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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코란도·티볼리 살려라'..쌍용차, 새 심장 뛴다

  • 2019.09.19(목) 15:42

누적생산 300만대 앞둔 쌍용차 창원엔진공장
'벤츠혈통' 자부심 위 '1.5가솔린터보' 재무장

"위잉~ 철컹" 공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성인 남성 키의 배를 넘는 로봇팔이 요란한 기계음을 내며 실린더 블럭 세트를 파레트(운반대)에 쌓고 있다. 실린더 헤드는 이를 수평으로 이동시키고, 들어올리고, 또 방향을 돌리기도 하는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움직인다. 조립라인 끝에 나오는 것은 견고해 보이는 자동차 엔진의 몸통이다.

2공장 가공라인 시작점에는 씨름선수 팔뚝처럼 묵직하고 울퉁불퉁한 쇳덩이가 수백개씩 대기하고 있다. 완전 자동화된 컨베이어벨트를 한 바퀴 돌고 나면 이 쇠뭉치는 매끈하게 반짝이는 크랭크 샤프트로 변신한다. 1분에 수천번을 반복하는 엔진 피스톤의 수직운동을 자동차를 달리게 하는 회전운동으로 바꾸는 핵심 부품이다.

지난 18일 경남 창원 성산구 소재 쌍용자동차 공장을 찾았다. 만 25년이라는 세월 동안 쌍용차의 '심장' 격인 엔진을 만들어 내온 핵심 생산기지다. 옛 쌍용그룹 김석원 회장이 터를 잡은 이후 지금까지 이곳을 거쳐 나온 엔진은 누적 약 292만대. 여기서 만들어진 엔진이 쌍용차 평택공장으로 넘어가 완성차에 심어져왔다.

하지만 최근 이 공장은 종전과 다른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친환경 조류를 타고 디젤 중심에서 가솔린 엔진으로, 배기량 큰 중대형 엔진에서 낭비 적은 고효율 소형 엔진으로의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는 것. 'SUV 명가'로 디젤에 집중해온 쌍용차가 가솔린에 힘을 더 주기 시작한 것은 업계에서도 의미심장한 변화로 읽힌다.

쌍용차 창원공장은 명실공히 국내 스포츠유틸리티차(SUV) 대중화를 이끈 산실(産室)로 불린다.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의 기술을 이전받아 1994년부터 이 공장에서 라이선스 엔진을 만들었고 2003년부터는 쌍용차 자체 개발 엔진도 뽑아냈다. 국내 최초 SUV '코란도'부터 '무쏘', '렉스턴' 등 쌍용차의 전성시대를 이끈 차들이 여기서 만든 심장을 달고 태어났다.

쌍용차 창원공장 가공라인에서 쉴새없이 움직이는 로봇팔/사진=쌍용차 제공

'벤츠 혈통'이라는 자부심은 이런 역사에서 온다. 민병두 창원공장담당(공장장) 상무는 "설계와 생산 시스템, 가공 포인트를 맞추는 것부터 품질정책까지 벤츠의 기준에 맞춘 공장"이라며 "요즘 소비자들이 예전처럼 차를 오래 타지는 않는다고는 해도 최소 30만km 달릴 수 있을 정도로 내구성 만큼은 양보하지 않고 생산한다"고 강조했다.

창원 엔진공장은 첨단 중앙통제 시스템을 갖춘 스마트 공장을 구현하고 있다. 민 상무는 "부품 입고에서 제품 출하까지 총 12단계의 품질검증평가 시스템을 운영하고 엄격한 성능 테스트를 통해 완벽을 기한다"고 설명했다. 조립라인은 평균 55%, 가공라인은 최종 검수인원 1명을 제외하면 100% 자동화했다. 꾸준한 기술 축적을 바탕으로 한 연구개발 결과 부품 국산화율은 현재 95%까지 끌어올렸다.

쌍용차의 완성차 모델 라인업에 맞춰 이 공장도 다기종 소량생산에 적합하면서도 유연한 생산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라인 현장 설명을 맡은 생기보전팀 목정훈 차장은 "총 7종류의 엔진을 같은 라인에서 혼류 생산할 수 있도록 해 새 엔진 개발과 생산량 변동 등에 유연한 생산체계를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최근 이 공장의 제품 구성은 가솔린 엔진이 4종으로 디젤(3종)보다 많아졌다. '승용차=세단', 'SUV=디젤'이라는 두 가지 등식이 깨진 게 배경이다. 쌍용차도 변했다. 소형 SUV부터 중형 SUV까지 가솔린 SUV 시장이 확대되는 흐름에 맞춰 2종의 터보 GDI 엔진을 개발해 생산하면서 변화에 발을 맞췄다.

쌍용차 기술연구소에서 동력계통(파워트레인) 개발을 담당하는 김성훈 상무는 "유럽, 미국 등의 환경규제가 강화되는 추세에 맞추려는 측면도 있지만 미세먼지 등 때문에 디젤에 거부감이 커지는 소비자들의 기호도 미리 반영했다"며 "디젤 만큼 힘이 좋으면서도 효율 높고 친환경적인 가솔린 엔진을 개발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창원공장 가공라인에서 매끈한 모습으로 검수단계를 거치고 있는 엔진 핵심부품 크랭크샤프트/사진=쌍용차 제공

올해부터 생산하기 시작한 가솔린 '1.5 터보(G15TF) GDI' 엔진은 그야말로 '쌍용차 SUV만의 맛'을 살리는데 집중해 개발한 새 가솔린 심장이다. 신형 코란도와 부분변경 티볼리(베리 뉴 티볼리)에 탑재해 판매하기 시작한 그 엔진이다.

1500rpm(분당 회전수)부터 4000rpm까지 넓은 범위에서 28.6kgf·m의 최대 토크를 발휘하도록 한 게 가장 차별화한 특징이다. 김 상무는 "힘을 과하게 쓰지 않도록 한 대신 실제로 사용이 많은 엔진회전수 구간에서 순발력을 높여 출발이나 추월 가속 때 운전하는 재미를 살리는 한편 배기가스도 최소화 했다"고 소개했다.

그 결과 가솔린 코란도는 국내 SUV 중 유일하게 '저공해 3종차' 인증을 받았다. 부분변경 티볼리의 경우 종전 모델의 G1.6 MPI 엔진을 달아 출력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보완했고 연비도 개선했다. 2016년 4월 개발 설계를 시작해 양산까지 꼬박 3년 걸린 성과다.

이곳에서 만든 엔진들은 320km 떨어진 평택공장으로 옮겨져 제각각 완성차에 장착된다. 완성된 엔진을 나르는 것은 먼 길이지만 부품을 조달하기는 이 곳이 수월하다. 이 공장에 부품을 대는 국내 89개 업체 중 60%가 인근 경상권에 있기 때문이다.

총원 500명이 채 안되는 이 공장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직원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숙련도가 낮은 인력들도 수월하게 조립할 수 있게 했다는 '풀 푸르프 (Fool Proof) 시스템'을 갖추고도 마지막 한 단계 검수까지 완벽을 추구한다는 각오다. '불량품은 받지도, 만들지도, 보내지도 말자'는 구호가 이를 웅변한다. 품질만큼은 세계 어느 공장에 대도 지지 않겠다는 태세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공장이 개발에 공들인 새 엔진을 양껏 뽑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 현재 이 공장 가동률은 생산능력(연 25만대)과 비교해 62%에 불과한 실정이다. 자동차 판매가 업계 전반적으로 침체를 거듭하다보니 그렇다. 제조업 기반의 창원지역 경기도 예전같지 않다.

송승기 쌍용차 생산본부장(상무)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제품력을 바탕으로 내수시장에서 3위, 경쟁 차종으로만 보면 2위인 기아차와 비슷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며 "고효율 고성능 가솔린 엔진을 기반으로 준중형 SUV 차급에서도 과거 코란도의 영광을 되찾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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