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0월27일 회장취임 1년을 맞았다. 지난 1년 이 회장은 '승어부(勝於父, 아버지를 뛰어넘는다)'를 꿈꾸며 바쁘게 달려왔다. '회장' 직함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365일간의 이 회장 행보와 당면 과제를 살펴봤다. [편집자]
취임 1년 차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는 풀어내야 할 당면 과제도 산적해 있다.
회장 취임 첫해는 쉽지 않았다. 취임과 함께 반도체 불황이 본격화됐고, 삼성전자 실적이 악영향을 받았다. 법정 출석이 이어졌고, 준법 경영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불황에 '기술'로 맞선다
회장으로 취임한 지난해 10월27일은 삼성전자 3분기 실적이 공개된 날이었다. 당시 삼성전자는 어닝쇼크 수준의 실적을 기록했고, 업계에서는 반도체 위기론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이에 이 회장은 취임사 대신 '미래를 위한 도전'이라는 제목으로 사내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안타깝게도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새로운 분야를 선도하지 못했고, 기존 시장에서는 추격자들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은 더 과감하고 도전적으로 나서야 할 때입니다."
이후 1년여 시간동안 시장 상황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업황이 악화되며 반도체 사업은 캐시카우 역할을 잃었다. 삼성전자에서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DS(디바이스 솔루션) 사업부문의 1분기 영업손실은 4조5800억원, 2분기는 4조3600억원에 달했다. 3분기 반도체 분위기도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지난 11일 삼성전자가 공개한 올 3분기 연결 기준 잠정 실적은 매출 67조원, 영업이익 2조4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업계에서는 반도체 사업 영업손실이 3조원 수준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계속된 위기에도 삼성전자는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와 연구개발을 줄이지 않았다. '기술'로 위기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이 회장의 신념이다. 그간 이 회장은 초격차 기술을 앞세운 경영 철학을 거듭 강조해 왔다.
지난해 6월 유럽 출장 귀국길에서 이 회장은 "(우리가 할 일은) 첫 번째도 기술, 두 번째도 기술, 세 번째도 기술 같다"고 말하며 기술 경쟁력 확보의 중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향후 20년간 300조원을 투입해 조성하는 용인 첨단 시스템 반도체 산업단지도 이 회장의 명확한 철학과 과감한 결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후문이다.
비상경영 상황에 매주 법정으로 '부담'
오너의 결정이 중요한 비상경영 상태지만, 이 회장의 발목을 무겁게 하는 족쇄가 있다. 사법 리스크다. 이 회장은 '제일모직·삼성물산 부당 합병 및 회계 부정 의혹'으로 2020년 9월 기소돼 3년 넘게 재판받고 있다. 취임 1주년 날에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했을 정도다.
이 회장은 상고심에서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매주 재판 일정에 피고인 자격으로 출석해야 한다. 회장 취임 후 현장경영에 힘쓰고 있지만 일주일 이상의 장기 출장 일정을 잡기도 쉽지 않다. 이 회장의 장기 출장이 보통 명절 연휴에 이뤄지는 이유다.
업계에서는 이 회장이 경영 보폭을 넓히기 위해선 사법 리스크 해소가 우선이라는 분석이다.
최근 진행된 105차 공판 진행 결과에 따라 재판부는 내달 17일을 결심공판으로 지정할 수 있다. 결심공판에선 검찰이 형량을 구형하고, 변호인의 최종 변론과 피고인의 최후 진술이 진행된다. 일반적으로 선고는 결심공판 이후 한 달 정도 소요되지만, 이번 재판은 수사 기록과 증거 목록이 많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내달 결심 공판에 이어 이르면 연내, 늦어도 내년 초 1심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이 회장과 검찰 간 공방이 치열해 1심으로 종결되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준법경영 방향성은
이 회장이 지난 2020년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결심 공판에서 강한 의지를 피력했던 '준법경영'도 국민들이 눈여겨 보는 대목이다. 당시 이 회장은 최후진술에서 "삼성이 준법을 넘어 최고 수준의 투명성과 도덕성을 갖춘 회사가 되게 만들겠다. 모두가 철저하게 준법감시틀 안에 있는 회사로 만들겠다. 저를 포함해 어느 누구도 어떤 조직도 삼성에서는 결코 예외로 남을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독립적인 외부 감시기구인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법위) 출범은 이 회장의 준법경영 의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준법위는 삼성전자를 비롯해 △삼성물산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SDS △삼성생명 △삼성화재 등 7개 주요 계열사의 준법 의무 이행을 점검하는 기구다.
지난해 출범한 2기 준법위는 핵심과제로 꼽은 '지배구조 개선'에 대해 합리적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상태다. 현재 삼성의 지배구조는 이 회장을 포함한 오너일가-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진다. 오너일가가 삼성물산 지분 31.31%를 통해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를 간접 지배한 형태다. 이 회장의 삼성물산 지분은 올 상반기 기준 17.97%에 달하지만, 삼성전자 지분율은 1.63%이다.
이와함께 삼성은 견제·균형 강화를 위한 내부적 움직임을 지속하고 있다. 법적 의무는 아니어도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통해 거버넌스 체제를 재편하겠다는 의지다.
최근 '선임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한 것도 그 일환이다. 삼성SDI와 삼성SDS는 26일 이사회를 열고 선임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선임사외이사 제도는 대표이사 또는 사내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으면, 사외이사를 대표하는 선임사외이사를 뽑아 적절한 균형과 견제가 가능하도록 하는 제도다. 이는 현재 국내 상법상 비(非)금융권 기업에는 의무가 아니지만 외부의 다양한 의견을 적극 수용하고자 선제적으로 제도를 채택했다는 게 삼성 측 설명이다.
여기에는 '외부의 질책과 조언을 열린 자세로 경청하겠다'는 이재용 회장의 거버넌스 체제 재편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 회장은 평소 '이사회 중심 책임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작년 회장 승진 당시에도 이 회장은 이사회의 논의 절차를 거쳐 승진을 결정한 바 있다. 회장은 법률상 직함이 아니기 때문에 이사회 승인이 필요하지 않다. 삼성은 향후에도 이사회 독립성 강화, 경영 투명성 제고 등 거버넌스 체제 재편 노력을 지속할 예정이다.
재계 관계자는 "경영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삼성의 자발적인 노력은 국내 기업에 새로운 기준이자 모범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리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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