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이 주도권을 쥔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급격하게 얼어붙고 있다. 이른바 '코로나19 특수'로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며 과열됐던 시장이 이제는 재고를 걱정할 상황까지 내몰렸다. 반면 대만이 주도하고 있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의 성장세는 계속되고 있다. 파운드리에 반도체 주문을 맡기는 애플 등 주요 팹리스(반도체 설계업체)가 성장하고 있어서다.
메모리 반도체, 성장세 꺾였다
지난 3분기 잠정 영업이익이 전년동기대비 31.7% 감소한 삼성전자의 어닝쇼크 진원지는 메모리 반도체다. 유진투자증권은 지난 3분기 메모리 반도체 영업이익은 4조4000억원으로, 직전분기(9조원)보다 51% 넘게 급감했다고 분석했다.
메모리 반도체의 실적이 부진한 이유는 스마트폰‧서버‧PC‧가전 등 전방시장이 반도체 주문을 줄였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스마트폰이 안 팔리니,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메모리 반도체 주문도 줄어든 것이다. 여기에 재고 부담도 크다. 2020년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재택근무 등으로 전자제품 수요가 늘면서 메모리 반도체 생산량을 늘린 것이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다. 주문 감소와 재고 증가는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폭을 키우고 있다.
오는 26일 3분기 실적을 발표하는 SK하이닉스 처지도 비슷하다. 증권업계에선 오는 3분기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이 1조8000억원대로 작년 2분기(2조6946억원)보다 감소한 것으로 추정했다. 특히 SK하이닉스가 지난해 80억3300만달러에 인수한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솔리다임)의 적자도 예상된다.
메모리 반도체는 전원이 켜져 있는 동안에만 정보가 저장되는 D램과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지워지지 않는 플래시로 나뉘는데, SK하이닉스는 주력인 D램에 더해 인텔의 낸드플래시를 인수하며 플래시 사업을 키웠다. 하지만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나빠지면서 인수 초기부터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이다.
메모리 반도체 업황 개선은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 연말뿐 아니라 내년까지 부진이 이어질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최근 이베스트투자증권은 내년 SK하이닉스가 적자전환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은 감산에 나서고 있다. 최근 컨퍼런스콜에서 미국 메모리반도체 업체인 마이크론은 내년 설비 투자 규모를 50% 축소하고, 올해 말과 내년 초 가동률을 약 5% 줄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본의 낸드플래시 업체 키옥시아는 이번달부터 생산량을 30% 줄일 계획이다.
오는 27일 열리는 컨퍼런스콜에서 삼성전자의 입장에 변화가 있을지도 관심이다. 이달 초 열린 '삼성 테크 데이'에서 한진만 삼성전자 메모리 사업부 부사장은 감산에 대해 "현재로서 논의는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애플 잘 팔릴수록 TSMC 크게 웃는다
파운드리 업황은 메모리 반도체와 정반대다. 대만 TSMC의 지난 3분기 영업이익은 3103억 대만달러로, 전년동기대비 82% 증가했다. 이는 시장 기대치를 뛰어넘는 사상 최대 실적이다. 애플 등 반도체 설계를 맡기는 팹리스들의 주문이 TSMC에 몰리면서다. TSMC는 매출의 41%가 애플 등 스마트폰 공정에서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기술을 발판으로 TSMC를 따라잡겠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6월 세계 최초로 3나노미터(nm, 10억분의 1미터) 양산에 시작했고, 최근엔 2027년까지 1.4나노 공정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초미세 공정은 반도체 성능을 결정짓는 핵심요소로, 삼성전자와 TSMC는 누가 더 미세한 굵기로 반도체 회로를 새길 수 있느냐를 두고 경쟁을 벌이고 있다. 현재 파운드리 점유율은 TSMC 50%대, 삼성전자 10%대로 삼성전자는 기술을 발판으로 점유율 격차를 좁힌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