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지난해 반도체 '혹한기'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작년 반도체 사업에서 15조원에 달하는 누적 적자를 기록했다. 다만 메모리 업황이 회복세에 접어들며 적자 규모는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특히 지난 4분기 D램은 1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D램 실적 개선과 더불어 연결 반영되는 자회사 삼성디스플레이의 역대급 분기 실적이 전체 실적 상승을 이끌었다.
적자 폭 감소세…D램 흑자 전환
지난해 4분기 삼성전자의 매출은 67조7800억원으로 전년 대비 3.8% 감소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 역시 34.5% 줄어든 2조8200억원을 기록했다. 플래그십 스마트폰 출시 효과가 줄고, 연말 성수기 경쟁이 심화되며 TV 시장과 생활가전 실적이 둔화된 탓이다. 다만 메모리 실적이 큰 폭으로 개선되고 디스플레이 호실적이 지속돼 전 분기와 비교하면 16% 증가했다. 영업이익률 역시 전 분기 3.6%에서 4.2%로 개선됐다.
하지만 지난해 반도체 적자가 지속된 탓에 연간 실적은 전년 대비 급감했다. 작년 삼성전자 연간 매출은 258조94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4.3%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84.9% 줄어든 6조5700억원에 그쳤다. 영업이익률 역시 전년 14.4%에서 12%P(포인트) 가까이 떨어진 2.5%를 기록했다.
부문별로 보면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DS(디바이스 솔루션)부문은 매출 21조69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1%, 전 분기 대비 31.9% 증가했다. 영업손실은 2조1800억원으로 전 분기(3조7500억원)보다 손실 폭이 줄었다. 삼성전자 DS 부문은 지난해 1분기부터 적자로 돌아섰지만, 손실 규모는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지난해 1분기 4조5800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후 △2분기 4조3600억원 △3분기 3조7500억원 △4분기 2조1800억원으로, 4개 분기 누적 적자는 14조8700억원이다.
적자 폭이 줄어든 데에는 메모리 업황 개선이 주효했다. 특히 4분기는 D램의 재고 수준이 큰 폭으로 개선되며 D램 사업이 흑자로 돌아섰다. 고객사 재고가 정상화되는 가운데 PC 및 모바일 제품의 메모리 탑재량이 증가하고 생성형 AI 서버 수요가 증가하면서 전반적인 수요 회복세를 보였다는 게 삼성전자 측 설명이다.
그 결과 메모리 시장 성장률을 가늠하는 지표인 비트그로스(비트 단위 환산 생산량 증가율)도 시장 성장세를 상회했다. 이날 삼성전자 발표에 따르면 4분기 D램과 낸드플래시 모두 30% 중반의 비트그로스를 달성했고, 특히 서버향 D램은 전 분기 대비 60% 이상의 비트그로스를 기록했다. 4분기 DDR(더블데이터레이트)5는 1a 나노미터 전환 가속화에 힘입어 전체 서버 D램 내 비중이 과반을 초과하며 전체 D램 비트그로스 성장을 견인했다.
실적 발표 이후 진행된 컨퍼런스 콜(전화회의)에서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전략마케팅 실장(부사장)은 "4분기 PC와 모바일은 고객사 완제품 재고 정상화와 함께 탑재량 증가가 이어졌고, 서버는 생성형 AI 관련 투자가 확대되며 관련 수요가 지속 견조했다"며 "메모리 가격 상승에 대한 시장 인식이 확산되며 운영 전반에서 수요가 증가하고, 재고 비축을 위한 수요가 발생하는 모습도 관측됐다"고 설명했다.
시스템LSI도 스마트폰 재고 조정 마무리로 부품 구매 수요가 증가하며 3분기 대비 매출과 손익이 모두 개선됐다. 스마트폰 신제품인 갤럭시S24 시리즈에 '엑시노스 2400'이 적용된 것도 적자 규모 축소에 기여했다. 단 파운드리는 메모리 사업 대비 고객사 재고 조정과 글로벌 경기 회복이 지연되며 시장 수요가 감소해 실적 부진이 지속됐다.
'아우' 덕 봤다
분기 실적 개선에는 연결 자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의 영향도 컸다. 삼성디스플레이의 4분기 영업이익은 2조100억원으로 최초로 영업이익 2조원을 넘어섰다. 분기 사상 최대 영업이익이었던 지난해 3분기(1조9800억원)의 기록을 넘어섰다. 같은 기간 매출도 9조66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8%, 전 분기 대비 17.5% 증가했다.
중소형 패널 사업에서 하이엔드 스마트폰향 제품 비중을 확대해, TV 수요 약세로 부진을 겪고 있는 대형 패널 사업의 적자를 메웠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이날 4분기 소형 패널의 판매량이 20% 성장했다고 밝혔다. 4분기 기준 소형 패널의 매출 비중은 90% 후반에 달한다.
또 다른 연결 자회사인 하만은 4분기 매출 3조9200억원, 매출 3400억원을 기록했다. 소비자 오디오 제품의 성수기 판매가 증가하며 매출은 전 분기 대비 성장했지만 영업이익은 24.4% 감소했다.힘 빠진 갤럭시, 지지부진 TV·가전
스마트폰·TV·생활가전 등의 사업을 아우르는 DX(디바이스 경험)부문은 다소 부진했다. 매출은 39조5500억원으로 전 분기 대비 10.2%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2조6200억원으로 29.8% 줄었다. 이는 스마트폰 신모델 출시 효과 둔화와 TV 시장 수요 정체 탓이다.
먼저 MX(모바일 경험) 부문의 매출은 25조400억원, 영업이익은 2조7300억원으로 전 분기 대비 각각 16.5%, 17.3% 감소했다. 3분기 출시했던 갤럭시Z플립·폴드5 판매가 감소한 영향이다. 다만 태블릿 제품의 프리미엄 중심 출하량 증가와 함께 설계 최적화 및 지속적인 리소스 효율화를 통해 수익성은 두 자릿수를 유지했다. 4분기 MX 부문의 영업이익률은 10.9%다.
VD(비주얼 디스플레이)·생활가전 부문은 전 분기 대비 4.0% 증가한 14조26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지만 수요 역성장 속 경쟁 심화로 500억원의 적자를 냈다. VD의 경우 전반적인 TV 시장 수요 정체와 경쟁 심화에 따른 제반 비용 증가로 수익성이 감소했고, 생활 가전은 프리미엄 제품 중심으로 판매 비중이 개선됐으나 수요 역성장 속에 경쟁이 심화되면서 실적이 둔화했다.
한편, 삼성전자는 어려운 경영 환경 속에서도 주주 환원 정책을 이어갈 방침이다. 올해부터 오는 2026년까지 3년 동안, 지난 2021년부터 추진한 기존 주주 환원 정책과 동일한 정책을 유지한다. 3년간 발생하는 잉여현금흐름(프리캐시플로우)의 50%를 환원하고 연간 9조8000억원의 배당을 지급하는 게 골자다. 매년 잔여 재원을 산정해 충분한 잔여 재원이 발생할 경우 정규 배당 외 일부에 대한 조기 추가 환원을 검토하는 정책도 그대로 유지한다.
4분기 배당총액은 2조4500억원이며, 오는 3월 정기주주총회의 최종 승인을 거쳐 지급될 예정이다. 지난 2021부터 2023년까지 3년 동안의 총 잉여현금흐름은 18조8000억원으로, 정책상 주주환원 재원인 잉여현금흐름의 50%는 약 9조4000억원이다. 삼성전자는 이번 기말배당을 포함해 3년간 총 29조4000억원의 배당을 지급하게 된다. 이는 총 잉여현금흐름의 157%와 주주환원 재원의 313%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