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HDC현대산업개발과 KDB산업은행이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업계는 "원점에서 재검토하자"는 현산의 요구를 산은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 경우 '금호산업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주식'(구주)이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관측된다.
정몽규 현산 회장과 이동걸 산은 회장은 지난 25일 만나 아시아나항공 M&A에 대해 논의했다. 그간 현산은 "인수조건 재협의를 요청했지만 충분한 자료를 받지 못했다"며 "서면으로 의견을 전달하자"고 불만 섞인 목소리를 냈다. 이에 대해 이동걸 회장은 "1960년대 연애하는 것도 아니고 만나서 얘기하자"며 역시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신경전을 벌이던 양 측 수장의 만남이 성사되면서 계약 무산까지 거론되던 아시아나항공 인수전 불씨는 다시 살아나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현산은 아시아나항공의 신주와 구주 인수가격을 조정하고, 코로나19가 어떻게 될 것인지 좀 더 지켜보고 난 뒤 인수를 마무리하고 싶어 한다"며 "반면 산은은 지금 바로 인수를 마무리하면 전폭적인 지원을 하겠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업계에선 현산의 요구대로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원점에서 재검토되면 금호산업이 보유하고 있는 아시아나항공 지분이 가장 먼저 협상 테이블 위에 다시 올라올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고 있다.
작년 말 주식매매계약(SPA)에서 현산은 2조101억원, 미래에셋대우는 4899억원을 각각 투입해 아시아나항공 지분 76.5%를 인수하기로 했다. 금호산업이 보유하고 있는 아시아나항공 주식(6868만8063주)을 3228억원에 인수하고 아시아나항공 유상증자를 통해 2조1772억원 규모의 신주(3억5037만557주)를 확보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항공업계 경영난이 악화되면서 '구주'를 인수하는 동시에 '신주'를 발행하는 계약은 사실상 중단된 상황이다. 현산 컨소시엄은 우선적으로 추진했던 1조4665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납입일을 무기한 연기했다. 구주 인수도 중단됐다.
'신주'보다 '구주'가 협상테이블에 먼저 올라갈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는 구주 인수가 아시아나항공 정상화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증자를 통해 발행되는 신주의 경우 증자대금이 아시아나항공에 그대로 투입된다. 현산의 투자금이 아시아나항공 경영에 사용되는 것이다. 하지만 구주 대금은 아시아나항공이 아닌 금호산업으로 흘러간다. 현산 입장에선 신주보다 구주 대금을 덜 주고 싶을 수밖에 없다.
업계는 현산 컨소시엄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되 구주 인수는 무효화하는 방안 등을 추진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산 컨소시엄이 구주 계약 무효화를 요구할 수 있다"며 "이 경우 금호산업은 아시아나항공 지분을 시장에서 블록딜 등의 방식을 통해 매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절실한) 산은 입장에서도 반대 할 이유는 없는 대안"이라고 덧붙였다.
금호산업 입장에서는 이런 현산의 요구에 대해 산은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애초부터 이번 M&A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상황이었던 탓이다. 구주와 관련해 금호산업은 현산이 지급한 계약금 10%(323억원)만을 받은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