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개막한 세계 최대 IT 전시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2'에서 '인터넷 망 사용료'가 중심 주제로 떠올랐다. 각종 모바일·통신 신기술이 발표되는 MWC에서 망 사용료와 같은 주제가 주목받은 건 이례적이다.
현재 국내에선 인터넷 사업자(ISP)인 SK브로드밴드와 콘텐츠 제공 사업자(CP)인 넷플릭스의 재판도 진행되고 있어 주목도는 더 높은 상황이다.
장외 알력 다툼
1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MWC 주최 측인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는 이날(현지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디지털전환을 위한 자금조달'을 주제로 장관급 협의를 진행한다. 이 자리에선 ISP의 네트워크 투자금은 망 사용료를 거둬 조달해야 한다는 내용이 논의된다.
회의 직후 GSMA는 'CP는 망 사용대가를 지급하라'는 내용의 공동 서명을 발표할 것으로 관측된다. GSMA에 따르면 통신사업자가 오는 2025년까지 네트워크에 투자해야 할 비용은 9000억달러(약 1086조원)다. 일정 수준의 비용을 CP가 부담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게 GSMA의 주장이다.
국내 통신업계도 망 사용료 정책 협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GSMA 이사진인 구현모 KT 대표는 관련 회의에 참석한다. SK텔레콤의 유영상 대표, LG유플러스 황현식 대표 또한 각종 회의에서 이와 관련한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이번 MWC에서 가장 주목받을 내용"이라고 말했다.
신기술이 아닌 망 사용료가 더 주목받는 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망에 부담을 주는 트래픽이 폭증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확산된 이후로 '집콕' 생활이 길어지면서 유뷰브 등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를 시청하거나 포털 콘텐츠를 찾는 인구가 급증했다.
특히 미국 CP인 구글(유튜브), 넷플릭스가 발생시키는 트래픽은 그 외 국가 CP보다 압도적이다. 국내를 살펴봐도 2019년 6141테라바이트(TB) 수준이었던 동영상 트래픽은 지난해 1만4642TB로 2배 이상 증가했는데, 이 중 구글과 유튜브의 비중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CP와 ISP간의 '수입 불균형'도 문제다. 유럽 통신사의 경우 20여년 이상 통신요금 인상에는 제한을 받고 있지만, 네트워크 투자는 계속되고 있다. 전통적인 비즈니스의 한계에 부딪힌 이들에게 빅테크의 망 사용료는 새로운 수입원으로 떠오르고 있다.
유럽 4대 통신사인 도이체텔레콤과 오랑쥬, 텔리포니카, 보다폰은 최근 "(망 사용료 없이는) 매우 중요한 투자에 대해 실행 가능한 수익을 올릴 수 없다"며 유럽연합(EU) 의회를 상대로 공동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세기의 재판'
망 사용료에 대해선 전 세계가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작년 7월 한국 재판부는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제기한 '망 사용료를 낼 의무가 없다'는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에서 SK브로드밴드의 손을 들어줬다. CP와 ISP간 공개적인 소송에서 ISP가 승소한 사례는 세계 최초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 4대 통신사의 공동 성명을 실으며 "유럽 통신사들의 성명은 최근 한국에서 일어난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간 법정 분쟁에 호응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재판 결과가 ISP 진영에 힘을 실어준 모습이다.
최근에는 이를 인용·분석한 추가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망 사용료를 부담하지 않는다면 결국 넷플릭스를 시청하지 않는 사용자가 부담할 인터넷 요금이 확대된다는 내용이다. 이는 ISP 산업이 판매자(넷플릭스)와 소비자(인터넷 이용자) 모두에게 요금을 받는 '양면 시장'으로, 어느 한쪽이 부담을 안 하면 다른 한쪽의 부담이 커진다는 걸 지적한 것이다.
로슬린 레이튼 덴마크 아알보그대 교수는 포브스지 기고문을 통해 "한국의 인터넷 가입자는 2300만명 정도지만 넷플릭스 가입자는 500만명에 불과하다"며 "(망 중립성 원칙에 따라 망 사용료를 내지 않겠다는) 넷플릭스의 제안에 따르면 통신사는 콘텐츠의 저장, 처리, 전송비를 넷플릭스 가입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가입자에게 전가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