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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여건인데…정유사 실적 벌어지는 까닭

  • 2020.08.25(화) 11:03

[워치전망대-어닝인사이드]
적자대란 와중…현대오일뱅크 유일 흑자
SKI -4397억원, 에쓰오일 -1643억원 GS칼텍스 -1333억원
'고도화율' 원유부터 달라…하반기도 격차 클듯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로 더 심해진 유가변동 속에 세계 대부분 정유사들은 지난 1분기에 이어 2분기까지 연속 적자를 냈습니다. 세계 최대 석유화학기업인 미국 엑슨모빌은 36년 만에 처음 두 분기 연속 적자를 냈고, 셰브론, 로열더치셸,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등 유수의 글로벌 에너지기업들도 줄줄이 2분기 적자 성적표를 받았죠.

국내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SK이노베이션, 에쓰오일, GS칼텍스 등이 2분기 수 천억대 영업손실을 보며 두 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한 분기만에 적자를 털고 흑자 전환에 성공한 정유사도 있었습니다. 국내 4대 정유사 중 외형이 가장 작은 현대오일뱅크였는데요. 업계 '막내'의 반란이라 할 만합니다.

◇ '저유가' 악조건 지속됐지만…

25일 비즈니스워치가 집계한 2020년 2분기 현대오일뱅크, GS칼텍스, S-OIL(에쓰오일), SK이노베이션 등 (연결 재무제표 기준 영업손익 순) 국내 정유 4사의 영업손실은 총 7241억원이었습니다. 직전 1분기 4조3775억원의 적자보다 손실은 83.5% 줄었습니다. 하지만 작년 2분기에는 4사가 6910억원의 영업이익을 합작했죠.

사업 외형은 1분기보다 더 큰 폭으로 줄었습니다. 정유 4사 매출은 17조8406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44.7%, 직전분기 대비 35.9% 감소했습니다. 연초부터 하락한 유가가 더 떨어졌고 코로나로 이동이 제한되면서 휘발유·항공유 등 석유제품 수요가 줄어 정유설비 가동률도 더 낮아진 탓입니다.

석유화학·윤활유 등 4대 정유사의 부수적 사업을 빼내고 본업인 정유부문만 본 수익성도 1분기보다는 다소 나아졌습니다. 매출은 12조6934억원으로 전 분기 대비 40.9% 감소했지만 영업손실은 총 1조254억원으로 전 분기 4조4222억원보다 76.8% 줄었죠.

유가에 따라 출렁이는 정유업의 최근 사업환경을 보면 그럴 만도 합니다. SK이노베이션에 따르면 국내 정유사들이 가장 많이 쓰는 원유인 두바이유의 2분기 평균가는 배럴 당 30.5달러로 전분기보다 20.2달러(39.8%) 하락했습니다. 북해산브렌트유는 29.2달러,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27.8달러로 각각 전분기보다 41.9%, 39.6% 값이 떨어졌습니다.

두바이유를 주로 수입하는 아시아권 정유사의 수익성 지표인 싱가포르 정제마진은 이런 유가 하락 속에 2분기 평균 배럴당 -1.4달러(시장조사업체 IHS마킷 기준)까지 떨어졌습니다. 이는 전분기보다 3.1달러 더 하락한 것입니다. 공급 과잉과 수요 부족이 겹쳐 정제 생산한 석유제품 값은 더 떨어졌기 때문이죠. 정제마진은 통상 3~5달러 선이 손익분기점입니다.

그 만큼 정유사들의 사업 여건은 어려웠습니다. 다만 2분기 시작 때보다 분기 말에 유가가 높아지면서(두바이유 기준 배럴 당 4월 33.7달러→ 6월 40.8달러) 재고 관련손실은 크게 줄었습니다. 또 래깅(lagging, 원유 구매 시점 이후 유가 상승으로 석유제품 가격이 올라 발생하는 가격차)효과도 플러스 요인이 됐습니다. 그나마 앞선 1분기보다 2분기 실적이 나아진 이유랍니다.

◇ '고도화'로 값싼 초중질유 소화 

업체별로 보면 국내 4대 정유사의 정유부문 실적은 차이가 꽤 벌어졌습니다. 1분기 경우 대체로 사업 외형이 클 수록 손실 규모도 큰 경향이 있었죠. 하지만 2분기는 사업 구조와 위기대응 능력에 따라 회복의 폭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수익성을 가장 잘 지킨 곳은 4사 중 외형이 가장 작은 현대오일뱅크. 2분기 회사 전체 매출 2조5517억원, 영업이익 132억원의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국내 4사 중 적게나마 유일하게 흑자를 냈죠. 정유사업에서는 매출 2조1086억원을 올리면서 186억원의 영업손실(영업이익률 -0.9%)을 봤습니다. 역시 다른 정유사들이 정유부문에서 수 천억대 적자를 본 것을 감안하면 발군입니다.

비결은 뭘까요? 싼 원유를 쓸 수 있어서였다고 합니다. 같은 원유를 싸게 사는 조달능력이 남달랐던 게 아닙니다. 품질이 떨어지는 더 싼 원유를 들여오더라도 이를 정제해낼 수 있는 고도화 시설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현대오일뱅크는 자사 고도화율이 국내 최고인 41.1% 라고 밝히고 있는데요, 다른 정유사들은 이 비율이 30%대 이하랍니다.

다른 정유사들은 주로 중동산 원유를 쓰지만 이 업체는 중남미산 초중질원유 투입비율을 높여 원가를 낮출 수 있었습니다. 한국석유공사 페트로넷에 따르면 멕시코로부터 들여온 원유는 지난 6월 평균 도입 단가가 배럴당 19달러대로 32달러대였던 사우디아라비아 등보다 훨씬 저렴했죠.

특히 현대오일뱅크는 2분기 초중질유 투입비율이 32.9%로 다른 정유업체 평균 6.3%보다 5배 이상 비중이 높았습니다. 이를 통한 원가 절감효과는 2분기 600억원 가량으로 추산됩니다다.

이와 함께 비교적 수요 탄력이 약한 경유를 생산하는 데 주력한 효과도 봤습니다. 코로나로 마진이 박해진 항공유(배럴 당 -0.2달러), 휘발유(배럴 당 0.5달러) 대신 유연한 설비 운영을 통해 상대적으로 마진이 양호한(배럴 당 7.5달러) 경유의 생산 수율을 47%까지 높인 거죠. 이는 타사보다 8%포인트 높은 수율이랍니다.

◇ 정유 실력차…"덩치와는 달랐다"

그 다음으로 실적 방어력이 좋았던 건 GS칼텍스입니다. 이 정유사는 적자를 내긴 했지만 전 분기에 비해 손실을 크게 줄였죠. 본업인 정유부문 영업손실은 2152억원으로 1분기보다 80.8% 감소했습니다. 이는 현대오일뱅크(96.1%) 다음으로 큰 적자 감소율입니다.

전체 매출은 4조6375억원, 영업손실은 1333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회사 전체 영업이익률은 -2.9%로 역시 현대오일뱅크(0.5%) 뒤를 이었습니다. GS칼텍스는 정유부문에서도 적자를 적잖게 줄였지만 석유화학부문이 전분기보다 31.7% 많은 266억원의 영업익을 내는 등 다른 정유 외 부문이 실적 방어에 보탬이 됐습니다.

에쓰오일은 GS칼텍스보다 사업외형이 작음에도 불구하고 더 큰 적자를 냈습니다. 2분기 매출 3조4518억원을 올리면서 1643억원의 영업손실을 봤죠. 정유부문만 보면 매출 2조5915억원에 영업손실 3587억원을 내, 영업이익률이 -13.8%를 기록했는데요. 이는 4사 정유부문 중 가장 낮은 수익성이었습니다.

에쓰오일의 정유부문 손실이 1분기보다 줄어든 것은 전 분기 7210억원에 달했던 재고관련 손실이 1690억원으로 줄어든 게 거의 전부였습니다. 이 외 석유화학부문에서 911억원, 윤활기유 사업에서 1033억원의 영업이익을 보탰습니다.

SK이노베이션 정유부문은 매출 4조5177억원, 영업손실 4329억원을 냈습니다. 전분기보다 재고 관련 손실이 7544억원 줄었고, 중동산 원유의 가격 하락과 래깅 효과로 마진도 3761억원 개선됐죠. 사업 규모가 큰 만큼 손실도 가장 컸지만, 영업이익률은 -9.6%로 에쓰오일보다는 양호했습니다. 석유화학·배터리 등 다른 사업을 모두 합친 영업손실도 4397억원으로 이와 비슷했습니다. 전체 적자 규모는 사상 최대였던 전분기보다 1조3355억원 줄었습니다.

◇ 코로나 풀려도 회복 장담 못하는 이유

정유업계는 올 하반기 차츰 업황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정유업체 한 관계자는 "산유국의 감산조치 연장으로 원유 가격 상승이 예상되고 코로나 이동제한 조치 완화로 석유제품 수요가 회복돼 정제마진도 개선될 것"이라며 "역대급 최악이었던 상반기보다는 나아지겠지만 그 과정에서 실적 격차는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상황이 누그러들더라도 녹록지 않습니다. 위축된 이동 수요가 다소 살아날 수는 있지만, 공급과잉은 언제 해소될지 모르는 상황이어섭니다.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를 위시한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미국 셰일오일에 맞서며 나타나는 석유 증산경쟁은 코로나가 풀리면 오히려 다시 본격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다른 정유업체 한 관계자는 "팬데믹이 하반기 해소 국면에 들어서더라도 정유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 회복이 지지부진할 것이라는 예상이 짙다"며 "글로벌 경기의 회복이 일정 기간 지속성을 확보해야만 유가도 안정되고 석유 수요도 증가해 정유산업도 본궤도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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