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녹십자홀딩스·지씨셀의 미국 관계사 '아티바 바이오테라퓨틱스'(아래 아티바)가 나스닥 상장 계획을 철회했습니다. 아티바는 지난 1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기업공개(IPO) 자진 철회 신고서를 제출했습니다. 녹십자 측은 "인플레이션, 고물가·고환율·고금리,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따른 경제 상황 악화에 따라 심사숙고해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는데요. 앞서 아티바는 지난해 4월 증권신고서를 제출하면서 IPO를 통해 1억달러(약 1100억원) 규모의 자금 조달 계획을 밝힌 바 있습니다.
아티바는 지난 2019년 녹십자홀딩스와 지씨셀(전 녹십자랩셀)이 면역세포 치료제 개발을 위해 미국 샌디에이고에 설립한 NRDO(No Research, Development Only) 기업입니다. NRDO는 신약 후보물질을 직접 발굴하지 않고 외부에서 도입해 빠르게 임상 단계에 진입, 개발에 집중하는 사업 모델입니다. 아티바는 녹십자랩셀로부터 면역세포 치료제 관련 후보물질을 도입해 개발을 진행 중이고요. 아티바 설립 당시 녹십자홀딩스와 녹십자랩셀의 지분 출자 비율은 각각 54%, 31%였습니다.
녹십자는 오랜 기간 면역세포 항암제 분야에 공들여왔습니다. 면역세포 항암 치료는 암을 직접 표적하는 게 아니라, 면역세포의 면역 기능을 강화해 간접적으로 암을 없애겠다는 아이디어입니다. 우리 몸속 면역세포는 △선천면역계(NK세포·대식세포)와 △적응면역계(T세포·B세포)로 나뉩니다. T세포를 조작한 CAR-T세포 치료제는 암을 완치할 수 있다는 기대를 모으고 있고요. NK세포 치료제는 부작용이 심각하고 고형암에 효과가 없는 T세포 치료제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녹십자는 지난해 11월엔 녹십자랩셀과 녹십자셀(전 이노셀)을 합병, 지금의 지씨셀을 출범시켰습니다. 녹십자랩셀은 NK세포 치료제 연구개발(R&D) 역량을, 녹십자셀은 세포 치료제 위탁개발생산(CDMO) 및 상업화 역량을 보유하고 있었는데요. 지씨셀은 사업부문을 일원화해 글로벌 세포 치료제 분야의 강자로 거듭나겠다는 목표를 내놨습니다. 이후 미국 세포 치료제 CDMO 기업 '바이오센트릭'을 인수하며 북미 지역 공략에도 본격적으로 나섰습니다.
아티바 역시 녹십자의 세포 치료제 사업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아티바가 지씨셀로부터 NK세포 치료제 기술을 도입한 만큼, 아티바의 개발 성과에 따라 지씨셀도 단계별 기술료(마일스톤)을 받습니다. 아티바는 설립 2년 만에 다국적 제약사 머크(MSD)에 CAR-NK 플랫폼을 약 2조원에 기술수출(L/O)하며 두각을 드러냈습니다. 당시로선 역대 NK세포 치료제 L/O 계약 중 두 번째로 높은 금액이었습니다. 또 주력 파이프라인인 항체 치료제 병용 제대혈 유래 NK세포 치료제 'AB101'은 최근 임상2상에 돌입했습니다.
다만, 세포 치료제의 경우 R&D뿐만 아니라 제조와 생산에도 막대한 비용이 필요합니다. 환자의 혈액에서 뽑은 세포로 만드는 복잡한 공정 때문입니다. 개발 단계가 진척될수록 R&D 비용은 더욱 증가합니다.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아티바의 R&D 비용은 지난 2019년 120만달러(약 17억원)에서 2020년 1380만달러(194억원)로 대폭 증가했습니다. 아티바는 IPO를 통해 조달한 금액을 R&D에 사용할 예정이었고요. 회사는 IPO 이후 오는 2023년까지 CD19 CAR-NK세포 치료제 'AB-202'의 임상시험계획(IND)을 제출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아티바의 나스닥 상장 계획이 무산되면서 임상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전망입니다. 여기에 녹십자홀딩스와 지씨셀의 주가 흐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올 상반기 기준 녹십자 계열사의 아티바 지분은 27.83%(녹십자홀딩스 19.4%·지씨셀 8.43%)였습니다. 녹십자홀딩스가 보유한 아티바의 장부가액은 414억원이었고요. 아티바가 나스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면 녹십자홀딩스와 지씨셀도 지분 가치 상승 등의 간접적 수혜를 누릴 수 있었죠. 실제 지난주 아티바의 상장 철회 발표 직후 지씨셀 주가는 큰 폭으로 하락했습니다.
녹십자 측은 아티바의 임상은 계획대로 진행될 것이란 입장입니다. 현재 아티바의 재정 상태가 좋은 데다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완화되면 다시 IPO를 추진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회사는 오히려 이번 임상 철회로 아티바의 홍보 활동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녹십자 관계자는 "SEC는 상장을 앞둔 회사가 IPO 전에 침묵 기간(Quiet Period)을 갖도록 하기 때문에 아티바는 그동안 투자자와 소통에 많은 제한이 있었다"면서 "S-1 서류 철회로 적극적 홍보 활동이 가능해졌다"고 설명했습니다. 아티바는 상장 철회 발표 이틀 뒤인 지난 3일 독일 아피메드와 파트너십 계약을 발표했습니다. 이에 따라 주가도 회복하는 추세입니다.
상장은 미뤄졌지만, 아티바의 전망이 어둡지만은 않습니다. 아직 세계적으로 상용화된 NK세포 치료제는 없습니다. 바이오 업계는 아티바의 기술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고요. 아티바가 NK세포 치료제 개발에 성공할 경우 바이오 업계에 새로운 획을 그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하지만 상용화된 치료제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개발 성공 확률이 낮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나스닥에 상장한 세포 치료제 기업 대부분이 임상1상에 머무르고 있는 상황인데요. 임상 도중 염색체 이상이나 사망 등 심각한 부작용 사례도 보고되고 있습니다. 인내를 갖고 아티바의 성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