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에 대해 조건부 승인 결정을 내렸다. 합병을 위해선 두 기업의 운수권(노선에 취항할 수 있는 권리)과 슬롯(시간당 항공기 이착륙 허용 횟수) 일부를 반납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업계에선 엇갈린 평가가 나오고 있다. 조건부 승인으로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 시너지가 반감될 것이란 우려와 국내 항공사 재편의 토대가 될 것이란 기대감이 공존하는 분위기다.
"1+1=0.5"
최근 공정위가 내린 조건부 승인의 핵심은 '운수권 재분배와 슬롯 재조정'이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기업 결합 시 독점이 발생하는 일부 노선에 대한 운수권과 슬롯을 재배정한단 얘기다. 공정위는 두 기업 결합으로 인천-로스앤젤레스(LA), 인천-뉴욕, 인천-시애틀 등 10개 노선에 대해 독점이 발생할 것으로 판단했다.
공정위 측에 따르면 회수한 운수권과 슬롯은 국내 항공사에만 재분배할 방침이다. 국내 FSC(대형항공사)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2곳 밖인 점을 고려하면 운수권과 슬롯은 국내 LCC(저가항공사) 업계에 모두 돌아갈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운수권과 슬롯을 어떻게 배분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공정위는 이번 달 말 전원회의를 열고 최종 규제 대상 노선을 결정할 예정이다.
업계에선 이번 공정위 결정으로 두 기업의 합병 시너지가 반감할 것으로 우려 중이다. 이번 공정위의 조건부 승인에 사실상 이익을 누리는 건 외항사라는 주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항공업은 안전과 서비스에 민감하다. 특히나 장거리 노선은 더 그렇다"며 "운수권과 슬롯을 분배한다고 해서 이용객이 장거리 노선 경험이 전무한 LCC를 이용할 것이란 생각은 큰 착각"이라고 지적했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도 "공정위가 두 기업의 슬롯과 운수권을 국내 항공사에 재분배하겠다고 못 박아둔 상태지만 결국 외항사들이 반사이익을 누리게 될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이번 두 기업의 합병 시너지 효과는 '1+1=0.5'가 된다"고 우려했다.
LCC 업계의 자체 경쟁력에도 의문 부호가 붙고 있다. 장거리 운항을 위해선 대형 항공기 도입이 필수적인데 이를 확보할 정도의 재무 능력을 갖췄냐는 지적이다. 현재 LCC 업계 대부분은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로 인한 경영난 악화로 적자가 눈덩이처럼 분 상태다. 원활한 장거리 운항을 위해 필요한 5~6대의 대형항공기를 구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인력 구조조정 문제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발표 당시 "구조조정은 없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이번 공정위의 조건부 승인대로 기업 결합을 할 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황 교수는 "조건부 승인 없이 기업 결합을 해도 약 1000여명의 인력이 겹친다"며 "조건부 승인에 맞춰 기업결합을 하게 되면 인력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기회가 없었을 뿐 할 수 있다"
LCC 업계에선 이번 공정위의 조건부 승인을 반기는 분위기다. 시장이 재편되면서 국내 항공업계에 활력이 더해질 것이란 기대다.
LCC 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은 LCC 계열사(진에어·에어서울·에어부산)를 포함해 5개 기업의 합병으로 봐야한다"며 "공정위가 5개 기업 합병으로 발생하는 독점 노선에 대해 LCC 업계에 운수권과 슬롯을 재분배하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어 "LCC 3곳 합병으로 인해 발생하는 단거리 일부 독점 노선에도 슬롯과 운수권이 재분배 될 것으로 보여 숨통이 트일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번 공정위의 조건부 승인이 외항사의 반사이익으로 이어질 것이란 업계의 우려도 지나치다는 입장이다. 이 관계자는 "FSC가 그동안 우월적 시장 지위를 누리면서 LCC가 장거리 노선을 확보하지 못했던 것뿐 LCC 업계 역시 충분한 능력을 갖췄다"며 "기회가 없었지 준비는 하고 있었다"고 반박했다.
LCC 업계는 대형항공기 도입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LCC 업계 일부는 대형항공기 도입을 이미 했거나 도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티웨이항공은 내년 2월 중형 항공기인 A330-300을 도입할 예정이다. 코로나19 상황이 완화하면 유럽 크로아티아, 호주 시드니 등에 운항할 계획도 갖고 있다. 최근 출범한 에어프레미아도 대형항공기 보잉 787기종을 추가 도입해 LA 노선 취항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다른 LCC 업계 관계자는 "물론 대형항공기의 추가 확보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일부 업계의 주장처럼 완전히 '제로'인 상태에서 준비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운수권·슬롯 재분배가 완료되는데 적어도 2~3년은 걸리는데 그동안 준비할 시간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코로나19로 경영 상황이 좋지 않으니 장거리 노선을 취항하지 말라는 건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그동안 알짜배기 노선을 독점한 FSC의 운수권과 슬롯을 분배받으면 오히려 수익성이 개선되면서 경영 회복에도 도움이 될 것"라고 덧붙였다.
또 운수권과 슬롯이 LCC 업계에 재분배되면 소비자가 혜택을 누릴 것이라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10~15년 전, 가까운 일본을 가더라도 비행기 가격이 굉장히 비쌌다"며 "하지만 LCC가 시장에 진입하면서 단거리 노선 가격이 많이 내려갔고 결국 혜택은 소비자가 누렸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