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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주총]②물적분할 광풍도 '뜨거운 감자'

  • 2022.02.25(금) 09:25

이번 주총 시즌, 쪼개기 상장 성토장 될 전망
주주 보호 수단 전무…한국만의 특수한 문제
법령 개정·선진 제도 도입 목소리 점차 확대

올해 주주총회 시즌에는 물적분할도 핵심 이슈으로 대두될 전망이다. 국내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물적분할 광풍이 일면서 주주들과의 마찰이 예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물적분할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신설 법인이 상장을 하는 게 모든 논란의 시작이라고 지적한다. 중복 상장에 따른 지주사 할인으로 기존 주주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적분할을 막기 위해 주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주주총회에서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것이 유일한 수단이다. 해외와 달리 국내 관련법이 기업 친화적으로 구성돼 있고, 소송을 하기에도 실익이 크지 않다는 시각이다. 사실상 소액주주 보호에 대한 제도적 장치가 전무한 셈이다.

관련법 개정과 더불어 그간 논의는 많이 됐지만 도입되지 않고 있는 '소수주주 동의제'나 '집중투표제'와 같은 제도들이 각 주주간 구조적 불균형을 해소해 줄 수 있는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그래픽=비즈니스워치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물적분할

25일 한국거래소 기업공시채널(KIND)에 따르면 물적분할과 관련된 공시 건수는 최근 2년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2020년 43건의 공시가 올라왔고 지난해에는 40건이었다. 정정 공시를 제외하면 이 기간 58개사가 관련 공시를 냈다.

2017년과 2018년 각각 2개사와 3개사, 2019년 19개사와 비교하면 그 차이는 더욱 두드러진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물적분할이 유행처럼 번진 영향이 크다. 구체적으로 SK 계열사와 카카오가 주도했고 논란의 불씨는 LG화학이 당겼다.

물적분할은 기업(모회사)이 특정 사업부를 분사해 신설 법인(자회사)을 설립하는 것을 뜻한다. 이 경우 자회사의 지분이 100% 모회사로 귀속되기 때문에 기존 모회사 주주들은 자회사의 주식을 받지 못한다.   

시가총액 1조원 이상의 상장사 가운데서는 LS일렉트릭이 이번 주총을 통해 주주들과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회사는 다음달 28일 주총을 열어 신설법인인 LS모빌리티솔루션 주식회사(가칭)의 물적분할을 결정하고 오는 4월1일 정식 출범한다는 계획이다. 신설법인은 EV 릴레이 사업부를 이어 받는다.

비슷한 규모의 시총을 자랑하는 NHN과 특수강 사업부문 분사를 계획중인 세아베스틸도 3월 주총을 거쳐 4월 분할을 준비하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 사업 부문을 떼어내기로 한 크리스에프앤씨는 이보다 한 달 늦은 5월 분할을 추진하고 있다.

이것이 'K-중복 상장'

소액주주들은 기업들의 물적분할에 곱지 않은 시선을 던지고 있다. 분할 이후 상장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모회사와 자회사가 주식시장에 같이 상장하게 되면 존속 법인인 모회사의 주식 가치가 떨어져 기존 주주들에게 피해가 돌아간다.

이를 중복 상장, 소위 쪼개기 상장이라고 하는데 이로 인한 지주사 디스카운트가 물적분할과 관련한 모든 문제의 본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지난 24일 종가 기준 LG에너지솔루션의 시총은 97조4610억원으로 최대주주인 LG화학(38조7552억원)보다 40% 가까이 큰 규모를 나타내고 있다.

이달초 물적분할후 기업공개(IPO)와 관련한 연구 결과를 발간한 심승규 일본 아오야마학원대 국제정치경제학부 교수는 "IPO를 위한 물적분할은 설령 성장동력 확충이라는 목적에 의한 것일지라도 신설 법인의 대규모 신주 공모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지분 희석은 불가피하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물적분할후 상장은 한국만의 특수한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해외의 경우 기존 주주의 지분 가치를 희석할 수 있는 상장을 제도적으로 막아놨기 때문이다. 불가피하게 분할해 피해를 야기하더라도 보상이 수반된다.

지난달 중순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내놓은 보도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경우 도쿄 증권거래소 유가증권 상장규정 제601조 제1항 제17호에 근거해 주주 권리의 내용과 그 행사가 제한되는 경우 상장 폐지한다. 

일본보다 다소 느슨한 뉴욕증권거래소(NYSE)나 나스닥도 기존 주주의 의결권은 기업 활동이나 발행을 통해 이질적으로 축소되거나 제한될 수 없다고 못 박고 있다. 침해될 경우 기타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일본의 조항을 국내 시장에 적용하면 소액주주들과 진통 끝에 주식시장에 진입한 대부분의 대기업 자회사들은 상장폐지 사유에 해당한다. 미국은 분할후 상장을 하면 일정 비율에 비례한 신주 지급과 함께 현금 보상을 한다. 대표적으로 IBM이 인프라서비스 사업부를 분할하면서 보통주 5주당 신주 1주를 제공했고, 5주 미만은 현금으로 보상한 바 있다.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소수주주 보호 장치 마련 시급

최근들어 기업들이 물적분할에 열을 올리고 있는 배경에 대해 자금 조달이 가장 큰 목적이다. 자금조달없는 분할은 무의미하다는 이유에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대기업들이 특정사업 부문을 분사해 상장을 시키는 가장 큰 원인은 자금조달"이라며 "신설법인이 상장을 안 하면 돈을 끌어오지 못하는데 기업 입장에서 굳이 주주들과 충돌하면서까지 알짜배기 사업부를 떼어 낼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중복 상장에 따른 피해를 소액주주들이 대처하는 게 쉽지 않다. 상법이나 자본시장법 모두 기업 친화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소송을 통한 보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이관휘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미국의 경우 보상의 정도나 처벌의 수위가 기업이 존폐를 걱정할 정도로 강력하다"며 "반면 우리나라는 소수주주 규합, 비싼 소송비용, 낮은 처벌 수위 등 피해 보상과 관련한 여러 구조적 문제들이 존재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따라서 기업들의 중복 상장을 저지할 수 있는 기회는 주총에 참석해 상장을 안 시키겠다는 약속을 받는 게 유일하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이마저도 결국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시각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약속을 받는다는 것은 이를 정관에 명시하는 것으로 해석하면 되는데 과연 지배주주들이 이에 호의적일지는 의문"이라며 "그렇지 않는 한 최근 여론에 밀려 물적분할 계획이 없다고 밝힌 SK온, SK어스온, 카카오모빌리티,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등도 결국 IPO시장에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실상 소액주주 권익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없다 보니 법령 개정과 함께 이를 보완해줄 수 있는 제도 도입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상법 제382조의3(이사의 충실의무)의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를 '회사와 주주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로 변경하자는 의견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더불어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대주주와 이해관계에 있는 당사자를 제외한 채 소액주주 중심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소수주주 동의제'와 2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때 이사 수와 동일한 의결권을 부여해 주주들의 결정 권한을 강화해주는 집중 투표제 등의 채택을 서두르자는 주장도 뒤따르고 있다

이관휘 교수는 "법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쪼개기 상장을 막을 근거가 없기 때문에 기업들이 물적분할을 통해 기존 주주들의 이익을 희생시키고 있다"며 "이사회의 독립성 확보와 주식시장의 형평성 회복,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서라도 법령 개정과 함께 선진제도 도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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