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지도, 코스닥 기업들도 예전과 다릅니다. 잠시 반짝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장기적인 흐름 상에서 코스닥의 도약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요즘 한국거래소(KRX)는 신바람이 난다. 증시가 오른다고 거래소 직원들이 딱히 크게 덕볼 것은 없지만 지난해 '박스피' 돌파 후 순항 중인 시장이 그저 대견하기만 하다. 특히 지난해 말부터 뒤늦게 탄력을 받아 오르고 있는 코스닥 시장은 실로 오랜만에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거래소에서 코스닥시장본부를 이끌고 있는 정운수 코스닥시장본부 상무는 이런 관심이 반갑다. 늦은 감은 있지만 코스닥이 제대로 진가를 발휘하고 있어서다. 임원 직함을 달기 전부터 묵묵히 코스닥 시장을 일궈온 정 상무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격세지감' 코스닥의 부활
▲ 정운수 한국거래소(KRX) 코스닥시장본부 상무
정 상무는 2011년부터 코스닥시장본부 실무 쪽에 발을 담갔다. 햇수로 벌써 8년째다. 당시는 증시가 금융위기에서 겨우 헤어 나온 후 지지부진한 '박스피'를 이어가던 때였다. 코스닥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당시 실무부서에 처음 와서 보고 느낀 것은 달랐다.
"기존에 생각했던 것과 달리 2011년 당시에도 코스닥에는 건전하고 유망한 기업들이 꽤 많았습니다. 닷컴 버블 이후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던 부정적인 인식만 여전했던 것이죠."
코스닥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가 지속되면서 당시부터도 코스닥에서 어느 정도 성장한 기업들은 코스피로 짐을 쌌다. 정 상무 입장에서는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이런 각인된 이미지 때문에 지난해 상반기 코스피가 일찌감치 날아오를 때도 코스닥은 부진이 거듭됐다. 특히 카카오와 셀트리온의 코스피행(行)은 코스닥 시장은 물론 거래소에도 적지 않은 충격을 줬고 코스닥 위기설까지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글로벌 상승장에서 제대로 빛을 못하는 코스닥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계기가 됐고 정부도 부랴부랴 팔을 걷어붙였다. 코스닥 대장주 셀트리온 이전을 계기로 코스닥 활성화 대책 마련은 더욱 급물살을 탔고 지난해 하반기부터 코스닥은 비상 중이다. 정 상무 입장에서도 격세지감인 동시에 고무적이다.
"옛날의 코스닥이 아닙니다. 주가는 결국 실적을 따라가게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제는 코스닥을 떠나는 것보다 남아있는 게 훨씬 더 메리트가 있고 기업들에게 더 큰 이익으로 작용할 것으로 인식이 변할 것으로 봅니다"
◇ 코스닥 활성화, 이번엔 다르다
대개 코스닥 시장은 신정부가 들어선 2년 차에 상승세를 탄다. 이른바 성장산업 육성에 따른 정책 효과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코스닥 시장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뿌리 깊다 보니 이벤트 후 관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듯 관심도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정 상무는 조심스럽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 같다고 확신했다. 코스닥 시장의 상승의 질이 예전과는 달라질 것이란 기대다. 그는 "코스닥 기업들의 실적이 개선된 반면 주가에는 반영이 되지 못했다"며 "이번 정책을 보면 일시적으로 수급을 조절하거나 임시방편적인 방안보다는 지속적이 투자를 유도하며 길게 이끌려는 흐름들이 보인다"고 평가했다.
스케일업(Scale-up) 펀드를 통해 기업 투자를 지속적으로 하거나 정보 부족 해소를 위한 보고서 마련 등 정책적인 효과가 장기적인 활성화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설명이다.
이 일환으로 거래소가 내놓을 새로운 통합지수도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내달 5일 선보이는 KRX 300에 이어 중소형 지수가 상반기 안에 마련돼 코스닥에 투자할 수 있는 벤치마크 지수가 다양해진다. 통합지수 관련 상장지수펀드(ETF)도 1분기 중에 신속하게 출시할 예정이다. 거래소 등 증권 유관기관들이 출자하는 스케일업 펀드의 경우 한국성장금융을 중심으로 조만간 조성을 앞두고 있다.
테슬라 1호인 카페24가 조만간 상장을 앞둔 가운데 2호에 대한 관심도 크다. 정 상무는 아직까지는 조용한 상태지만 최근 풋백옵션 완화 등 테슬라 요건이 더욱 다양화되고 문턱도 낮아지면서 조만간 2호가 나타날 것이란 기대를 내비쳤다.
◇ 코스닥위원회 분리로 시장 운영에 집중
거래소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코스닥시장본부와 코스닥시장위원회의 분리다. 기존에는 코스닥시장 본부장이 위원장을 겸임했지만 독립성과 자율성을 높이기 위해 외부 전문가를 들이기로 했다. 상장 심사 및 폐지 등의 권한이 이양되고 코스닥시장 본부는 오롯이 시장 운영에만 집중하게 된다.
거래소는 이미 이사회를 통해 변경 안건을 통과시켰고 내달 5일 임시주주총회를 거쳐 금융당국 승인을 받으면 늦어도 1분기 중에는 윤곽이 나올 전망이다. 그러면서 일부에서는 코스닥의 독립성을 높이기 위해 코스닥위원회를 분리, 신설하면 시장감시가 소홀해지거나 거래소의 위상이나 역할이 축소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과거에도 거래소는 코스닥위원회를 외부 독립기구로 분리했지만 1년 만에 다시 본부장 겸직으로 변경한 바 있다. 시장 운영과 상장 승인 폐지 등을 놓고 조직이 나눠지면서 업무가 원활치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에는 책임과 권한이 기존보다 더 명확하게 실리게 되는 점은 다르다.
정 상무는 "책임과 권한을 위원회로 더 명확히 주자는 것이고 거래소가 전반적인 실무를 계속 담당하기 때문에 일각에서 우려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협업을 통해 무난하게 운영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올해도 숨은 진주 찾기에 매진
요즘 소위 가장 '핫'하다는 가상화폐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코스닥과 가상화폐 관계는 불분명하지만 가상화폐 거래소 규제와 코스닥 활성화가 맞물리며 코스닥이 가상화폐 규제 덕을 봤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최근 한국거래소는 'KRX' 명칭을 도용한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한 단속에 나서기도 했다.
"일부에서 그런 의견이 있지만 연관이 크진 않다고 봅니다. 가상화폐가 오를 때 코스닥 거래대금도 더 늘어났고 투자층도 20~30대와 중장년층으로 갈리면서 겹치지 않거든요. 대세를 좌지우지할 정도는 아닙니다"
코스닥이 단기간 급등한 것에 대해서도 크게 우려하지 않고 있다. 그는 "그동안 많이 올랐던 종목들이 주춤하고 정보기술(IT)이나 다른 업종으로 온기가 확산하고 있어 크게 걱정하지 않고 있다"며 "특정 업종에 몰리는 것이 아닌 데다 시장 전체를 활성화하고 있어서 정책 효과가 차츰 스며들게 될 것"으로 기대했다.
셀트리온 이전에 따른 시장 충격 우려에 대해서도 단층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정을 잘 할 것이라며 셀트리온 투자된 자금만큼 코스닥 시장 안에서 분산되기 때문에 충격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코스닥 시장의 숨은 진주 찾기에 매진하고 있다. "코스닥 활성화 후속 조치들이 차질 없이 진행되는데 신경을 쓰고 4차 산업혁명 등 혁신 기업 상장 유치 활동에도 주력할 계획입니다. 지난해 99개의 코스닥 기업이 상장했는데 여러 호재 덕분에 올해는 100곳을 훨씬 넘게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 정운수 상무가 코스닥 전광판을 배경으로 코스닥 시장의 달라지는 위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