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이 고려아연을 상대로 제기한 '자기주식 공개매수 중지' 가처분에서 졌다. 이달 초 '자사주 취득금지 가처분'에 이은 두 번째 패소다.
영풍이 연이어 소송에서 졌지만, 표정은 어둡지 않다. 영풍·MBK연합이 지난 14일 끝난 공개매수를 통해 고려아연 지분 5.34%를 확보하며 의결권 경쟁에서 앞선 덕분이다.
반면 승소한 고려아연은 마냥 웃고 있을 수 없다. 영풍의 연이은 소송전으로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예상보다 많은 주식이 영풍·MBK연합 공개매수에 몰리면서다.
21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50부(부장판사 김상훈)는 영풍이 고려아연을 상대로 제기한 자사주 공개매수 중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이번 가처분에서 영풍은 "고려아연이 2조7000억원 빚을 내 자사주를 공개매수하면 재무구조가 훼손된다"며 이 같은 결정한 이사들이 배임이라고 주장했다. 또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 재원인 배당가능이익에서 임의적립금은 빼야 한다는 주장도 펼쳤다.
재판부는 영풍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지 않았다. 배임에 대해선 영풍이 제출한 자료만으로 증명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자사주 매수 재원에 대해선 배당가능이익만 초과하지 않으면 된다고 판단했다. 자사주를 살 때 임의적립금은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이번 가처분의 결과는 어느 정도 예상됐던 결과이다. 영풍은 이달 2일에도 고려아연을 상대로 제기한 '자사주 취득금지 가처분'에서 졌는데, 두 가처분의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 영풍은 공개매수 기간 내 특수관계자인 고려아연의 자사주 취득금지, 고려아연 이사의 업무상 배임 등을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영풍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려아연과 영풍이 특수관계인이 아니라고 판단했고, 배임의 근거가 됐던 고려아연의 주가를 합리적으로 산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1차 가처분' 패소 직후 영풍은 곧바로 '자사주 공개매수 중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영풍이 또 다시 가처분을 제기한 것에 대해 "상당 부분 재탕"이라고 지적했다.
'재탕 가처분'에서도 영풍이 졌지만, 경영권 분쟁의 핵심인 공개매수에선 의미있는 지분을 확보했다. 지난 14일 끝난 공개매수에서 영풍·MBK연합은 고려아연 지분 5.34%를 확보하며 의결권 경쟁에서 한발 앞선 것이다.
공개매수 가격에선 고려아연(89만원)이 영풍·MBK연합(83만원)을 앞섰지만, 가처분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 탓에 영풍·MBK연합에 예상보다 많은 주식이 몰린 것으로 분석됐다. '주식 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변수 중 하나가 불확실성'이라는 명분을 앞세운 영풍·MBK연합과 '더 높은 가격으로 승부하겠다'는 실리를 내세운 고려아연의 공개매수 싸움에서, 명분이 실리를 이긴 셈이다.
오는 23일 고려아연의 공개매수가 끝나면 본격적인 의결권 경쟁이 시작된다. 영풍·MBK연합이 확보한 38.47%와 고려아연 우호지분 36.51%(추정)이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을 펼치게 되는 것이다. 고려아연의 우호지분은 최 회장 일가가 보유한 15.65%에 지분동맹을 맺은 한화·LG·현대차가 보유한 18.36%, 이번 공개매수에서 베인캐피탈이 목표한 2.5% 등을 합친 예상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