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한 전자제품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이미 수많은 전자기기를 사용하며 살고 있지만 내일이면, 다음 달이면, 내년이면 우리는 또 새로운 제품을 만납니다. '보니하니'는 최대한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 전자기기를 직접 써본 경험을 나누려는 체험기입니다. 직접 보고 듣고 만지며 느낀 새로움을, 더하거나 빼지 않고 독자 여러분께 전하려 합니다.[편집자]
'비스포크 슬림' 청소기를 처음 본 건 지난 4월이다. 삼성전자가 비스포크 디자인을 더한 새로운 로봇청소기라며 '비스포크 제트 봇 AI' 공개행사를 열었을 때였다. 당시 삼성전자 관계자는 출시 예정 제품으로 비스포크 슬림을 들고 나왔다. 가격도 정해지지 않았을 시기라 제품을 소개한 시간은 1분 남짓으로 매우 짧았다.▷관련기사: '집청소하는 자율주행차?'…삼성의 로봇청소기 재도전(4월27일)
하지만 뇌리에는 강하게 남았다. 요새 새로 나온 청소기보다 훨씬 간편해 보여서였다. 간편해 보인다는 건 저렴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청정스테이션이 포함된 삼성전자의 최신 청소기는 100만원이 넘는다. 혼수로 마련하지 않는 이상 일반 소비자들이 100만원대 청소기를 구매하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출시 후 출고가를 확인해보니 역시 예상한 정도의 가격대였다. 기본 제품은 50만원대, 물걸레 헤드를 포함하면 60만원대다. 완전히 저렴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최고 사양 제품의 절반 이하 가격이다. 물론 '자동 먼지 비움' 같은 고급 기능이 자체 탑재돼 있지는 않다. 하지만 비스포크 디자인을 더해 예쁘고, 또 관리도 간편하다.
지갑 열 만 한 세 가지 이유
체험기를 쓰기 위해 삼성전자로부터 제품을 대여해 한 달가량 사용해보니 만족감이 컸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기능은 거치대 없이도 세울 수 있는 '셀프 스탠딩'이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타사 제품은 벽에 거치대를 달아야 제대로 쓸 수 있다. 하지만 함부로 벽에 구멍을 낼 수 없는 세입자 신세라 거치대 없이 그저 청소기를 벽에 기대어 놓고 사용한다. 그래서 툭하면 쓰러트리기 일쑤다.
거치대가 필요 없는 청소기는 시중에 많지만 처음 사용해봐서인지 편리하게 느껴졌다. 날씬한 몸매에 길이가 꽤 되지만 어디에 기대지 않아도 혼자 균형을 잘 잡는다. 쓰다가 아무데서든 세우면 거치가 된다. 보관이 용이할 뿐 아니라, 청소하다 잠시 멈출 때도 바로 세워둘 수 있는 점이 편했다.
마음을 사로잡은 또 하나의 기능은 먼지통 비움 방식. 제품 하단을 발로 누르면 본체와 청소기 헤드가 분리된다. 그리고 상단 버튼을 누른 상태에서 제품 핸들을 밀어주면 먼지통 문이 열린다.
쓰레기통 위에 가져다 대고 핸들을 밀어주면 먼지통을 바로 비울 수 있는 것이다. 먼지도 적게 날리고, 먼지를 손에 묻히지 않아도 돼 편리했다. 먼지를 빨아들이는 기기(청정스테이션)를 갖춰야 하는 자동 먼지 비움 기능도 부럽지 않았다. 그래도 청정스테이션을 사용하고 싶다면 별도 호환 커넥터를 구매해야 한다.
제품 손잡이 끝에 가죽끈을 달 수도 있는데 이 역시 의외로 편리했다. 디자인 측면에서 추가된 액세서리라고 생각했지만 실제 사용해보니 쓸모가 있었다. 청소기를 밀다 보면 손에 힘이 빠져 청소기를 놓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를 방지해줬다.
가격은 낮추고, 편의성은 높이고
본체는 청소기 헤드와 쉽게 분리됐다. 물걸레 헤드로 교체하기도 쉬웠다. 허리를 굽히지 않고 발만 사용해도 충분히 바꿔 낄 수 있었다. 필터 처럼 무게가 있는 부품이 제품 아래에 탑재돼 있어 오래 사용해도 손목에 무리가 덜 가는 느낌도 받았다. 무게가 아래쪽에 있어 물걸레 사용 시에도 바닥을 깨끗하게 닦을 수 있다는 것이 삼성전자 측 설명이다. 제품 무게는 2.6kg 수준이다.
다만 외산 무선청소기의 대표 격인 다이슨의 슬림형 모델보다는 무겁다. 바닥을 청소하기에는 오히려 적당한 무게감이 청소를 돕지만 흡입구를 위로 들어 청소하기는 어려웠다. 손잡이 부위에 무게가 실려 있는 다이슨과의 작지 않은 차이다. 하지만 다이슨은 거치대가 필수다.
청소 편의성뿐 아니라 청소기 관리도 간편했다. 본체에 장착된 먼지를 걸러주는 싸이클론과 필터, 먼지통을 꺼내 물세척하는 방식이다. 청소기 헤드를 본체와 분리한 후 본체에서 세 가지 부품을 쉽게 꺼낼 수 있었다. 다만 필터는 세척 후 물기가 마르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24시간 이상 건조 후 조립하는 것을 권장하기 때문에 시간 여유를 두는 것이 좋다.
청소기의 본질인 흡입력은 아쉬웠다. 비스포크 제트가 210W(와트)의 출력을 갖춘 데 비해 비스포크 슬림은 최대 150W다. 흡입력은 3단계 조정이 가능한데, 가장 강한 '맥스(MAX) 모드'로 설정해야 '아 청소하는 것 같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용 시간이 급격히 줄어든다. 모드 별로 △일반 50분 △강력 25분 △MAX 5분이다. 집이 작아 5분이면 충분했지만, 넓은 집이라면 아쉬울 지점이다.
충전 잔량은 제품에 탑재된 LED 램프로 확인할 수 있다. 완충일 때는 초록색, 충전이 필요할 때는 빨간 램프가 켜진다. 필터가 제대로 꽂히지 않았거나 먼지통을 비워야할 때도 빨간 램프가 점등돼 직관적으로 확인이 가능했다.
한 마디로 비스포크 슬림은 '실속형'이다. 있을 건 있고, 없을 건 없다. '아무리 좋다고 해도 100만원 넘는 청소기를 어떻게 사?'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소비자라면 솔깃할 만한 제품이다.
고가 제품인 '비스포크 제트'로 예산이 넉넉한 신혼 수요를 잡고, 중가 제품인 '비스포크 슬림'으로 싱글들을 접수하려는 게 삼성전자 심산인 듯하다. 삼성전자는 비스포크 브랜드로 가전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삼성전자가 국내 무선청소기 시장에서 비스포크를 통해 '절치부심' 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일단 한 사람의 지갑은 열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