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투자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스타트업 생태계 성장을 막는 걸림돌로 '언어'와 '정부지원에 따른 규제' 등을 꼽았다. 영어로 진행하는 투자 행사가 적어 글로벌 투자 자금을 유치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스타트업의 정부지원 의존도가 높은 것은 장기적인 성장을 가로막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다만 메타버스와 IoT(사물인터넷) 등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는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이 많아 성장 잠재력이 높다는 평가다. 한국의 앞선 통신 인프라 덕에 스타트업의 사업 진행 속도가 빠른 것도 눈여겨 볼만하다는 설명이다.
"스타트업 투자, 언어 장벽이 막는다"
미국 스타트업 투자사 키위 테크(Kiwi Tech)는 12일 스타트업리서치 등과 함께 국내 스타트업 투자 유치 활성화를 위한 '코리아 벤처 포럼'을 열었다. 키위 테크는 인텔을 비롯한 글로벌 IT 기업의 외주개발을 담당하는 기업이다. IT 솔루션 분야에서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스타트업 지분 투자와 인수합병 등을 추진하는 투자사로도 입지를 다지고 있다.
이날 행사에선 글로벌 투자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스타트업 투자 환경과 국내 시장의 특성을 진단했다. 카란딥 소드히 키위 테크 시니어 매니저를 비롯 엄철현 나눔앤젤인베스트먼트 대표, 손병준 스타트업리서치 파트너, 크리스 게오르기예프 IMAGGA 대표, 모계방 대신증권 글로벌리서치 팀장, 전경희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 글로벌팀 매니저 등이 참여했다.
전문가들은 스타트업 투자 시장을 막는 가장 큰 장벽으로 '언어'를 꼽았다. 손 파트너는 "글로벌 시장 공략의 첫번째 문제는 언어"라며 "언어 문제가 해결된다면 더 많은 한국 스타트업들이 글로벌 시장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엄 대표 역시 "영어 행사가 많아져야 한다는 데에 공감한다"며 "이를 바탕으로 커뮤니티 구축과 투자 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에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게오르기예프 대표는 "보통 스타트업의 경영자는 나이가 많은데 이들의 언어 장벽이 다른 스타트업 커뮤니티에 녹아드는 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어떤 스타트업 행사도 영어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라며 "정부기관 등이 행사를 주관하면서 한국어 행사가 많은데 영어로 행사를 해야 투자 뿐만 아니라 전략 등 넓은 차원에서 자원을 갖출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 지원 의존도 낮춰야"
스타트업의 활발한 사업을 위해 정부 지원의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쓴소리가 나왔다. 손 파트너는 "정부 지원으로 자금을 확보하기 쉬워 사업 초반에는 좋을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정부가 세세한 가이드라인을 주기 때문에 성장기에 돌입하거나 해외시장 진출엔 오히려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게오르기예프 대표는 "한국 스타트업은 투자는 초창기에 대부분 정부에 의존하는데, 다른 투자 채널이 생겼을 때 충돌이 발생한다"며 "사업 자금을 확보하고 나면 다른 실리콘밸리 기업처럼 성장할 거라고 생각하는 스타트업이 많지만, 정부는 위험도가 높은 사업을 지양하고 고용 창출에 집중하다 보니 갈등이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정부에 의존하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돈을 들여와 투자하는 흐름이 늘어나야 한다"며 "긍정적인 점은 많은 스타트업이 이런 방식으로 사업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실제로 성공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라고 평했다.
엄 대표 역시 "한 아이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며 "기업마다 사업자금 규모에서 차이가 있다 보니 정부가 이런 간극을 메우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단기적인 목표를 세우는 경우가 많아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고 말했다.
"커지는 투자 시장…잠재력 높아"
전문가들은 이 같은 장벽에도 국내 스타트업 시장이 앞으로 성장할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전 매니저는 "국내 스타트업 투자 환경은 매년 성장하고 있다"며 "창업자 교육 및 투자사와 소통하는 방법을 돕는 기관도 늘어나고 있어 글로벌 시장과의 간극이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고 평했다.
게오르기예프 대표는 "한국 스타트업은 매년 성장한다는 걸 느낀다"며 "실리콘밸리를 비롯한 스타트업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새로운 트렌드를 따라가려는 시도가 활발하다"고 말했다.
5G(5세대) 이동통신 보급 등 통신 인프라를 발판 삼아 스타트업 시장이 더 빠르게 성장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엄 대표는 "한국은 가장 빠른 인터넷을 갖춘 국가로 알려져 있다"며 "스타트업이나 앱 개발자가 사업 아이디어를 플랫폼에 쉽게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코로나19 확산이 오히려 한국 스타트업에게는 훌륭한 기회였다"며 "인프라가 다른 나라보다 좋아 흥미로운 상황이 많았는데, 인프라가 스타트업을 도와준 것"이라고 평했다.
전문가들은 스타트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손 파트너는 "한국 밖으로 나가 세계 시장을 노려야 한다"며 "스스로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믿고, 두려워하지 말고 기회를 노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매니저 역시 "팬데믹 기간에 노력한 스타트업 설립자들에게 응원을 보낸다"며 "미국을 비롯해 일상으로 돌아가는 국가가 많아지면서 올해는 달라질 것으로 보이는 만큼 세계 무대에서 기회를 찾아보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