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일반 도로 위에서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차들이다. 소형 해치백 '클리오', 상용차 '마스터', 초소형 전기차 '트위지' 등 르노삼성자동차가 판매하는 '레어템' 3종 얘기다.
이 완성차 회사가 만들어 파는 세단 'SM' 시리즈나 스포츠유틸리티차(SUV) 'QM' 시리즈만 해도 대중에게 꽤 익숙하다. 하지만 이 3종 모델은 올해 월 평균 판매량이 200대 안팎에 불과한, 그야말로 희귀종들이다.
이 보기 힘든 차들을 지난 20일 강원도 태백스피드웨이(태백레이싱파크)에서 한꺼번에 만났다. 눈에 덜 띄는 모델들을 소개하기 위해 르노삼성이 마련한 여름 맞이 전차종 특별 시승행사를 통해서다.
# 우선 클리오. 일단 이 차로 수도권에서 강원도 영월을 거쳐 태백까지 170km를 갔다. 클리오는 작년 5월에야 우리나라에 들어왔지만 르노가 출시한 후 지금까지 세계에서 1500만대나 팔린 베스트셀러다. 5세대 1.5ℓ dCi 디젤엔진은 최고출력 90마력, 최대토크 22.4kg.m의 힘을 낸다. 얼핏 현대차 'i30'보다 작아 보이는 작은 체구지만 당당한 매력이 외관에서 느껴졌다.
주행감은 강하면서도 부드러웠다. 고속도로 위에서 여느 세단에 뒤쳐지지 않는 가속력을 갖췄다. 가속 페달을 밟는 발 끝에 조금만 힘을 더 실어도 치고 나가는 추동력이 등받이에 느껴졌다. 독일 게트락 6단 DCT 변속기도 부드러웠다. 자동이지만 능숙한 베테랑 운전자가 모는 수동변속기처럼 제때에 충분한 동력이 바퀴로 전해지는, 응답성 뛰어난 느낌이었다.
강원도 산간의 국도에서도 역동성을 맛봤다. 날카로운 굽이를 코너링한 뒤 오르막을 만나도 힘이 부치는 느낌을 받지 않았다. 100마력도 채 되지 않는 엔진으로 이 정도 주행이 가능하다는 게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그렇게 밟고도 도착 때 확인한 연비는 ℓ당 18km 남짓, 공인복합연비(17.7km/ℓ)를 웃돌았다.
르노삼성은 태백스피드웨이에서 이 차로 트랙을 도는 시승코스를 마련했다. 레이서 출신 주행교관(인스트럭터)이 모는 클리오 동승석에 타고 2.5km의 트랙을 세 바퀴 돌았는데, 그 전까지 스스로 운전하며 느낀 역동성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시속 200km에 육박하는 주행은 그저 짜릿했다.
이 교관은 "깊은 코너를 '아웃 인'으로 빠져나가면서 속도 손실을 최소화하는 능력은 차가 가진 기본기의 척도"라며 "클리오는 가속, 제동, 핸들링(조향) 모두 만족스럽다"고 했다. 이런 말을 들어선지 직접 핸들 잡고 트랙에 올라섰을 때 더욱 과감한 주행을 할 수 있었다. 나로선 무리겠다 싶은 구간들을 몇 차례 만났지만 클리오는 충분히 소화해냈다.
# 다음은 마스터. 르노삼성은 이 덩치 큰 상용차로 운전면허시험 주행코스를 약식으로 만들어 놓은 듯한 코스를 시승경험하게 했다. 13인승 버스와 3인승 밴 등 2대가 동원됐다. 이 차에 가장 기본적인 시승 코스를 마련한 것은 차체가 예전 '봉고차'를 넘는 크기(13인승 버스 전장 5550mm, 전폭 2020mm)인데다 수동변속 차량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탓에 경주용 트랙 올라서는 것보다도 오히려 더 긴장됐다. 수동변속 차를 몰아본 지가 10년도 넘은 터라 시동을 많이 꺼먹을 것 같았다. 이 차는 1종 보통 면허로 운전할 수 있는 차 중에서도 가장 큰 편이어서 곡선 주행, 후진 등도 간단찮다. 13인승이지만 미니버스 정도라 보면 된다.
하지만 시승 결과는 예상밖이었다. 주행 중 한 번도 시동을 꺼트리지 않았다. 그 뿐 아니라 수동 운전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다는 3명의 기자(2종자동 면허 소지)를 포함한 10여명이 S자 곡선 주로, T자 후방주차 등 주행 코스를 끝까지 소화했다.
전원 완주의 비결은 수동 변속기의 단점을 보완한 '오토 스탑 앤 고' 조절기능에 있었다. 변속중 시동이 꺼져도 클러치만 다시 밟으면 엔진을 되살려 내 운전자의 당혹감을 씻어줬다. 이 승합차에는 2.3ℓ 트윈 터보 디젤 엔진을 탑재했느데 중저속 구간에서 강한 토크를 제공하고, 고속 구간에서는 즉각적인 가속력을 발휘해 장거리 운전 능력을 높였다고 했다. 그래도 자동변속기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았다.
실내는 넓고 높아 10여명 넘는 성인들을 이동해야 하는 상황을 만나면 제격이겠다 싶었다. 13인승 마스터의 전고는 2500mm로 차내에서 180cm 정도의 성인 남성도 허리나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었다. 유치원 셔틀보다는 중고생 학원용 버스나 출장 업무, 패키지 여행용으로 더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전석과 동승석에는 긴 운전에도 불편함을 줄일 수 있도록 곳곳에 수납공간을 둬 여러 용도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요긴해 보였다.
# 마지막은 트위지. 이 차로 '슬라럼'부터 경험했다. 슬라럼은 써킷 위에 여러개의 라바콘(고무로 된 고깔 모양의 표식장비)을 장애물로 두고 이를 지그재그로 통과하거나 회전해 빠르게 통과하는 경기방식이다. 혼자 또는 둘이 겨우 타는 이 작고 가벼운 차로 그게 무슨 재미일까 싶었다. 하지만 반응은 예상 외로 뜨거웠다.
설명부터 하자면 트위지는 일반가정용 220V 콘센트로 충전이 가능한 초소형 전기차다. 완충하면 외부온도나 주행 여건에 따라 55~80㎞를 달릴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최고속도는 시속 80㎞ 수준. 도심 속에서 기동성을 확보했다고 할 수는 있어도 자동차 경주장에서 속도감을 느낄 정도가 될까 싶었다. 하지만 오히려 작은 차체와 일반 차에서 느끼기 어려운 개방감이 바이크를 타는 듯한 속도감을 줬다.
특히 만족스러운 것은 탄탄한 안정감.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고 고깔 사이를 이리저리 헤짚고 가도 하체가 크게 미끌리거나 상부가 휘청이지 않았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절대 넘어지지 않으니 안심하라"며 자신감을 표시했다. 그는 "여러 초소형 전기차 카피캣(모방제품) 모델이 있지만 트위지처럼 슬라럼을 소화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안정감은 근거리 배달 용도에 최적일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20여년 전 치킨, 중국집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던 친구가 코너를 돌다 미끄러져 다친 일이 떠올랐다. 이 차라면 그런 사고는 없을 듯했다.
트위지를 자동차 경주용 트랙에 올려서도 이런 안정감을 확인했다. 이 차에 설정된 최고 속도인 80km로 달리다가 급한 코너를 돌면서도 60km 이하로 속도를 떨어뜨리지 않고 트랙을 소화했다. 차값도 보조금을 받으면 400만원까지 떨어져 여러 용도의 대체재로 경쟁력 있는 수준이라 생각됐다.
# 클리오, 마스터, 트위지. 이 차들이 일반 공도위에서 잘 보이지 않는 이유는 있다. 클리오와 마스터는 르노삼성이 팔고는 있지만 프랑스 르노가 만들어 국내로 수입하는 차다. 수요가 확인되지 않은 수입차여서 초도 물량은 소극적으로 잡을 수밖에 없다.
또 소형 해치백은 유럽서는 인기가 많다고 해도 국내서는 현대·기아차조차 고전하는 차급이다. 상용차는 국내 기존 모델 아성이 워낙 공고하다. 트위지의 경우 국내 도입 때 법 개정까지 필요했던, 전에 없는 전혀 새로운 차급의 모델이다. 더욱이 르노는 삼성이란 간판을 함께 붙였다고 해도 한국서는 '마이너 메이커'다.
그러나 흥미로운 시승 뒤 이 틈새시장 '레어템'들의 역할에 대한 생각을 달리 할 수 있었다. 르노삼성차 입장에서는 한국 시장 판촉을 위해 여러 라인업을 갖춰야 하는 게 사실이다. 얼마 남기지도 못하는 소량의 차라도 수입해 팔아야 하는 좌판에 구색을 갖출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국내 완성차 시장 수요자 입장에서 이런 차들의 독특함은 구매 선택지를 늘려준다. 그것만 해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