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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人워치]해운대란 속 HMM 예비선장이 되뇐 '책임감'

  • 2021.07.13(화) 14:02

'견습' 뗄 항해 나서는 조재신 일등항해사
"출항 아직 떨려…몸 상태 최상으로 관리"
"수출입 최전선 자부심…만선운항 더 신중"

글로벌 경기가 빠르게 회복하면서 우리나라 수출 경제의 '연결고리'인 해운업계가 그 어느 때보다 바쁘다. 신속하고 안전하게 목적 항구까지 화물들을 운송해야 하는 막중한 역할을 맡고 있어서다. 이런 상황은 '흠슬라'라 불리는 국내 유일 원양 해운사 HMM의 주가 흐름에도 드러난다. 화물을 운송할 선박이 모자라 '해운대란'이 벌어진다는 요즘이다. 그리고 그 중심엔 선박을 이끄는 항해사들이 있다.

지난 9일 전화로 만난 조재신 HMM 일등 항해사(일항사)에게 현재 해운업황과 항해사라는 직업에 대해 들어볼 수 있었다. 조 일항사는 '중국-대만-인도네시아-필리핀' 항로의 아시아 구간을 다녀온 뒤, 현재 약 한 달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오는 14일엔 다시 뱃길에 오른다. 이번엔 2만40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대)급 컨테이너선을 끌고 수에즈 운하를 거쳐 유럽으로 향한다.

항해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책임감'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조 일항사가 이 일을 한 건 14년째다. 2008년 한국해양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항해사가 되는 전문 과정을 밟은 후 처음으로 배에 올랐다. 그는 "교육과정에서 책임감을 기르기 위해 규칙, 규율을 지켜야 하는데 이런 생활에 매력을 느꼈다"며 "학교에선 제복을 입고 다녔는데 그 모습도 꽤나 멋져 보였다"고 그 시절을 떠올렸다.

뱃길에 오르는 것도 제법 익숙해진 연차인 그는 지금도 승선을 앞둘 때면 떨린다고 했다. 조 일항사는 "처음 승선했던 14년 전처럼 지금도 배를 타기 직전에 가장 떨린다"며 "설렘도 있지만 안전하게 항해를 해야 하는 책임감과 중압감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원양 컨테이너선에 탑승하는 인원은 20명 안팎이다. 선체를 관리하는 갑판부, 엔진 등을 정비하는 기관부, 선원들의 영양을 책임지는 조리부로 나뉜다. 항해사는 갑판부에 속한다. 일등항해사는 선장 바로 밑에 있는 직급으로 갑판부 내에선 가장 직급이 높다. 일반적으로 배에선 8시간, 3교대 방식으로 근무가 돌아간다. 

그는 유독 '책임감'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항해사에게 가장 중요한 자격요건이 책임감이라는 얘기처럼 들렸다. 그는 "컨테이너선에 가득 실린 상품들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3000억~4000억원이다. 책임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특유의 '루틴'도 생겼다. 조 일항사는 "승선 전에 몸을 최상의 상태로 올리기 위해 1~2주일 전까지 외부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는다"라며 "마음의 준비도 단단히 한다"고 말했다.

'태풍·해적'  바다 위 넘치는 돌발변수

뱃일은 고되다. 한 번 배를 타면 6개월을 타지에서 보내야 한다. 망망대해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조 일항사는 "태풍을 마주할 땐 피항을 하고 해적들이 자주 출몰하는 구간을 통과할 땐 완전무장을 한 보안요원들을 태워 운항하기도 한다"며 "항해 중 엔진이 고장 나거나 화재가 발생한 선박들을 구조하러 간 적도 있다"고 전했다.

배에서 예기치 못한 환자가 발생할 때도 있다. 조 일항사는 "항해사들 대부분이 의료자격증을 갖고 있다. 전문적인 치료는 할 수 없지만 응급처치나 기본적인 의약품을 다룰 수준이다. 요즘은 기술이 발전해 육상팀에 치료 자문을 구하기도 하고 화상으로 연결해 진료안내를 받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사진=HMM 제공

1년의 절반 이상을 바다 위에서 지내다 보니 가족들과 함께 지낼 시간도 부족하다. 그는 "선원들 중엔 향수병을 겪는 선원들도 있다. 경조사를 참여하지 못하는 일은 다반사"라며 "예전엔 중간 경유를 하러 부산항에 들어오면 가족들을 잠깐 볼 수 있었지만 작년부터는 코로나(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때문에 그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래도 바다는 육지에서 느끼지 못하는 매력이 넘치는 곳이다. 그는 "웬만한 항로는 다 다녀본 거 같다. 수에즈, 파나마 운하도 운항했고 희망봉, 알래스카도 지났다"며 "항해를 하다 보면 물이 하늘로 치솟는 용오름 현상을 보기도, 돌고래 떼와 범고래가 물을 뿜으며 배 옆을 지나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시드니에선 오페라하우스를 지나고 미국 동부로 갈 땐 뉴욕의 멋진 야경을 보며 항해한다"는 그의 말에는 낭만도 묻어났다.

힘든 만큼 보람도 넘친다. 조 일항사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화물들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운송하면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보람을 느낀다"며 "수출입의 최전선에 서 있다는 기분도 들어 항해사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가득 실은 컨테이너선, 운항엔 부담

/사진=HMM 제공

코로나19는 해운 업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발병 초기엔 수출이 급감해 큰 타격을 받았지만 경기가 회복세에 진입하면서 가장 바쁜 산업 중 한 곳이 됐다. 해운업황이 항해사들의 운항 횟수에도 영향을 미쳤을까. 그는 "항해사들의 운항 횟수가 늘지는 않았지만 배에 물건이 선적되는 양은 확실히 다르다"며 "예전에는 60~70% 정도가 선적됐다면 현재는 100%를 꽉 채워 운항을 할 때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작년 4월 이후 HMM이 아시아~유럽 노선에 투입한 2만4000TEU급 컨테이너선 12척은 38항차(선박의 운항 횟수) 중 37항차가 만선이었다. 하지만 선적량이 많아질수록 항해사들의 부담은 커진다. 선박에 컨테이너가 많이 실릴수록 운항이 까다로워지기 때문이다.

조 일항사는 "화물이 많이 실릴수록 감항성(Seaworthiness·선박의 정상적인 항해가능 여부) 유지가 어려워진다. 고박(화물고정) 한계도를 계산해 선적해야 하고 선박복원력(바다에 떠 있는 선박이 바람, 파도 등에 의해 흔들렸을 때 다시 원래대로 일어서는 힘), 흘수(선체의 맨 하단부터 수면까지의 수직거리), 수심 등 고려해야 할 게 많아진다"며 "만선도 좋지만 안전운항이 더 우선"이라고 설명했다.

역대급 실적을 써 내려가고 해운업계에 2021년은 잊을 수 없는 해다. 조 일항사에게도 올해는 특별한 해다. 그는 올해 초 견습 선장이 됐다. 선장이 되기 위해 밟아야 하는 직전 단계로 일종의 수습 훈련 과정이다. 조 일항사는 "현재 선장 업무를 보조하고 선장의 감시 하에 대행하면서 각종 업무를 숙지해나가고 있다"며 "지상 휴가 중에도 교육팀에서 각종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약 6개월 뒤면 조 일항사는 선장이 된다. 이번 운항이 견습선장을 달고 항해하는 마지막 운항인 셈이다. 앞으로 어떤 선장이 되고 싶은지 묻자 또 책임감이다. 조 일항사는 "선장이 된다는 것은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라며 "비상 대처법을 숙지하고 있어야 하고 결정도 내릴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배에는 20대의 젊은 선원부터 다른 국적을 가진 외국인 선원까지 다양하다. 리더는 명령하는 자리가 아닌 함께 갈 수 있도록 격려하는 자리라 생각한다"며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해주는 선장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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