위만 달려야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세요. 차들도 불편하고 킥보드 타는 사람도 훨씬 위험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전동 킥보드는 법규상 오토바이와 같은 '원동기'로 분류돼 있는 게 현실이에요. 인도는 커녕 자전거도로로 달리는 것조차 현재 규제 기준에서는 불법이죠." 새로운 사업을 위해 가르마를 타야 할 제도가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얘기다.
고고씽의 전동 킥보드는 다음달부터 경기도 화성의 동탄신도시의 자전거도로를 달릴 수 있게 된다. 복잡한 난제를 제한적인 지역에서, 한시적으로나마 풀어낼 수 있었던 건 바로 정부의 '규제샌드박스' 제도가 있어서다.
동탄2신도시는 새로 지은 대단지 아파트들이 속속 자리잡고 있는 그야말로 신(新)도시다. 신도시와 서울을 잇는 SRT(수서고속철), M-버스 등 대동맥 같은 광역교통편은 마련됐지만 단지 사이를 누벼야 할 '실핏줄' 격인 마을버스는 제대로 깔리지 않았다. 새 도시 곳곳에 교통 소외지역이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매스아시아는 경기도 주관 규제샌드박스 제도의 '실증특례'를 통해 여기서 시범사업을 벌이게 됐다. 산업 환경의 변화에 따라 제도를 정비하는 건 사실 정부의 몫. 하지만 혁신산업을 선점하려는 민간 스타트업 사업자 입장에서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매스아시아가 총대를 메고 나선 이유다. 이미 현대차 같은 대기업까지 이 라스트마일 사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상황이다.
정 대표는 "될 사업이라는 확신은 있지만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게 관건이었다"며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적합한 사업 방향을 찾는 게 필요하겠다 싶어 지난 5월부터 실증특례사업을 준비했다"고 했다. 혁신 성과를 내려는 산업통상자원부가 가세하면서 업무 추진도 더 빨라졌다.
매스아시아는 앞으로 1년 동안 동탄2신도시에서 전동 킥보드를 운영한다. 대기오염이나 시민 만족도 분석 등과 함께 현행 '도로교통법'상 분류 기준이 모호해 주행기준 등 규정이 미비한 것들을 하나하나 파악하고 기준을 정해 나가는 작업을 하게 된다. 소요비용의 50%는 경기도와 화성시가 댄다.
정 대표는 "원래 6개월 하려던 시범사업을 경기도가 나서서 1년으로 늘려달라고 할 정도로 지방자치단체에서 적극적"이라며 "정부도 우리의 실증을 통해 퍼스널 모빌리티의 운용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운행방법과 기준 등에 대한 법제도 정비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9월 출퇴근용 전동 킥보드 400대 투입
동탄에는 고고씽 전동 킥보드가 400대 투입된다. 여타 경쟁업체와 달리 매스아시아는 이 킥보드도 자체제작해 쓰고 있다. 정 대표는 "개인 판매용 킥보드와는 달리 공유 모빌리티는 24시간 비가오나 눈이오나 밖에 서있어야 하고, 주행경로나 속도, 거치 장소 등의 데이터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애초 설계부터 직접했다"고 했다.
그래서 고고씽의 킥보드는 장시간 외부 환경 노출에 강한 알루미늄 포스트, 펑크날 일 없고 내구성 강한 8.5인치 솔리드 타이어, 언덕이 많은 국내 지형에 맞는 350w 고출력 전기 모터, 1회 충전으로 최대 40km까지 갈 수 있고 갈아 끼울 수도 있는 배터리 등을 갖췄다.
매스아시아는 신산업에 맞는 제도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지만, 문화를 안착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정 대표는 "최고속도를 얼마쯤으로(현재 25km)로 제한하는 정도는 필요하지만 안전을 위해 헬멧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오히려 규제는 더 늘어난다"며 "대신 헬멧 장기 대여 등으로 착용문화를 만드는 게 오히려 쉬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매스아시아는 지난 1월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 네이버에서 출자한 TBT 글로벌 성장 제1호 투자조합 펀드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 또 DB손해보험과 계약을 맺고 '고고씽케어'라는 보험상품도 업계 최초로 내놨다. 편의점 GS25에 배터리 교체 스테이션을 운영하는 것도 추진중이다. 매스아시아는 최근 '알파카'라는 대전지역 전동킥보드 스타트업을 흡수합병했고, TBT 등으로부터 추가 투자도 받았다.
하지만 공유 킥보드가 전부는 아니다. 사명의 매스(Maas)가 '모빌리티 애즈 어 서비스(Mobility as a Service)'의 줄임말인 것처럼, 모든 교통수단을 연결하겠다는 '빅 픽처'를 매스아시아는 그리고 있다.
"'고고씽'으로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저희가 생각하는 건 이게 전부가 아니에요. 교통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잖아요. 무언가를 하려 이동할 때 빅데이터를 이용해 실시간으로 가장 적합한 교통 솔루션을 패키지로 제공하고, 또 이렇게 쌓은 데이터를 애초 도시계획에 반영할 수 있게 정보상품으로 만드는 것도 할 수 있죠."
정 대표는 오는 28일 비즈니스워치 주최로 열리는 '응답하라! 혁신-규제샌드박스, 골든 타임을 잡아라' 포럼에서 '고고씽의 규제샌드박스 활용 사례'를 발표한다. 이 자리에서는 규제샌드박스 정책 담당자들과 혁신사업자, 또 전문가 및 청중들 사이에 자유로운 질의응답과 토론도 있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