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M 노사가 서로 물러날 수 없는 벼랑 끝 대치를 벌이고 있다. 수년간 임금을 동결한 노조와 3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을 받은 사측 모두에게 명분은 있다. 좁힐 수 없는 입장차를 확인할 수록 서로에 대한 감정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경영 정상화 과정에서 배당 한푼 받지 않은 최대주주 산업은행도 양보가 쉽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불만 붙이면 폭발할 수준"
지난 25일 HMM 해상노조는 이날로 예정된 단체 사직서 제출을 유보했다. 해상노조는 지난 24일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투표자의 92.1%가 파업에 찬성하며 단체행동을 이어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사측과 추가 대화 여지를 열어두며 사직서 카드를 접었다. 노사의 재교섭은 다음 달 1일 열릴 예정이다.
HMM의 육상노조도 오는 31일 쟁의행위 찬반투표에 나설 예정이다. 육상노조와 해상노조는 지난 19~20일 중앙노동위에서 임금단체협상 조정회의를 진행했으나 회사와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조정중지를 통보받았다. 파업을 벌일 수 있는 쟁의권을 확보한 것이다. 두 노조는 지난 24일 공동투쟁위원회를 발족하며 공동 대응하고 있다.
협상과정에서 노사는 임금인상률을 두고 입장차를 줄였다. 노조는 '임금 25% 인상과 성과급 1200%' 안을 고수하고 있다. 다만 사측은 '임금 5.5% 인상과 격려금 100%'에서 '임금 8% 인상과 격려·장려금 500%'로 진전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줄다리기가 팽팽하다. 회사 관계자는 "노사 모두 대화하려는 의지는 있고, 파업은 막아야 된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며 "하지만 분위기가 과열되면서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불만 붙이면 폭발할 수준"이라고 전했다.
더 물러 설 곳 없다
노사 감정의 골이 깊어진 배경엔 서로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명분을 갖고 있어서다.
HMM 육상직원은 2012년 이후 8년간, 해상직원은 2016~2019년(2016년 제외)에 임금을 동결했다. 육상·해상노조 입장에선 지난해 임금을 2.8% 올렸지만 그간 억눌렸던 임금을 보상받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작년 국내 해운업계 연봉을 비교해보면 팬오션 8700만원, 현대글로비스 7232만원, HMM 6246만원 등으로 HMM이 낮은 수준이다.
이 가운데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로 업무강도는 더 높아졌다. 업계 관계자는 "보통 항구에 도착하면 육지에서 휴식을 취하는데 코로나19 탓에 배에서 내리지도 못한다"며 "여기에 최근 선박은 커지고 있는데, 선박 크기와 상관없이 한 선박에 일하는 직원의 수는 23명 정도로 고정되면서 일이 더 많아졌다"고 전했다.
사측도 노조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일 순 없다. 올 상반기 영업이익(2조4082억원)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반짝 호황'에 그칠 수 있다는 경계심을 늦출 순 없다. 코로나19 이후 물류 대란이 끝나고 나면 상황이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상황이다. 회사 입장에선 경영 환경을 고려해 단계적인 임금 인상을 원할 수밖에 없다.
협상 테이블엔 사측이 앉아있지만, 대주주인 산은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2016년 한진해운 파산 이후 정부는 HMM(옛 현대상선)을 살리기 위해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추진했다. 2017년부터 현재까지 HMM 자본보강을 위해 산은 1조3400억원, 해양진흥공사 2조443억원 등 총 3조3843억원을 투자했다. 현재 산은과 해양진흥공사 직원 6명이 HMM에 파견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초 HMM 노조가 청와대를 찾은 것도, 최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파업까지 가지 않고 정부가 노력하겠다"고 말한 것도 HMM의 대주주가 국책은행인 산은이라서다. 노조가 사측의 제안을 받아들이거나, 정부가 노조의 요구를 수용해야 협상이 타결되는 구조인 셈이다.
회사 측은 노조가 추진하는 '3주간 파업'이 현실화되면, 회사측 피해 규모가 5억8000만달러(6766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여기에 국내 수출기업에 끼칠 물류 대란 피해 규모는 산정하기도 쉽지 않다.
이날 한국해운협회는 "파업이 현실화될 경우 국내 유일의 원양 컨테이너 운송사의 선박운항이 중단돼 수출기업의 어려움이 더욱 가중될 것"이라며 "국내 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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