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라이프'. 현대자동차가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베뉴'를 내놓으면서 만들어낸 말이다. 그냥 독거(獨居)를 칭하는 게 아니라 이른바 '혼밥, 혼술'을 스스럼없이, 또 외롭지 않게 즐길 줄 아는 그런 요즘 젊은 사람들의 라이프란다. 베뉴가 이런 혼라이프에 딱 맞는 차라고 한다.
베뉴가 첫선을 보이던 자리에서 서른 살 언저리 현대차 직원에게 농담 섞인 지청구를 날렸다. "아니 혼자인 게 뭐 그리 좋다고 혼라이프 타령이래. 저출산도 고령화도 문제라는데"라고. 돌아오는 심드렁한 대답. "헐. 아닌데, 혼자 노는 게 얼마나 편하고 좋은데요." 겸연쩍게 돌아서면서 곧바로 후회했다. 아이고, 또 '꼰대' 인증.
그러니까 이 시승기는 베뉴라는 상품의 감성적 측면을 썩 이해하지 못한 아저씨 기자가 쓴 글인 셈이다. 직장과 결혼생활 10년이 넘은 40대 입장에서 과연 '혼라이프'를 주창하는 이 차의 장단점을 잘 볼 수 있을지, 사실 스스로도 궁금했다.
베뉴에 처음 오를 때는 마치 '90년생이 온다' 같은 책에 손을 뻗는 기분도 들었다. 신차 공개행사는 지난 11일 경기도 용인 소재 자동차경매장 건물을 개조한 대형 카페에서 열렸다. 시승은 여기서 여주의 한 호텔을 다녀오는 144km 구간에서 이뤄졌다.
출발 전 대형 주차장에 늘어선 베뉴를 멀찍이서 봤을 때 '팰리세이드'와도 꽤 닮았다고 느꼈다. 현대차 특유의 육각형 모양 라디에이터 그릴 안을 채운 큼직한 격자무늬의 캐스케이딩 그릴이 팰리세이드부터 내려오는 당당한 느낌의 원천이다.
현장에 없던 한 동료 기자는 "사진으로만 보면 꼭 중대형 SUV 같다"고 했다. 전면부 디자인이 그런 인상을 준 듯했다. 얼핏 앞모습을 보면 확실히 제원에 비해 커보인다. 실제 전고와 전폭은 각각 1565mm, 1770mm로 '투싼'과 비교할 때 80mm씩 작다. 하지만 길 위에서 얕잡아 보일 만큼 작다는 느낌은 전혀 주지 않았다.
대낮 밖에서 보니 현대차 SUV의 강인한 그릴이 더 눈에 들어왔다. 실내 공개행사 때 아랫쪽 사각형 모양의 발광다이오드(LED) 주간주행등이 도드라졌던 것과 달랐다. 마냥 귀엽지도, 그렇다고 거칠기만 하지도 않은 반전 매력에 웃음이 샜다.
시동을 걸고 행사장을 빠져나왔다. 공도에 오르는 연결지점을 빠르게 통과하려다 꽤 턱이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아챘다. 차가 순간적으로 출렁해 '아차, 밑바닥 긁어 먹나보다' 했는데 무사히 빠져나왔다. SUV라 차체 높이가 적당하고 서스펜션의 충격 저감 성능이 괜찮아 다행이었다. 소형 세단이나 경차였다면 내려서 앞 범퍼 아랫쪽을 들여다봐야 했겠다 싶었다.
신호에 걸려 내장을 요리조리 살펴보고 있는데 작게 '삐' 전자음이 났다. 고개를 들어보니 전방차량 출발 신호다. 차가 서기만 하면 휴대폰을 집어들어 보다가 뒷차 경적을 부르는 운전자에게 제격인 기능이다.
고속도로에 오르면서 주행성능은 어떤가 봤다. 정상적인 교통흐름을 따라 시속 100km까지 올리며 진입램프를 빠져나오는 정도는 전혀 무리 없었다. 엔진회전수는 2000~2500 rpm 정도. 가속페달을 더 깊이 밟아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고속 주행도 무난했다. 2000~3000 rpm 정도를 오르내리면서 제한속도보다 20~40% 높은 정도까지 쉽게 달렸다. 다만 순간적인 가속력으로 추월하는 힘은 없었다. 가속페달을 꾹 밟아 4000~5000 rpm 위로 끌어 올려도 뒤에서 미는 듯한 추동력은 딱히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속도계가 꾸준히 올라가는 정도다.
애초에 그런 역동적 주행성능은 기대하지 않고 만든 차다. 이 차에는 '스마트스트림 G1.6'이라는 현대기아차 차세대 파워트레인이 탑재됐다. 여기에 변속충격이 없는 IVT(무단변속기)를 물렸다. 이 동력계통은 최고출력 123마력(6500rpm 때), 최대토크 15.7kgf·m(4500 rpm 때)의 성능을 낸다. 힘보다는 연비에 초점을 맞춘 차다.
현대차 직원은 "당연히 디젤이나 터보 엔진의 가속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제원"이라고 했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올리는 데 걸리는 시간(제로백)을 재거나 물어보는 것도 무의미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숫자로 본 '스펙'에 비해 주행성능이 떨어지진 않는다고 판단됐다.
그보다는 차 안에서의 느낌이 만족스러웠다. 동승 기자는 특히 가속페달을 다소 깊이 밟았을 때(3000~4000 rpm 정도)의 엔진음이 뜻밖이라며 반색했다. 소리 자체가 거슬릴 정도로 크지 않은 데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음색으로 차내에 퍼지는 게 오히려 노면 소음이나 풍절음을 적당히 상쇄해줬다.
영동고속도로 용인~양지 구간에서 시속 100km를 정속 주행하면서 테스트한 실내 소음은 60dB 후반이었다. 동승 기자는 "얼마 전 탄 프리미엄급 수입차도 50dB 후반이었는데, 이만하면 준수한 정숙성"이라고 했다. 젊은 수요층에 '나만의 공간'이라는 느낌을 주기에 부족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차로 이탈 방지 보조(LKA, Lane Keeping Assist), 운전자 주의 경고(DAW, Driver Attention Warning) 등 첨단운전보조기능(ADAS)을 활용한 크루즈 운행도 매끄러웠다. 설정한 속도로 앞차 간격까지 유지하며 달리는 스마트 크루즈가 아쉬웠지만, 그걸 기대하려면 더 상위 차급을 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장과 차내 기능은 깔끔했다. 디자인이 뭘 자꾸 보여주려는 듯 요란하지 않은 것이 마음에 들었다. '이건 뭐지?, 이건 어떻게 조작하는 거지?' 하는 궁금증을 부르기보다는 익숙하게 손 가는대로 누르거나 돌리면 예상했던 음향·공조·내비게이션등의 움직임이 나타나 좋았다.
다만 더운 날씨였던 터라 통풍시트가 없는 것이 아쉬웠다. 테두리를 제외하고는 직물소재로 채운 시트도 등과 엉덩이에 더 뜨끈하게 느껴졌다. 시승차라 차광시공(썬팅) 등도 되지 않아 차내 온도가 더 높았던 탓도 있겠지 싶었다.
차내 공간은 꼭 타야겠다면 성인 4명까지 태우는 게 가능하지만, 굳이 그렇게 쓸 차는 아니겠다 생각됐다. 키 180cm 정도의 성인 남성이 운전할 때 뒤에 비슷한 체구의 남성이 뒤에 앉으면 앞좌석 등받이에 무릎이 닿을까 말까하는 정도다. 둘 정도가 타는 데는 활용성이 충분해 보였다. 더 넓은 실내 공간은 '혼라이프'로 기획된 차에 무리한 요구 아니겠나 싶었다.
뒤 적재공간(트렁크)을 열어보고도 골프 캐디백이 하나나 실리겠나 싶었지만, 다시 '아차' 했다. 애초 이 차에는 틀려먹은 '꼰대식' 측정기준이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어서다.
동승기자와 번갈아 왕복 144.2km를 달리고 오니 연비가 리터당 13.3km 찍혔다. 공인받은 연비와 똑같다. 고속도로 주행이 70% 이상됐지만 급가속과 급제동, 스포츠 모드 등 시험주행을 한 결과라 그렇지 싶다.
시승차인 베뉴 모던 트림의 차값은 1799만원. 여기에 풀옵션(썬루프 39만원, 익스테리어 디자인 113만원, 멀티미디어 내비 플러스Ⅱ 142만원, 드라이빙플러스 29만원)이 더해져 총 2122만원이다. 경쟁 차종과 비교해 솔깃한 가격이라 생각됐다.
시승을 마치고 돌아와 차에서 내렸을 때, 그제야 조금은 '혼라이프'란 말에 수긍했다. 보여지는 것보다, 그저 내 기준에 따라 스스로의 행복을 찾고 싶은 한 청춘, 그리고 그런 두 개인의 조합과 잘 어울리겠다 싶었다. '너만 좋으면 되지, 이것저것 너무 남 신경쓸 필요 없어'라는 게 베뉴가 주는 메시지랄까.
현대·기아차 양재사옥으로 돌아와보니 어느샌가 1층 로비 센터 자리에 베뉴가 올라와 있었다. 매번 신차들이 오르는 자리지만 베뉴는 어느 때보다 이를 궁금해하는 많은 젊은 직원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랜저'가 윗 세대 직원들의 후회없는 선택이 됐듯, 베뉴도 현대차 젋은 직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