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1위 베터리 회사 중국 CATL이 최근 홍콩증권거래소에 상장 신청서를 제출했다. 최소 7조원 이상 자금을 조달해 해외 공사 건설 등에 투입한다. 지난해 든든한 중국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전세계 점유율이 38%에 달했다. 작년 한해 순이익만 10조원에 이른다.
반면 작년 4분기 적자를 낸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는 올해 설비투자 규모를 줄인다. 지난해 3사의 글로벌 시장점유율은 20%가 붕괴됐다. 실적이 받쳐주질 않아 투자에 적극 나설 수 없는 상황이다.

캐즘 속 엇갈린 실적
K-배터리가 진퇴양난에 처했다. 전세계적으로 전기차 시장이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에 빠지면서 시장 점유율이 빠지고 있다. 장밋빛 전망에 공격적으로 벌여던 설비투자가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반면 중국 배터리 회사는 든든한 내수를 기반으로 글로벌 점유율을 더 늘리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배터리 시장서 중국 기업 점유율은 65.0%로 전년 대비 3.1%포인트(p) 상승한 반면 국내 3사 점유율은 18.5%로 4.6%p 감소했다.
중국 내수시장을 제외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지난해 중국 기업들의 비중국 시장점유율은 35.1%로 전년 대비 3.3%p 늘었다. 같은 기간 국내 배터리 3사의 시장점유율은 5.0%p 하락한 43.5%를 기록했다.

점유율 변화는 실적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작년 SK온의 영업손실은 1조1270억원에 이르렀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5754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보조금을 제외하면 9050억원 적자다. 3사 중 유일하게 연간 흑자를 낸 삼성SDI 마저도 1조원 이상 수익성이 급감했다.
반면 지난해 CATL은 순이익 10조원을 달성했다. CATL이 지난 1월 중국 선전증권거래소에 공시한 지난해 연간 잠정 실적에 따르면, 순이익은 490억~530억위안(9조7300억원~10조5200억원) 규모다. 전년 대비 10% 감소한 수준이지만, 미국의 강력한 대중 규제를 고려했을 때 선방했다는 평가다.
전세계적 캐즘속에서도 중국 배터리 회사가 성장할 수 있는 배경은 든든한 내수에 있다. 지난해 중국의 전기차 판매 증가율이 39.7%에 이른다. 반면 북미는 10.1%에 그쳤고 유럽은 1%대 역성장했다. 한국산 배터리 판매가 대부분 북미·유럽에 집중돼있는 만큼 타격이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 배터리 회사가 캐즘 타격을 더 받는 이유는 '물량전' 승기를 잡지 못하고 있어서다. 중국보다 내수시장이 작은데다 가격 경쟁력도 밀리며 글로벌 시장서 우위를 점하기 힘든 상황이다.

"최악의 경우 사업 구조조정까지"
캐즘 속에서 중국과 한국의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최근 CATL은 설비 및 연구개발에 더욱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헝가리에 11조원 규모 공장을, 스페인에 6조원 규모 합작공장을 짓겠다는 방침이다. 상장 자금 일부가 이 곳에 투입된다. 국내 기업이 먼저 뛰어든 전고체 배터리도 빠르게 추격 중이다. CATL은 올해 전고체 배터리 연구팀에만 연구 인력을 1000명 이상 충원, 전고체 배터리 샘플 시험 생산에도 돌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작년 4분기 실적발표에서 국내 배터리 회사는 올해 설비투자(CAPEX) 규모를 낮춰잡았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전년 대비 20~30% 가량 축소, SK온은 50% 가량 감소키로 했다. 삼성SDI는 구체적인 수치를 언급하지 않았으나 전년 대비 10% 이상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철완 서정대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는 "CATL이 홍콩 증시에 상장하겠다는 건 실적에 기반한 벌크업인데 우리는 그럴 여력이 없다"며 "그간 미국에 공장을 지어 보조금(AMPC) 등 지원을 받았음에도 실적이 부진한 것은 투자 방향이 잘못됐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경쟁에 뛰어들만한 체력이 되기 위해선 AMPC를 제외하고도 흑자를 낼 수준으로 수익성이 안정화돼야 한다"며 "보조금을 통한 착시 효과로 적자를 감추는 것은 기업경영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롤모델로는 일본 파나소닉을 꼽았다. 파나소닉은 지난해 4분기 4000억원 영업이익을 달성, 연간 1조1600억원 흑자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테슬라 외 무리한 고객 확장을 하지 않아 시장점유율은 다소 떨어진 반면 내실은 단단히 다졌다는 평가다.
박 교수는 "파나소닉은 최적화를 통해 경영 환경을 개선한 좋은 예"라며 "우리는 점유율이 떨어지지만 수익성이 좋은 일본과 점유율이 높으면서 수익성까지 좋은 중국에 각각의 이유로 밀리고 있는 상황이고, 현 시점에서 '초격차'를 논하는 것은 욕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 3사가 최근 CAPEX를 조정한 것은 나름 긍정적이며 당분간 확장일변도로 가야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숙고해야 한다"며 "최악의 경우 사업 구조조정까지 염두에 둬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