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교통부 장관이 포드와 SK온의 합작사 '블루오벌SK'의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을 찾았습니다. 당시 두 회사의 고위 관계자들도 다수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업계에서는 이번 방문이 최근 불거진 포드-SK온의 불화설을 불식시킬 수 있을 것으로 바라봤습니다. 미국 전기차 정책의 최전선에 있는 인물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공장을 방문해 두 회사의 협력에 감사를 표한 데엔 의미가 있다는 해석입니다.
배터리 프로젝트 '이상 무'
피터 부티지지(Pete Buttigieg) 미국 교통부 장관은 지난 3일(현지 시간) 블루오벌SK의 켄터키 공장 건설 현장에 방문했습니다. 이 자리엔 이종한 블루오벌SK 대표와 리사 드레이크 포드 부사장도 동행했는데요.
이날 부티지지 장관은 "완공되면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큰 배터리 제조시설 중 하나가 된다"며 "SK, 포드와 같은 파트너들이 이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노력한 것에 대해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부티지지 장관은 조 바이든 정부의 교통 정책의 최전선에 있는 인물입니다. 특히 전기차 보급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향후 내연기관차를 줄이고 미국 내 대부분의 자동차를 전기차로 전환하기 위해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여러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부티지지 장관이 방문한 공장은 포드와 SK온이 추진하고 있는 '배터리 캠퍼스 프로젝트'의 일환입니다. 두 회사는 총 114억달러(약 14조7766억원)를 투자해 미국 켄터키주 글렌데일과 테네시주 스탠튼 두 곳에 배터리 공장 세 곳을 건설하고 총 129GWh(기가와트시) 규모 생산 능력을 세운다는 계획입니다.
포드와 SK온은 이런 대규모 프로젝트를 함께 할 만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 두 회사 사이에 이상 기류가 감지됐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포드는 지난달 4일 'F-150 라이트닝' 픽업트럭 생산을 중단했습니다. 당시 포드는 생산 중단의 이유로 해당 차량에 탑재되는 배터리에 문제가 생겼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차량의 배터리는 SK온이 납품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SK온에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모습이었죠. B2B(기업 간 거래) 사업에서 이렇게 상대 회사에 피해가 갈 수 있는 내용을 공개하는 건 이례적인 일입니다.
또 포드가 SK온 외에 다른 배터리 공급처를 찾아 나서면서 불화설에 불을 지폈습니다. 포드와 코치는 지난해 3월 SK온과 합작법인을 설립하기 위한 MOU(업무협약)를 맺었지만 최종 합의까지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결국 두 회사는 LG에너지솔루션과 협약을 체결했죠.
여기에 포드가 CATL과 협력해 미국에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공장을 건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포드와 SK온 사이에 균열이 생겼다는 소문은 일파만파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다
업계에서는 부티지지 장관의 방문이 최근 포드와 SK온 사이 불화설을 불식시킬 수 있을 것으로 바라봤습니다. 미국 전기차 정책의 최전선에 있는 인물이 두 회사의 협력에 감사를 표해서죠. 아직 완성되지 않은 공장에 방문해 두 회사의 협력에 감사를 표한 데엔 의미가 있다는 해석입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최근 SK온과 포드 관계가 부정적이라는 얘기가 많았는데, 사실 두 회사가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서로 등 돌릴 이유는 없다"며 "이번 미 교통부 장관의 방문도 두 회사의 관계가 부정적이지 않으며, 프로젝트가 계획대로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실제로 포드는 이달 13일부터 F-150 라이트닝 생산에 다시 돌입할 예정입니다. SK온도 지난달 20일부터 F-150 라이트닝용 배터리 공장을 다시 가동했습니다. 우려 섞인 시선과는 다르게 둘 사이는 큰 문제가 없었던 셈이죠.
포드가 다른 배터리 업체를 찾아 나선 것도 SK온과의 사이가 틀어졌기 때문은 아니라고 하는데요. 최근 완성차와 배터리 업체는 협력사 다변화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포드의 행보도 이러한 흐름에 동참한 것이라는 게 업계 시각입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다는 말이 있듯, 최근 완성차 업체는 배터리 물량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배터리 업체들도 미래 완성차 업체들의 시장 진입에 대비해 고객사를 늘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포드가 CATL과 협력해 생산하는 LFP 배터리는 저가형 모델에 탑재될 예정인 데다 아직 미국 정부의 허가를 남겨놓은 상황"이라며 "SK온은 상대적으로 상위 모델에 들어가는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를 공급하기 때문에 CATL 협력과는 별개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게다가 SK온은 이미 수주 잔고를 가득 채워둔 상태입니다. 전우제 KB증권 연구원은 "SK온은 현재 2030년까지 수주 잔고가 꽉 차 있는 상황"이라며 "튀르키예 투자 취소 역시 수주 확대보다는 수익성 위주로 투자를 재배분해 흑자 전환하기 위한 의도로 해석해야 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일각에선 포드와 SK온 불화설의 배경엔 수율 문제가 있다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SK온에 따르면 포드와 수율 문제로 얼굴 붉힌 적은 없다고 합니다. 다만 SK온은 국내 배터리 업체 세 곳 중 가장 출발이 늦은 탓에 아직 수율 안정화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현재 SK온은 수율을 90% 정도까지 끌어 올렸지만, 숙련도가 떨어지는 문제로 안정화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현재 SK온이 걷고 있는 길은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가 몇 년 전에 지나간 곳입니다. 당시 어떤 사장의 입에선 "정말 못하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만큼 배터리 사업이 꽃피울 때까지는 긴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현재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는 그룹 내에서 높은 수익성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과연 SK온도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SK의 '캐시카우'가 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