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머크(MSD)와 신약 공동 연구개발 협력 체결"
바이오 업종에 관심 있는 투자자라면 한 번은 접했을 기사 제목입니다. MSD는 3일 기준 시가총액 321조원에 이르는 글로벌 제약사(빅파마)입니다. 지난해 연 매출은 약 73조원을 기록했습니다. 이 정도 규모의 해외 기업이 국내 바이오텍과 신약을 공동으로 개발한다고 하니, 투자자 입장에선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겁니다. 실제 국내 바이오텍이 빅파마와 협력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 주가는 빠르게 치솟습니다. 임상 진입 여부나 연구개발 성공 가능성과는 상관없이 말이죠.
국내 바이오텍이 가장 많이 병용요법 임상을 시도하는 의약품은 MSD의 '키트루다'(성분명: 펨브롤리주맙)입니다. 키트루다는 몸속 면역세포를 활성화해 암을 치료하는 면역 항암제입니다. T세포나 NK세포 등 면역세포는 암세포를 공격, 파괴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그런데 암세포는 'PD-1'과 같은 특정 단백질을 분비해 면역세포의 공격을 회피합니다. 키트루다는 PD-1을 억제해 면역세포가 암에 대항하도록 돕는 원리입니다. 몸이 원래부터 갖고 있는 면역체계를 이용하는 만큼, 암세포를 직접 공격하는 1세대 화학 항암제나 암 관련 유전자를 공격하는 2세대 표적 항암제보다 부작용이 훨씬 덜합니다.
성장세도 가파릅니다. 키트루다는 지난 2014년 △흑색종 △비소세포폐암 △두경부암 △호지킨림프종 치료제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품목허가를 받았습니다. 이후 FDA는 2017년 어떤 암종이든 특정 유전적 특징(바이오마커)이 일정 수준 이상 나타나는 고형암 환자가 키트루다를 쓸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현재 키트루다는 18개 암종에 대해 총 38개 적응증으로 승인받았고요. 의약품 시장조사기관 이밸류에이트파마에 따르면 키트루다의 전 세계 매출은 2021년 171억8600만달러(약 19조6607억원)에서 올해 240억달러(약 30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물론 한계도 있습니다. 약물에 반응하는 환자가 제한적이라는 점입니다. 키트루다는 PD-L1이 많이 발현되는 환자에겐 탁월한 항암 효과를 보이지만, PD-L1이 적게 발현되는 환자에겐 효과가 매우 낮다고 알려졌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 바로 병용요법입니다. 키트루다와 다른 의약품을 함께 투여해 반응 환자군을 늘리거나 약효를 높이려는 시도입니다. 키트루다의 단일요법 임상은 2017년에서 2020년까지 160건에서 262건으로 늘어난 반면, 같은 기간 병용요법 임상은 397건에서 937건으로 늘었습니다. 국내에서 진행 중인 키트루다 병용요법 임상만 150여건에 달합니다.
제약바이오업계에선 국내 바이오텍의 키트루다 병용요법 임상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국내 바이오텍의 신약 후보물질과 키트루다의 시너지가 입증되면 상용화 가능성이 높아지니까요. 키트루다가 이미 의료 현장에서 활발하게 쓰이고 있으니 상용화에 성공한다면 빠른 매출 증대를 기대할 수도 있고요. 또 공동 연구개발 협력을 체결했다는 건, MSD가 국내 바이오텍이 개발 중인 후보물질을 눈여겨보고 있다는 청신호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만 키트루다 병용요법 임상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의약품은 많이 투여할수록 부작용이 증가합니다. 병용요법 임상 역시 단독요법보다 안전성 우려가 커집니다. 임상 난이도가 높아진다는 얘기입니다. 만약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상용화까지 성공할지는 미지수입니다. 비급여 시 키트루다의 연간 치료 비용은 약 1억원입니다. 병용요법으로 출시한다면 약가는 더욱 높아집니다. 그만큼 시장성은 떨어질 수 있겠죠. 병용요법 임상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키트루다는 임상에서 가장 큰 비용 부담을 주는 제품으로 꼽힙니다.
일부 바이오텍이 병용요법 임상을 마케팅이나 주가 부양 수단으로만 활용하는 점은 한층 심각한 문제입니다. 병용요법을 앞세워 단독요법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내지 못한 후보물질의 효능을 부풀렸다는 지적입니다. 익명의 업계 관계자는 "MSD는 키트루다의 적응증을 넓히기 위해 어떤 약물이든 병용요법을 추진해보고 효과 없는 약물을 거르고 있다"면서 "키트루다와 병용 임상을 한다고 해서 해당 약물의 가치가 높아지는 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국내 바이오텍이 빅파마와 협력한다는 건 분명 의미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빅파마와 공동 연구가 항상 성공으로 이어지진 않습니다. 특히 병용요법 임상 소식에 혹해 투자하는 건 위험합니다. 현명한 판단을 내리려면 해당 후보물질이 단독요법으로도 효능을 내는지 확인해야 하고요. 무상 공급 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MSD 등 빅파마는 유망한 후보물질을 가진 바이오텍을 대상으로 병용요법 임상을 위해 자사의 의약품을 무료로 제공하기도 합니다. 또 특별한 임상 성과는 없는데 병용요법 임상만 강조하는 기업은 주의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