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머크(MSD)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성분명: 펨브롤리주맙)의 연간 치료 비용은 약 1억원이다. 매우 비싼 가격이지만 모든 환자에게 치료 효과가 나타나는 건 아니다. 특정 유전자가 많이 발현되는 환자에겐 탁월한 항암 효과를 보이지만, 해당 유전자가 적게 발현되거나 없는 환자에겐 효과가 매우 낮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 동반진단이다. 약물이 잘 들을 환자를 선별하는 기술이다. 국내 바이오 기업들도 동반진단기기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파나진, 엔젠바이오 등이 대표주자다.
국내 바이오, '동반진단' 시장 도전장
7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유전자진단 기업 파나진은 최근 '온코텍터 KRAS 돌연변이 검사 키트'에 대해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루마크라스'(성분명 소토라십) 처방을 위한 동반진단기기로 식품의약품안전처 품목허가를 획득했다.
앞서 암젠이 개발한 루마크라스는 국소 진행성 또는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치료제로, KRAS 돌연변이 유전자가 나타나는 환자에게만 처방할 수 있다. 파나진의 온코텍터는 KRAS 유전자를 고민감도로 구별해 검출하는 제품이다. 이번 식약처 허가로 국내에서 루마크라스 처방 전 KRAS 유전자 발현 환자를 선별할 때 온코텍터를 활용할 수 있게 됐다.
파나진은 지난해 9월 국내 제약사 유한양행과도 동반진단기기 개발 협력을 맺었다. 파나진은 유한양행의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 처방을 위해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EGFR) 돌연변이 보유 환자를 가려낼 동반진단기기를 개발 중이다. 이후 파나진과 유한양행은 렉라자의 오리지널 동반진단기기로 파나진 제품의 허가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정밀진단 기업 엔젠바이오는 지난달 가톨릭대학교 산학협력단 및 다우바이오메디카와 손잡고 FLT3 돌연변이를 검출할 수 있는 제품을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FLT3 돌연변이는 급성골수성백혈병 환자에게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유전자 돌연변이다. 그러나 검출이 어려워 상용화된 진단기기가 없는 상황이다. 엔젠바이오는 급성골수성백혈병 환자의 FLT3 돌연변이를 확인할 수 있는 제품을 올해 안에 상용화하고 동반진단기기도 개발할 예정이다.
동반진단 기반의 신약을 개발하는 기업도 눈에 띈다. 클리노믹스는 지난 2021년 9월 온코빅스와 업무협약을 맺었다. 온코빅스가 개발 중인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OBX02-011'의 성공적인 임상을 위해 협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이 밖에 싸이토젠, 지니너스 등의 진단기기 기업이 국내 신약 개발 바이오 기업과 동반진단법 연구개발에 뛰어들었다.
치료 효과와 임상 성공률 '확' 높인다
전 세계 동반진단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는 추세다. 우선 동반진단은 환자 맞춤형 치료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제껏 의약품을 처방하는 기준은 '경험'이었다. 특정 의약품을 처방한 후 병세가 악화하면 다른 의약품으로 치료 방법을 바꾸는 방식이었다. 반면 동반진단의 경우 환자의 유전체 정보를 기반으로 의약품의 치료 효과와 부작용을 예측한다. 이를 통해 환자의 고통과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동반진단은 신약 개발 성공률을 높이는 데도 도움을 준다. 약의 효능과 안전성이 보장된 환자만 골라 임상을 하는 만큼 좋은 결과를 얻을 가능성이 커진다. 키트루다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MSD는 동반진단을 활용해 키트루다 임상 대상을 PD-L1 단백질을 50% 이상 발현하는 환자로 설정했다. 그 결과 PD-L1 단백질이 1% 이상인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을 진행한 경쟁 약물보다 수월하게 약효를 입증, 빠르게 시장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선 향후 동반진단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리서치 기관 테크나비오에 따르면 동반진단 시장은 연평균 26% 이상 성장해 오는 2024년 83억달러(약 10조원) 규모에 달할 전망이다. 또 미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 표적항암제 처방과 개발을 위해 반드시 동반진단을 활용하도록 가이드라인을 세우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동반진단으로 승인되면 해당 의약품과의 동반 성장을 꾀할 수 있다"면서 "최근 신약 개발 초기 단계부터 동반진단 기업과 신약 개발 기업이 협업하는 사례가 늘고 있고 의료계에서도 동반진단이 필수로 인식되는 분위기"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