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기아가 세계 자동차 시장 규모 3위로 올라선 인도 시장에서 입지를 꾸준히 강화해나가고 있다. 인도 내 판매량이 꾸준히 늘면서 지난해 현대차, 기아의 인도 법인이 벌어들인 순이익이 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내외적 리스크로 다소 부진한 중국, 러시아 판매량을 일부 상쇄하고 있는 셈이다.
현대차와 기아는 지난해 현지 공장 생산 증설에 나서는 등 앞으로 더욱 커질 인도 자동차 수요에 적극 대응해나가고 있다. 현재 현대차는 인도 시장을 철수한 GM 공장 인수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가 이뤄질 경우 현대차그룹의 인도 현지 생산량은 연간 125만대를 넘어서게 된다.
인도, 세계 자동차 시장 3위 규모로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인도 자동차 시장 규모는 지난해 일본을 제치고 3위로 올라섰다. 지난해 인도 시장에서 판매된 자동차는 379만4361대로 전년대비 23% 급증했다.
자동차 시장 규모가 3위로 올라섰음에도 여전히 시장 잠재력은 크다는 평가다. 14억명에 달하는 인구수 대비 자동차 보급률은 여전히 낮은 수준을 보이면서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인도의 가구당 자동차 보유율은 8.5%에 그친다.
문용권 신영증권 연구원은 "인도의 승용차 시장 규모는 중국의 5분의1 수준이며 글로벌 신차 시장의 4~5%에 불과하다"며 "이는 1인당 국민소득(2021년 기준 2257달러)이 낮아 실질적으로 승용차를 구매할 수 있는 소비자가 적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인도 시장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14억명에 달하는 인구를 바탕으로 한 (잠재 수요에 대한) 성장성에 있다"며 "인도 정부의 정책, 경제 발전 속도, 주요 업체들의 전략 등을 고려했을 때 인도 승용차 시장이 2030년 전후로 500만대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고 덧붙였다.
과거에는 저가형 자동차 모델이 인기를 끌었으나 최근에는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 전기차에 대한 수요도 꾸준히 늘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SUV, 전기차 등 비교적 이윤이 남는 차종들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도 인도 시장에 더욱 관심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인도 시장 내에서 저가형 혹은 소형 모델이 여전히 주류인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최근에는 SUV, 전기차 등 수요가 점점 다양해지는 중"이라고 말했다.
문 연구원 역시 "인도의 소득 수준이 낮아 승용차 시장도 그동안 저가 차량 위주로 성장을 보여왔지만 최근에는 소형차 대비 가격이 60~70% 비싼 SUV 수요도 빠르게 증가 중"이라며 "이는 인도의 가구 당 구성원 수가 약 4.5명으로 중국(2.9명), 미국(2.6명), 한국(2.4명) 대비 많아 큰 차 선호 현상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기아, 인도서 시장 점유율 2위 굳건
현대차는 1996년 현지 법인 'HMI(Hyundai Motor India Limited)'를 설립하며 인도 시장에 일찍이 발을 들였다. 법인 설립 2년 뒤인 1998년에는 인도 공장을 완공하며 본격 판매를 시작했다. 현재 이 공장에서는 베뉴, 크레타, 투싼, 코나EV 등을 생산하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 인도 시장에서 총 55만5000여대(이하 도매 기준)를 판매하며 판매량이 전년대비 8.6% 증가했다. 지난 1분기에는 총 14만9000대를 판매하며 판매량이 전년동기대비 11.2% 증가했다. 코로나 초기(2020년) 제외하고는 최근 5년간 판매량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판매량이 꾸준히 늘면서 현지 공장 생산 증설에도 나서고 있다. 지난해 사업보고서 말 기준 현대차 인도 공장의 최대 연간 생산능력은 75만대에 달한다. 이는 2021년 대비 5만대 늘어난 생산량이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제너럴모터스(GM) 탈레가온 공장을 인수해 생산량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GM 탈레가온 공장의 연간 생산 규모는 13만대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화 전략에 실패한 GM은 2017년 인도 시장에서 철수한 뒤, 2020년 10월 이 공장을 멈춰 세웠다.
기아는 다소 뒤늦게 인도 시장에 뛰어들었다. 기아는 2017년 인도 법인 'KIN(Kia India Private Limited)를 설립한 뒤 2019년 8월 생산 공장을 가동해 본격 판매에 뛰어들었다. 현재 이 공장에서는 쏘넷, 셀토스, 카니발, 카렌스 등을 생산 중이다.
후발 주자임에도 기아는 인도 내에서 입지를 빠르게 확보해나가는 중이다. 기아는 지난해 인도 시장에서 총 25만1000대를 판매했는데 이는 전년대비 37.2% 급증한 수치다. 지난 1분기에는 7만5000대를 판매하며 판매량이 전년동기대비 24.4% 증가했다.
기아도 커지는 시장 규모에 발맞춰 인도 공장의 연간 생산 능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작년 말 기준 기아의 인도 공장 최대 연산 능력은 37만3000대로 전년대비 생산능력이 4만4000대 증가했다. 기아는 지난해 이 공장에서 34만2597대를 생산했다.
판매량이 꾸준히 늘면서 인도 시장 내 점유율도 상위권을 유지 중이다. 현대차와 기아의 합산 지난해 점유율은 20.93%를 기록했다. 인도에서 판매되는 신차 5대 중 1대는 현대차그룹 자동차인 셈이다.
인도자동차딜러협회(FADA)에 따르면 2023년 회기연도(2022년 4월부터 올해 3월말) 기간 인도 승용차시장 점유율 1~5위는 △마루티스즈키(40.9%) △현대차(14.5%) △타타모터스(13.4%) △마힌드라(8.9%) △기아(6.4%) 순이었다.
차량 판매 늘자 실적도 쑥
현대차와 기아의 인도 내 판매량 증가는 실적에서도 그 흔적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기준 현대차 기아의 인도 법인 합산 당기순손익은 1조원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의 작년 말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HMI의 지난해 매출은 9조2302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25.8% 증가했다. 이 기간 당기순손익은 7109억원으로 전년대비 62.5% 급증했다.
KIN의 실적도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기아의 작년 말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KIN의 지난해 매출은 5조8836억원으로 전년대비 59.4% 증가했다. 이 기간 당기순손익은 전년대비 49.3% 증가한 2775억원을 기록했다.
문 연구원은 "미국 유럽 등 선진 시장은 중요한 시장이지만 향후 수요 성장세가 높지 않은 성숙 시장"이라며 "글로벌 점유율 확대를 위해서는 성장 여력이 높은 신흥 시장이 중요한데 인도 시장 지배력을 통해 중국에서의 부진을 만회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