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레인보우로보틱스 인수를 다음 달 마무리한다. 대기업이 사업 다각화를 위해 로봇 회사에 투자했다는 점에서 지난 2021년 현대차그룹이 인수한 보스턴다이내믹스와 비교되는 인수합병(M&A)이다.
두 M&A는 누적된 적자보다 성장 가능성에 베팅했고, 상용화되기 전까지 인내심이 필요한 미완성 사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삼성전자가 상장사인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콜옵션(정해진 가격에 살 권리)을 활용해 2년에 걸쳐 분할 매수했다면, 현대차그룹은 비상장사인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기업공개(IPO)로 대박을 노리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레인보우로보틱스, 보스턴다이내믹스 몸값의 절반
삼성전자는 레인보우로보틱스 지분 35%(678만9950주)를 인수하는데 총 3542억원을 썼다. 2023년 1월 레인보우로보틱스 유상증자를 통해 194만200주(10.22%)를 인수한 뒤 그해 3월 91만3936주(4.77%)를 추가로 장외매수했다. 작년 12월엔 393만5814주에 대한 콜옵션을 2675억원에 행사했다. 2년에 걸쳐 3차례 지분을 인수하며 최대주주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2021년 6월 현대차그룹은 9963억원에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 80%(968만6431주)를 한꺼번에 인수했다. 현대차 3736억원(이하 보스턴 다이내믹스 보유 지분 30%), 현대모비스 2491억원(20%), 정의선 회장 2491억원(20%), 현대글로비스 1245억원(10%) 등 그룹과 오너가 분산투자했다. 잔여 지분 20%는 기존 대주주인 소프트뱅크그룹이 가지고 있다. 2020년 인수 발표 이후 지분 인수까지 6개월이 걸린 속전속결 M&A였다.
삼성전자와 현대차그룹은 증자를 통한 신주 발행과 기존 대주주의 구주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로봇 회사를 인수했다. 지분 매입 대금이 기존 주주에게만 흘러가지 않고, 회사로 유입될 수 있도록 증자를 추가한 구조를 짠 것으로 분석된다.
인수 당시 주당 매입 가격을 계산해보면 보스턴다이내믹스 10만2855원, 레인보우로보틱스 5만2165원 가량이다. 보스턴다이내믹스가 레인보우로보틱스보다 2배 더 몸값이 비싼 것이다.
인수구조를 보면 삼성전자는 단독으로, 현대차그룹은 분산 투자했다. 분산 투자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지배구조는 현재 더 복잡해졌다.
2022년 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는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을 전량 미국 신사업 지주사 HMG글로벌에 출자전환했다. 보스턴다이내믹스와 HMG글로벌 주식을 바꾸면서 지배구조가 '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HMG 글로벌→보스턴다이내믹스'로 바뀌었다. 현재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지분을 보면 HMG 글로벌 50%, 정의선 회장 20%, 현대글로비스 10% 가량이다.
삼성, 3천억 썼는데 벌써 5조…더 큰 꿈 꾸는 현대차
삼성전자가 레인보우로보틱스를 인수하기 전인 2022년 3만원대에 머물던 레인보우로보틱스 주가는 현재 24만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2년 만에 8배 가까이 오른 것이다. 현재 레인보우로보틱스 시가총액은 4조6000억원이 넘어섰다.
2년에 걸친 인수기간동안 레인보우로보틱스 주가가 급등하면서 결과론적으로 삼성전자는 시총 5조원대 회사를 3542억원에 경영권을 확보하게 됐다. 레인보우로보틱스 증자를 통해 첫 지분을 확보한 뒤 기존 경영진의 주식을 살 수 있는 콜옵션을 활용한 덕분으로 분석된다. 앞으로 삼성전자는 기존 레인보우로보틱스 대주주가 보유한 잔여 주식 458만1865주에 대한 콜옵션도 행사할 수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기업공개(IPO)를 준비 중이다. 현대차그룹은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 당시 2025년 6월까지 상장이 결정되면, 소프트뱅크그룹에게 잔여 지분 20%을 팔수 있는 풋옵션(팔 권리)을 줬다. 내년 6월까지 상장되지 않더라도 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기업가치는 아직 정확한 규모는 산정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삼성증권은 언론 보도를 인용해 "글로벌 자본시장의 로봇 열풍과 고성장에 대한 기대를 감안할 때, 기업가치는 100억 달러 가능"이라고 분석했다. 한화로 환산하면 14조원이 넘는 규모다.
상용화 전까진 적자 이어진다
두 로봇 회사의 실적은 아직 적자다.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작년 1~3분기 매출은 97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7.6% 줄었다. 이 기간 영업손실은 40억원, 당기순손실은 11억원을 냈다. 연간 영업이익은 2020년 -13억원, 2021년 -10억원, 2022년 13억원, 2023년 -446억원 등으로 아직 적자 늪에 빠져있다. 수년간 손실이 쌓이면서 작년 9월 기준 결손금은 90억원이 넘어섰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작년 1~3분기 수익(매출)은 767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16% 늘었다. 이 기간 순손실은 3156억원으로 적자폭이 확대됐다. 연간 순손실은 2021년 1970억원, 2022년 2551억원, 2023년 3348억원 등으로 매년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수혈'도 이어졌다. 현대글로비스는 2022년 440억원, 2023년 254억원, 2024년 1~3분기 673억원 등을 보스턴다이내믹스에 출자했다.
로봇 회사의 실적이 부진한 이유는 아직 상용화에 성공하지 못해서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2족 로봇 '아틀라스', 4족 로봇 '스팟', 물류 로봇 '스트레치'는 전 세계 산업계에 투입되고 있지만, 실적으로 연결되는 대규모 계약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레인보우로보틱스도 마찬가지다. 로봇팔 등으로 쓰이는 협동로봇은 제조업 기반 공장에 활용되고 있지만, 2족 보행 로봇인 'HUBO'는 아직 판매되고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