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세포 간 신호전달 물질인 '엑소좀'을 활용한 치료제 개발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엑소좀 치료제는 세포 활용 치료제와 효과는 비슷하지만 보관이나 타깃 확대 등이 더 용이하다. 글로벌 제약사인 로슈, 재즈 파마슈티컬스 등이 대규모 기술투자를 단행하면서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주목하는 추세다. 특히 세계적으로 아직 개발에 성공한 엑소좀 치료제가 없어 국내 기업들에도 가능성이 열려있는 시장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국내 바이오벤처 중심 '엑소좀' 치료제 연구 활발
엑소좀은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의 필립 스탈(Philip Stahl) 교수팀과 캐나다 맥길대의 로즈 존스톤(Rose Johnstone) 교수팀에 의해 1983년 비슷한 시기에 각각 발견됐다. 엑소좀은 세포가 분비하는 50~150나노미터(nm) 크기의 소낭(세포질 내 액체주머니)으로, 조직‧기관이 손상됐을 때 복원을 유도하고 촉진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차세대 치료제 물질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에서는 바이오벤처 기업을 중심으로 엑소좀 치료제 연구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엑소좀 활용 신약 개발을 활성화하기 위해 최근 14곳의 바이오기업들이 뭉쳐 '엑소좀산업협의회'를 출범하기도 했다. 로제타엑소좀, 브렉소젠, 시프트바이오, 에스엔이바이오, 엑소스템텍, 엑소좀플러스, 엑소코바이오, 엑소퍼트, 엑솔런스바이오테크놀로지, 엠디뮨, 엠디헬스케어, 웰에이징엑소바이오, 이언메딕스, 일리아스바이오로직스 등이다.
기업별로 살펴보면 지난 1월 1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한 '브렉소젠'은 치료용 엑소좀 플랫폼(BG-Platform)을 개발 중이다. 이번에 조달한 자금으로 오는 6월 국내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에서 엑소좀 기반 아토피피부염 치료제 'BRE-AD01'의 임상 1상에 진입할 계획이다.
일리아스바이오로직스는 고분자 물질인 치료용 단백질을 자유로운 형태로 엑소좀 내부에 탑재하는 기술 'EXPLOR'을 적용한 염증질환 치료제 'ILB-202'를 개발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에서 관련 특허를 등록했으며 올해 보건당국에 임상1상을 신청할 예정이다.
대웅‧종근당 등 제약바이오 기업과 협업도 잇따라
특히 다른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과 손잡고 엑소좀 신약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는 곳도 있다. 엠디뮨은 지난해 카이노스메드와 '바이오드론(BioDrone) 기술' 관련 특허권과 노하우에 대한 라이선스 및 공동 연구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바이오드론'은 엑소좀을 활용해 약물을 체내에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기술로, 세포로부터 엑소좀을 인공적으로 생산해 생산 수율 및 엑소좀 추출 대상 세포의 다양성을 늘려 임상적 적용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카이노스메드는 자사가 개발 중인 항암 치료제 후보물질에 엠디뮨의 차세대 약물전달시스템을 적용, 개발을 진행한다.
줄기세포 유래 엑소좀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는 엑소스템텍은 지난 1월 대웅제약과 공동개발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대웅제약은 자사의 줄기세포 플랫폼 'DW-MSC'에서 엑소좀을 추출, 정제하는 기술을 확립하고 엑소스템텍과 엑소좀 치료제 확장 연구 및 신규 적응증에 대한 공동 개발을 진행할 계획이다.
'엑소좀산업협의회' 소속은 아니지만 마이크로바이옴 유래 엑소좀을 개발 중인 프로스테믹스도 종근당바이오와 협력에 나섰다. 양사는 최근 의약품위탁개발생산(CDMO) 계약을 체결, 종근당바이오가 CDMO를 맡고 프로스테믹스가 마이크로바이옴 유래 엑소좀의 임상시험을 수행할 예정이다. 프로스테믹스의 마이크로바이옴 유래 엑소좀은 경구형 자가면역질환 치료제로, 비임상에서 염증성사이토카인을 억제하고 손상된 장기를 회복하는 등 치료효과와 안전성을 확인한 바 있다.
글로벌 기업도 초기 개발단계…국내 기업에 '기회'
엑소좀 산업은 아직 후보물질을 발굴하는 초기 연구 단계인데다 특히 규모가 작은 국내 바이오기업은 전문인력 부족 등으로 연구개발이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이에 엑소좀 관련 바이오기업들이 모여 '엑소좀산업협의회'를 구성하거나 다른 기업과 협력을 맺고 공동 개발을 추진하는 상황이다. 오픈이노베이션(개방형혁신)을 통해 부족한 인력과 연구개발 조직을 보강할 수 있는 만큼 개발 성공 가능성을 더 높일 수 있어서다.
국내뿐만 아니라 글로벌 기업들도 엑소좀 초기 개발단계 수준이다. 엑소좀 산업의 선두주자인 미국의 바이오벤처 '코디악 바이오사이언스'도 임상 1‧2상 단계에 막 접어들었다. 스위스 제약기업 '론자'는 지난해 코디악의 엑소좀 생산시설을 인수하면서 엑소좀 산업에 손을 얹었다. 엑소좀은 아직 미개발 신약 분야인 만큼 향후 급성장이 기대되는 시장이어서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 리서치(Grand View Research)에 따르면 글로벌 엑소좀 시장 규모는 오는 2030년 22억8000만 달러(한화 약 2조6676억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국내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엑소좀은 세포 간 신호를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하는 차세대 약물전달체로 다양한 성분이나 방법으로 결합해 신약 개발을 할 수 있다"면서 "아직 해외에서 개발에 성공한 사례가 없고 우리나라는 줄기세포 연구분야 경험이 많은 만큼 국내 기업들에게 엑소좀 산업은 기회의 시장"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