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조선해양의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유럽연합(EU)의 기업결합 불허로 무산되면서 현대중공업그룹 지배구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기 위해 만든 중간지주회사인 한국조선해양의 역할이 애매해지면서다. '현대중공업지주→ 한국조선해양→ 현대중공업·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로 이어지는 '옥상옥' 구조를 계속 유지할지가 관건이다.
애매해진 '옥상옥'
최근 EU 반독점당국이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을 불허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지주는 즉각 "EU 결정은 비합리적이고 유감스럽다"며 "향후 최종 결정문을 면밀히 검토한 후, EU 법원을 통한 시정요구 등 가능한 대응 방안을 종합적으로 마련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판을 뒤집을 뾰족한 수는 사실상 없다. EU가 그동안 양사 합병은 액화천연가스(LNG) 선박 시장 독과점이 우려된다며 LNG선 사업부문 매각 등 시정 조치를 요구했지만, 현대중공업그룹이 EU를 설득할 카드를 내놓지 못했다. 업계에선 사실상 '예고된 불발'이라는 분석이라는 말이 나온다.
'조선 빅딜'이 좌초되면서 업계의 관심은 한국조선해양으로 쏠린다. 2019년 출범한 한국조선해양은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해 설립된 중간지주사다. '조선 빅딜'을 추진하면서 현대중공업그룹 지배구조는 '현대중공업지주→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에서 '현대중공업지주-한국조선해양-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으로 바뀌었다. 현대중공업에서 한국조선해양을 물적분할하면서다.
물적분할 과정에서 비상장사가 됐던 현대중공업이 지난해 다시 상장하면서 한국조선해양은 지위는 더욱 애매해졌다. 주식 시장에서 투자할 수 있는 대상이 하나(한국조선해양)였다가 둘(한국조선해양·현대중공업)로 분산돼 가치가 기존보다 떨어지면서다. 현대중공업그룹 지배구조가 현대중공업지주와 한국조선해양이라는 '옥상옥'이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R&D 전문사로 유지할까
현대중공업그룹은 '플랜B'를 가동할 예정이다. 현대중공업그룹 관계자는 "최종 결정문을 받은 다음에 다음 스텝을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다음 스텝'이 지배구조 개편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한국조선해양은 현재 조선 자회사들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연구·개발(R&D)에 집중하는 기술 중심회사로 자리를 잡고 있다. 한국조선해양 직원 대부분도 미래기술연구원 소속 연구원이다. 그룹 측은 한국조선해양을 중간 지주회사보다 R&D 전문회사로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한국신용평가는 최근 "(인수 불발로) 전후방 교섭력의 강화 가능성이 무산된 점은 아쉬운 대목이나, 신용도상 부담 요인이 해소되는 셈이기도 하다"며 "인수 관련 재무 부담이 해소되고, 상대적으로 열위한 대우조선해양이 편입되지 않아 그룹 신용도 측면의 부담도 제거된다"고 분석했다.
한신평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지주는 대우조선해양 인수 시점에 1조2500억원 규모의 한국조선해양 주주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약 3900억원을 납입해야 했고, 유상증자가 실패할 경우 투자 규모가 확대될 가능성도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현재 구조가 유지되면 '지주사 할인' 우려는 지속될 것이란 분석이다. SK증권은 지난달 기업결합 결과가 무엇이든 악재는 아니라면서 한국조선해양에 대해 지주사 할인율 20%를 적용하며 목표주가를 15만원에서 12만원으로 하향 조정한 바 있다. 17일 현재 한국조선해양 주가는 9만4400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사모펀드가 관심가질까
또 다른 관심은 정부와 채권단이 대우조선해양을 어떻게 할 것인지다.
정부는 "대우조선해양의 근본적 정상화를 위해서는 '민간 주인찾기'가 필요하다는 것이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라며 "외부전문기관의 컨설팅 등을 바탕으로 산업은행(대주주) 중심으로 대우조선 경쟁력 강화방안도 조속한 시일 내에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장에선 포스코그룹, 한화그룹 등이 새로운 인수 후보자로도 거론됐으나 재무 부담과 사업 시너지 효과를 고려하면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본다.
엄경아 신영증권 연구원은 국내 관련 업계 기업들이 관심을 보일 가능성을 낮게 보면서 "독과점 문제가 생기지 않는 주체가 떠오를 수 있고, 업황이 턴어라운드하고 있으므로 사모펀드에선 관심이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사모펀드와 전략적 투자자(SI)가 자본을 모아 인수에 나서는 시도도 예상 가능한 방식이나, 그 주체가 외국기업이라면 분위기가 또 달라질 것이란 설명이다. 사업 노하우와 기술의 해외 유출 우려가 있어서다. 산은 관계자는 "조만간 구체적 대응 방안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