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이 미국과 체결한 통상·관세 합의 이행에 본격 착수했습니다. 5500억달러 대미 투자 약속 중 첫 번째 프로젝트 3건을 공식 발표하면서 '돈 보따리'를 풀었죠. 트럼프 행정부 2기가 한국을 압박하는 가운데 일본이 선제적으로 움직이면서 통상 전선의 긴장감이 다시 높아지고 있습니다.
에너지·핵심광물 묶은 52조 패키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7일(현지시각)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 "일본과의 거대한 무역 합의가 막 출범했다"며 "일본은 5500억달러 투자 약속에 따른 첫 번째 투자 세트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텍사스주의 석유·가스, 오하이오주의 발전, 조지아주의 핵심광물 등 전략 분야 3개 프로젝트를 직접 거론하며 "관세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라고 강조했죠.
첫 투자 규모는 360억달러. 한화로 약 52조원입니다. 오하이오주에는 330억달러를 투입해 9.2기가와트 규모의 가스화력발전소를 건설합니다. 원전 9기에 맞먹는 발전량입니다. 텍사스주에는 아메리카만 심해 원유 수출 인프라를 조성하고요. 조지아주에는 산업용 인공 다이아몬드 제조 설비를 구축합니다. 에너지·핵심광물·첨단 제조 인프라를 묶은 전형적인 경제안보 패키지입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수천 개의 고임금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며 "일본은 자본을 공급하고 미국은 전략 자산과 산업 역량을 확보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는데요.
전문가들은 일본의 '속도전'에 주목합니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일본은 협상 타결도 빨랐고 후속 제도 정비까지 신속히 마쳤다"며 "어차피 할 투자라면 선점해 미국과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가져가려는 전략으로 보인다"고 진단했습니다. 중간선거와 국정연설을 앞두고 성과가 필요한 시점에서 일본이 트럼프 대통령의 카드가 됐다는 분석입니다.
이번 발표는 한국을 향한 압박과도 맞물립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한국 국회가 대미투자특별법을 처리하지 않은 점을 거론하며 자동차·목재·의약품 등에 대한 관세를 25%로 되돌릴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죠.
문제는 한국의 협상 여건이 넉넉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미국 시장에서의 입지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기준 미국의 한국산 수입은 1134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5.9% 감소했습니다. 수입 비중은 3.6%로 1988년 이후 최저입니다. 순위도 7위에서 9위로 밀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산 석탄 수출 확대'까지 언급했습니다. 관세에 이어 에너지 구매를 협상 지렛대로 삼겠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2040년 탈석탄을 선언한 한국으로서는 기후 정책과 통상 리스크가 충돌하는 지점입니다.
'일본과 한 묶음' 프레임의 함정
이에 대해 김 교수는 "미국이 일본과 한국을 한 바구니에 담아 비교하려는 구도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 틀에 스스로 올라타면 우리 노선이 오히려 더 큰 함정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양국의 조건이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짚었습니다. 일본은 기존 법 체계 안에서 곧바로 움직일 수 있었지만 한국은 '투자특별법' 제정이라는 절차적 과제가 남아 있다는 겁니다. 경제력과 자금력에서도 격차가 적지 않다고 봤습니다. 정치 환경 역시 다릅니다.
김 교수의 진단은 이렇습니다. "다카이치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의 관계와 이재명 대통령과의 관계는 같지 않습니다. 그들은 팔짱을 끼고 있는 사이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죠. 일본을 기준으로 '왜 한국은 안 하느냐'는 프레임을 한국이 인정하는 순간 그 비유에 계속 맞춰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일본을 따라가는 경쟁 구도가 아니라 한국 방식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독자 전략이 필요합니다."
석탄 발언에 대해서도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습니다. 한국 정부가 "공식 협의된 바 없다"고 밝힌 만큼 정부 설명을 우선 신뢰해야 한다는 겁니다. 트럼프의 발언은 정치적 수사가 강해 최종 입장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입니다.
김 교수는 "확인되지 않은 트럼프 말 한마디에 맞춰 바로 스텝을 밟아서는 안 된다"며 "왈츠를 추다가 갑자기 디스코로 바꾸는 식의 대응은 전략이 아니다. 압박 가능성은 열어두되 정책의 리듬과 방향은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에너지·전력·핵심광물은 AI 산업 확산과 맞물린 미국의 전략 산업입니다. 일본의 첫 프로젝트는 단순 투자 집행이라기보다 트럼프 2기 통상 전략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에 가깝습니다. 관세를 지렛대로 삼아 자본을 끌어들이고 이를 국내 정치 성과로 연결하는 방식입니다.
트럼프는 "미국은 다시 건설하고 다시 생산하며 다시 이기고 있다"고 말합니다. 메시지 속에서 이제 시선은 한국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같은 프레임 안에서 보폭을 맞출지 아니면 다른 협상 공식을 스스로 짤지 결정해야 할 때입니다. 쟁점은 투자 액수가 아닙니다. 앞으로 어떤 좌표 위에서 협상을 이어갈 것인지 그 방향을 정하는 문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