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 계약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HDC현대산업개발과 KDB산업은행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아시아나를 판 채권단인 산은은 "모든 책임은 현산에 있다"고 못을 박았고, 인수단인 현산은 "책임은 아시아나항공과 대주주 금호산업에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양측이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이유는 2500억원의 이행보증금(계약금) 반환 소송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이동걸 산은 회장이 "계약금 반환소송은 없으리라고 본다"며 압박하고 있지만 현산이 올 상반기 영업이익과 맞먹는 계약금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3일 이동걸 회장이 직접 나서 "현산에 모든 책임이 있다"고 밝힌 산은 간담회와 지난 7일 현산이 발표한 '매도인 측 책임전가에 깊은 유감'이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양측의 엇갈리는 쟁점 3가지를 살펴봤다.
우선 현산이 작년 말 아시아나항공 주식매매계약(SPA)을 맺은 이후 7주간 진행된 실사를 두고 양측은 극명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현산은 법무법인과 회계법인, 항공전문 컨설팅회사로 실사팀을 꾸려 실사에 임했지만 정작 필요한 자료조차 받지 못했다고 한다. 현산 측은 "아시아나항공내 실물자료실에도 필요한 자료는 거의 없었고 그나마 주요 부분은 검은색으로 가려졌다"며 "주요 자료의 대부분은 협상 완료일에 임박해서 온라인자료실에 쏟아 붓듯이 제공됐다"고 지적했다.
반면 최대현 산은 부행장은 "현산에 7주간의 실사 기간을 주었고 (현산)인수단이 6개월 이상 아시아나항공에 와서 활동했다"며 "여러가지 재무자료 등 필요한 부분에 협조를 했고 (현산이)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산은 아시아나항공 실사가 부실했다고 판단하고 추가로 12주간의 재실사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산은은 재실사 요구를 단박에 거절했다.
지난달 현산은 이번달부터 12주간 재실사를 진행하자는 공문을 아시아나항공에 보낸 상황이다. 현산은 "재실사는 아시아나항공의 현재를 파악하고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며 "현산의 혹시 모를 동반부실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시아나항공을 살리려고 하는 것이지 계약을 파기하기 위한 구실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산은은 현산의 재실사 요구에 또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최 부행장은 "재실사는 통상적인 M&A 절차에서 과도하다"며 "기본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7주 동안 엄밀한 실사를 했고 상황의 변화가 있다면 점검만 하면 되는데 자꾸 재실사를 요구하는 의도가 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산은이 요구한 추가 계약금 요구에 대해선 현산이 거부하고 있다. 최 부행장은 "인수의사가 있다면 시장이 신뢰할 수 있는 방안이 제시돼야 한다"며 "일부 증자를 이행하던지 계약금 추가납입 등 책임 있는 조치가 있어야 시장 신뢰를 쌓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현산 측은 "계약서 상 근거가 없는 이행보증금 추가납입 등 매도인 측의 요구에는 응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극명한 입장차를 보이는 양 측은 이번 딜이 파기될 경우 책임은 서로에게 있다면 떠넘기고 있다. 업계는 향후 2500억원의 이행보증금(계약금) 반환 소송에 대비해 양측이 명분 쌓기에 나섰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동걸 회장은 "금호산업과 산은은 잘못한 게 없다"며 "모든 책임은 현산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산의 주장은 근거가 없고 악의적으로 왜곡된 측면도 있다"며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은 신의성실에 의해 노력을 다했고 계약 무산과 관련해선 현산이 제공한 원인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현산 측은 "거래종결이 되지 않은 책임은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에 있다"고 주장했다. 올해 아시아나항공 부채비율이 급증한 것을 두고 현산 측은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이전 계약서대로 계약을 진행할 수 없는 재무제표 변동이 일어났다"며 "진술 및 보장이 진실돼야 한다는 계약의 기본적 조건을 위반했고, 현산과 채권단을 철저히 기만한 것"이라고 맞서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