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메모리 반도체 시황 악화의 직격타를 맞았다. 글로벌 경제 위기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전례 없는 시황 악화에 직면했다"는 자체 진단을 내렸다. 내년까지도 수요 회복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자, 투자 규모는 물론 생산까지 줄이기로 했다.
유례없는 수요둔화에 '직격타'
3분기 SK하이닉스의 연결기준 매출은 10조9829억원, 영업이익은 1조6556억원을 기록했다. 전 분기 대비 매출은 20.5% 줄었고, 영업이익은 절반 줄었다. 영업이익이 크게 줄면서 영업이익률도 30.4%에서 15.1%로 감소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도 매출은 7%, 영업이익은 60.3% 각각 감소했다. 이는 실적 부진을 예견했던 증권가 전망치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컨센서스 대비 매출은 7.4%, 영업이익은 23.2% 낮았다.
물가·금리 상승으로 거시경제 환경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D램과 낸드 제품 수요 둔화가 심화되면서 판매량·가격이 모두 하락해 전반적으로 매출이 떨어졌다. 최신 공정인 10나노미터(nm) 4세대 D램(1a)과 176단 4D 낸드의 판매 비중과 수율을 높여 원가경쟁력을 개선했지만, 원가 절감폭보다 가격 하락폭이 커서 영업이익도 크게 줄었다는 게 회사측 분석이다.
26일 실적 발표 후 진행된 컨퍼런스 콜에서 노종원 SK하이닉스 사업담당 사장은 "일반적으로 3분기는 계절적인 성수기로 시황이 개선되는 시기임에도, 올해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수요가 약세를 보이는 시장 환경이 펼쳐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기존에도 업다운 사이클이 있었지만, 올해는 거시경제 불확실성에 지정학적 이슈가 더해져 심각한 상황"이라며 "가격 하락으로 메모리 업체들도 힘들지만 이제는 많은 재고를 갖고 있는 고객 입장에서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고 덧붙였다.
특히 지난해 미국 인텔의 낸드플래시 사업부를 인수해 설립한 솔리다임은 오히려 실적을 끌어내린 것으로 보인다. 노 사장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비일반회계(Non-GAAP) 기준으로 약간의 흑자를 예상하고 있었지만 시황이 악화돼 솔리다임 실적도 나빠지고 있다"며 "인텔의 사업부로 있다가 하나의 독립 기업으로 자립하는 과정에서 시장 변화를 적극 대처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다만 SK하이닉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시너지를 바라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 사장은 "향후 1~2년 내 통합 작업이 완성되면 현재 낸드 경쟁 지형에서 얻을 수 있는 전략적 이득이 현재의 어려움보다 클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내년까지 '먹구름'
SK하이닉스는 수급 불균형 상황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D램은 한 자릿수 초중반, 낸드플래시는 한 자릿수 수준의 전례없이 낮은 수요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내년에는 디램 10% 초반, 낸드플래시 20% 중반 수준의 수요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SK하이닉스는 투자 축소와 가동률 조정에 나설 예정이다. 일정 기간 동안 투자 축소와 감산 기조를 유지하면서 시장의 수급 밸런스가 정상화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올해 SK하이닉스의 투자 규모는 10조원 후반대로 작년보다 증가하겠지만, 내년은 이보다 50% 이상 감축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는 금융위기였던 지난 2008~2009년과 유사한 수준의 투자 축소다. 올해 말 재고 수준이 최고치를 달성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생산 증가를 위한 웨이퍼 캐파(생산능력)도 최소화하고 공정전환 투자도 일부 지연한다.
또 수익성이 낮은 제품 중심으로 감산에 돌입한다. 노 사장은 "수요가 강하지 않으나 우선 생산해놨던 수익성 낮은 제품에 대한 웨이퍼 투입 수준을 낮추는 방향을 재검토하고 있다"며 "미래 효율성을 올리지만 단기적으로 감산에 준하는 효과를 불러오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으며 일부는 실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메모리 산업은 생산 빗그로스(저장공간 기준 출하량 증가율)를 통해 원가를 절감하고 ASP(평균판매단가)를 낮춰가는 사업인데, 사업자 입장에서 생산 축소는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토로했다.
미래 성장동력 확보 지속
다만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필수 투자는 멈추지 않는다. 데이터센터 서버에 들어가는 메모리 수요는 단기적으로 감소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꾸준히 성장세를 탈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고대역폭 제품인 HBM3와 차세대 D램 규격인 DDR5(더블데이터레이트)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SK하이닉스는 내년부터 DDR5 시장이 본격 전개될 것으로 관측한다. DDR5는 서버의 경우 내년 연간 전체적으로 2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면서 내년 말 30% 이상까지 비중이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PC의 비중은 연간 30%, 연말에는 그 이상으로 예상하고 있다.
노 사장은 "그간 CPU(중앙처리장치) 출시 지연으로 도입시기가 늦어졌지만, 그만큼 생태계가 갖춰지고 고객의 대기 수요가 형성됐다"며 "최근 시황으로 가격 부담도 낮아지고 있어 내년 서버 고객의 DDR5 전환 확대를 자극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SK하이닉스는 10nm급 1a 미세공정이 적용된 DDR5 모듈 제품과 176단 낸드의 수율 개선, 램프업(캐파 증대)을 진행 중이다. 지난 8월 개발 완료를 발표한 다음 세대 238단 낸드는 내년 초 고객 샘플을 제공, 내년 중반부터 양산을 시작해 공급할 계획이다.
한편, SK하이닉스는 대내외적인 상황이 급변하는 만큼 위기 대응을 위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 중이다. 미국은 이달 초 중국의 첨단 반도체 기술 확보를 막기 위해 관련 제품과 장비 수출을 금지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1년간 해당 조치 유예 허가를 받았다. SK하이닉스는 1년 이후 연장할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지만, 전망은 불투명하다.
노 사장은 "중국 내 팹 운영이 어려워질 경우 팹·장비 매각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지만, 이런 상황 없이 팹을 운영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며 "중장기적 생산거점 다변화는 필수불가결하나 단기적으로는 쉬운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