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이 깜짝 금리인하에 나섰다. 국내외 모두 예상치 못한 결과다. 언뜻 보면 금리 인하는 유동성 공급을 더 강화한다는 측면에서 호재다.
그러나 예상 밖의 결과라는 점은 시장에 찜찜한 느낌을 남기고 있다. 유로존이 처한 상황이 생각보다 더 녹록지 않을 수 있어서다. 전문가들이 평가도 엇갈린다. 유로 약세를 통해 수출 부양에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와 함께 유로존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디플레이션 방어 차원을 감안할 때 잘못된 처방전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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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CB, 디플레가 경기회복 찬물 끼얹을까 조바심
유럽 경제가 최근 회복세에 있었지만 ECB는 물가에 더 주목했다. 인플레이션율이 안정되다 못해 하락할 조짐을 보였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유로존의 연간 인플레이션율은 0.7% 하락하며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미 물가가 하락 중인 그리스에 더해 아일랜드 물가 역시 0.1% 내렸고 네덜란드 인플레이션 상승률도 2.4%에서 1.3%로 급락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 역시 유로존이 물가 하락 위험에 아직 처하지 않았지만 디플레가 지출과 투자, 이익을 갉아먹고 정부의 부채 부담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적극적인 디플레 방어 의지를 표명한 셈이다.
지난 2분기 유로존 경제가 오랜 경기후퇴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였지만 드라기 총재는 활발한 회복세가 못된다고 강조했다. 경기 하강 리스크가 여전하다는 얘기다.
◇ 슈퍼 마리오의 카리스마..유로 약세로 수출 기대
ECB가 깜짝 금리 인하로 디플레 방어 의지를 강하게 보여준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유로존이 막 회복되는 상황에서 디플레 우려가 자칫 회복의 불씨를 꺼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적절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금리인하가 유로화 약세로 이어질 경우 유럽 지역의 수출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리차드 바웰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S)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결정은 단기부양 이상의 큰 의미를 갖는다"며 "ECB가 소극적이지 않다는 점을 상기시켰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드라기 총재는 전임자인 장 클로드 트리셰 총재보다 적극적이고 선제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피에르 모스코비치 프랑스 재무장관도 이날 트위터에서 "디플레 리스크를 제한해 유로존의 지속 적인 회복을 이끌려는 ECB의 결정을 환영한다"고 평가했다.
◇ 디플레 근본원인, 유동성 부족 아닌 다른 곳 지적도
ECB의 결정 직후 시장은 환호했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최근 일부에서는 양적완화 지속으로 인한 자산버블이 감지되고 있고 유로존의 디플레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원인이 시중 유동성 부족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독일 등에서는 부동산 버블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고 유럽 증시도 그간 오름세가 지속됐다. 반면 양적완화로 풀린 돈이 실물로는 돌지 않으면서 공급과잉을 일으키고 이것이 디플레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ECB의 결정이 너무 늦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미국이 양적완화 축소를 한차례 고려했던 상황인데다 유로존의 일부 지역의 경우 디플레 조짐이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아자드 자가나 슈로더스 이코노미스트는 "금리 인하가 유로존의 대출 금리에 영향을 줄지는 미지수"라며 "이미 은행들은 과도한 규제 등으로 자본을 쌓아놓고 대출에 나서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로버트 신체 피에르폰트증권 외환전략 헤드는 "현재 유럽에게 필요한 것은 유동성이 아니라 은행들의 대출활동을 독려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라며 "유동성은 이미 시중에 풍부하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지난 9월 유럽 은행들의 비금융기업 대출이 전년대비 5.5% 감소한 점을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