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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되는 캐즘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폭탄이 한국 배터리 업계를 정조준하고 있다. 취임 직후 멕시코·캐나다 등 인접국을 향했던 미국의 관세 칼날이 이번엔 K자동차를 향하면서 국내 배터리 업계에도 직격탄이 될 전망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18일(현지시각) 미국으로 수입되는 자동차 등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입장을 재차 확인, 관세가 최소 25%에 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보다 구체적인 방침은 오는 4월 2일께 언급, 향후 1년에 걸쳐 인상할 예정이다.
세간의 우려와 달리 K배터리 수장들은 다소 의연한 모습이다.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대표와 엄기천 포스코퓨처엠 대표 모두 "미국 관세는 예견된 시나리오"라는 반응을 보인 것. 이들은 △캐즘은 2026년까지 지속되고 △미국 관세정책과 상관없이 캐나다에서의 생산은 큰 문제 없을 것이며 △기존 계획대로 북미 사업전략을 수행한다는 방침이다.
배터리 수장들 한 목소리 "캐즘 2026년 끝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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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명 대표(한국배터리산업협회장)는 지난 19일 서울 서초구 JW메리어트 호텔서 열린 협회 총회·이사회에 앞서 취재진과 만나 "(대미 투자는) 시나리오대로 준비하고 있다"며 "큰 기조는 리밸런싱으로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규 투자보다는 이미 투자된 시설을 최대한 활용해 투자 효율을 극대화하겠다는 설명이다.
스텔란티스와의 캐나다 합작공장서 만든 제품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보조금으로부터 제외될 가능성이 있냐는 질문엔 "들어본 적 없다"고 짧게 답했다.
캐즘 장기화 가능성에 대해선 "계속 봐야 한다"면서도 "아직은 그때(연초)의 생각이 유효하다"고 말했다. 앞서 그는 올해 신년사를 통해 캐즘 종료 시점으로 '2026년'을 지목한 바 있다.
이어 김 대표는 배터리 3사 중 미국 내 생산 시설이 가장 많은 점을 장점으로 봤다. 현 기준 LG에너지솔루션은 8개의 단독 및 합작 공장을 미국서 운영하고 있다. 그는 "구성원들에게 '슈퍼 사이클이 오면 그간 준비를 잘한 기업이 효과를 극대화해 사이클을 탈 수 있을 것'이라고 얘기했다"며 "선두에 진입한 것들이 효과로 나타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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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포스코퓨처엠 대표이사로 취임한 엄기천 사장도 이날 첫 대외행보에 나섰다. 그는 포스코퓨처엠과 제너럴모터스(GM)의 캐나다 양극재 합작공장 완공 시기에 대해 "우선 올해 5월 준공하는 계획을 기존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캐나다 수입품 관세 부과에도 불구, 공장 준공을 더는 연기하지 않을 것이란 의지다.
포스코퓨처엠과 GM은 캐나다 퀘백주 얼티엄캠에 연산 3만톤 규모 양극재 공장을 건설 중이다. 당초 2024년 9월 투자 종료 예정이었으나 지난해 정정공시를 통해 완공 일정은 시장환경 변화에 따라 조정하기로 한 바 있다.
아울러 캐즘 종료시점으로 '2026년'을 지목했다. 엄 대표는 "캐즘 기간을 3년 정도 본 게 대다수"라며 "내년이 3년째인데, 올해가 가장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불법이민·마약 해결책만 내놓으면..."
전문가들도 미국 관세발 캐나다 사업엔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관측한다. 당초 트럼프가 캐나다·멕시코에 국가별 관세를 선포한 까닭이 '불법 이민'과 '마약 펜타닐 유입'이기 때문이다. 산업과 관련된 명분이 아니었기에 관세 유예 기간 중 관련 해결책이 마련될 경우, 리스크 상당 부분이 해소될 것이란 진단이다.
다만 캐나다 정권 교체에 따른 불확실성이 남아 있어 지나친 낙관론은 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지지율 하락으로 사임키로 하면서 올 10월 이전 총선을 치러야 한다.
박철완 서정대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는 "트럼프가 캐나다·멕시코에 25% 관세를 부과키로 한 것은 중국이 원산지인 펜타닐 원료가 캐나다 및 멕시코를 거쳐 자국으로 유입되니 이를 알아서 막아주면 관세 부과를 하지 않겠다는 뜻"이라며 "정치적 이슈를 무역 전쟁과 경제 이슈로 풀어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 교수는 "이와 관련된 대책만 나온다면 경제·산업 타격은 제한적이라 낙관적"이라며 "다만 캐나다 신임 총리가 '트럼프와의 정면승부' 노선을 택할 가능성을 제로라고 단언할 순 없기에 끝까지 예의주시할 필요는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