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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스마트폰 1위 내준 삼성…사법 리스크 넘을까

  • 2024.01.24(수) 06:50

이재용 '불법합병·회계부정' 1심 선고 내달 5일 예정
삼성전자, 주력 사업 주춤…국내 IT 수출 실적도 위축
반도체 산업 육성 적극 나선 정부…숨통 터 줄지 주목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삼성 그룹이 다시 한번 기로에 섰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삼성그룹 불법 합병 및 회계 부정' 사건 1심 선고가 내달 5일 진행된다. 지난 2020년 재판에 넘겨진 뒤 3년여 만에 나오는 결과여서 재계 안팎의 관심이 쏠린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어려운 한 해를 보냈다. 반도체와 스마트폰 등 주력 사업이 주춤하면서 경쟁사에 세계 1위 자리를 모두 내줘야 했다. 올해는 인공지능 기술 확산 등으로 산업계 경쟁이 더욱 격화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긴장감이 더욱 커지는 분위기다. 삼성전자가 이번 재판을 통해 과연 그간 지속돼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에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이 회장의 엄벌을 촉구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반면 일각에서는 지속하는 경기 침체 속에서 정부가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반도체 산업 육성 등을 적극 밀어붙이고 있는 만큼 관련 기업의 숨통의 틔워줄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재용 회장, 내달 5일 '불법합병 및 회계부정' 1심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는 내달 5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과 전·현직 임직원 등에 대한 1심 선고를 진행한다.

앞서 이 회장은 삼성그룹 부회장을 맡았을 당시 경영권 승계와 그룹 지배력 강화를 위해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위법하게 관여한 혐의 등으로 2020년 재판에 넘겨진 바 있다.

검찰 측은 삼성이 사전에 승계 계획을 마련한 뒤 이 회장에게 유리하게 합병 작업을 진행했다고 보고 있다. 이 회장이 1대 주주였던 제일모직 주가는 띄우고 삼성물산 주가는 낮추기 위해 각종 부정 거래를 했다는 주장이다. 이 과정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처리를 왜곡했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11월17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이 회장에게 징역 5년과 벌금 5억원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최지성 전 삼성전자 미래전략실장과 김종중 전 전략팀장에게는 각각 징역 4년 6개월과 벌금 5억원을,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에게 징역 3년과 벌금 1억원을 구형했다.

이재용 회장 부당합병 회계부정 검찰수사 재판 일지. /그래픽=비즈워치.

업계에 따르면 이번 사건으로 열린 공판은 106차례, 검찰 수사 기록은 19만 페이지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판부는 애초 오는 26일을 선고기일로 정했다. 하지만 검찰과 이 회장 측이 재판절차가 종결된 이후에도 재판부에 수차례 의견서를 내면서 추가 검토가 불가피해져 선고일을 미뤄야 했다. 그만큼 양측의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사건이다.

이번 1심 선고가 주목받는 이유는 재판 결과에 따라 이 회장의 경영 행보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법원이 무죄나 집행유예를 선고할 경우 이 회장의 경영 활동에 대한 제약이 다소 완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간 이 회장은 이번 사건으로 대통령 해외 순방 동행 등을 제외하면 95차례 법정에 섰다. 3년여 동안 1~2주에 한 번꼴로 법원에 출석한 셈이다. 앞서 국정농단 재판까지 고려할 경우 9년째 사법 리스크에 발목 잡혀 있다는 평가다."시장 경제 훼손" vs "합리적 경영 행위"

재판 결과를 예단하기는 어렵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열린 결심 공판에서 이 사건을 "그룹 총수의 승계를 위해 자본시장의 근간을 훼손하고, 삼성식 '반칙의 초격차'를 보여준 사건"이라고 규정하며 삼성 측을 몰아붙이고 있다.

반면 이 회장 측은 합리적인 경영 행위였다고 반박한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경영상 목적이었으며 법리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이 회장은 최후 진술에서 "주주에게 피해를 입힌다든가 다른 주주를 속인다든가 하는 의도가 결단코 없었다"며 "합병이 두 회사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법정 밖에서도 엇갈린 의견이 나온다. 우선 이번 사건이 시장경제 질서를 훼손한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에 엄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다.

경제개혁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22일 이 회장의 엄벌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삼성물산 불법 합병은 주주와 투자자, 국민연금에 손실을 입혔을 뿐 아니라 한국의 시장경제 질서와 기업 경영에 대한 신뢰를 심각히 훼손한 중대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또 "그동안 재벌 총수의 경제 범죄 사건에 대해 '국가 경제를 고려한' 호의적인 판결이 다수 내려졌지만, 이런 불공정한 관행이 다시는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반면 애초 정치적인 이유로 검찰이 무리하게 추진한 사건이라는 시각도 있다. 재판부가 이를 참작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애초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에서 수사중단 불기소 결론이 난 건인데 검찰이 이를 뒤집고 계속 수사를 해 무리한 기소를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자본시장법에 따라 합병 비율을 계산해 합병을 한 것을 위법이나 불법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반도체·스마트폰 글로벌 1위 자리 내준 삼성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지난해 경기 침체와 업황 악화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만큼 올해 확실한 분위기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더욱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실제 삼성전자는 지난해 주력 사업인 반도체와 스마트폰 시장에서 모두 세계 1위 자리를 빼앗겼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해 인텔의 반도체 매출은 총 487억 달러를 기록해 삼성전자(399억 달러)를 2년 만에 제치고 1위 자리를 차지했다.

2023년 전세계 상위 10대 반도체 공급업체. /그래픽=비즈워치.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삼성전자는 미국 애플에 1위 자리를 내줬다. 지난 2011년 첫 스마트폰 세계 판매 1위를 차지한 지 12년 만이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애플은 지난해 연간 2억3460만 대의 스마트폰을 출하해 삼성전자(2억2660만 대)를 추월했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수출 실적에도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의 주력 수출 제품인 반도체와 스마트폰이 우리나라의 수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큰 영향이다. 특히 반도체의 경우 비중이 전체의 15%가량에 달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수출은 6326억 9000만달러로 전년보다 7.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20년 이후 3년 만에 감소세다. 반도체 등의 수출이 축소한 영향이다. 실제 지난해 우리나라 수출에서 정보기술(IT) 제품의 비중(17.1%)은 지난 1993년 이후 30년 만에 20% 아래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정부도 반도체 산업 육성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5일 민생토론회에서 "반도체 산업은 국가의 인적·물적 자원을 총력 투입해야 성공할 수 있는 전략 산업"이라며 "전략 자산을 총 투입해 치열한 속도전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날 경기 남부 일대에 조성 중인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2047년까지 622조원을 투자하고 이와 관련해 양질의 일자리 300만 개가 창출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경기 침체 지속…기업 활동 불필요한 제약 피해야"

재계에서는 여전히 글로벌 경기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이런 대규모 투자를 계획대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숨통을 틔워줄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기업 총수가 불필요한 사법 리스크로 경영 활동에 제약을 받는 일은 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신 기업들은 지배구조 개선과 투자 활성화 등으로 화답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삼성의 경우 '사법 리스크'로 인해 대형 인수합병(M&A)과 신사업 투자 등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7년 하만을 인수한 이후 지금까지 눈에 띄는 M&A 행보를 보여주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근 미국에서 열린 CES 2024에서 "M&A 환경이 녹록지 않지만, 스터디 등 꾸준히 준비하며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해 올해 빅딜 성사 여부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학과 교수는 "그간 삼성이 사법 리스크를 겪는 사이 다른 글로벌 IT 기업들의 경우 사업을 키우며 더욱 성장해 삼성은 상대적으로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며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며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 있을 수 있는 만큼 이제 마무리를 지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우리 경제가 침체에 빠져 있는 만큼 국가가 경제인들과 기업이 제대로 활동을 할 수 없게 제약하는 것은 국민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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