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반도체 업황 부진 여파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삼성전자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으로 눈을 돌려 최강자 TSMC 추격에 더 고삐를 죌 기세다.
그러나 경기 침체로 인해 파운드리 분야 역시 상황은 만만치 않다. 현재 전망으로는 적어도 올 상반기까진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파운드리 업체들의 가동률 하락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반도체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TSMC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 우선 고객사와 최접점에 있는 디자인서비스 기업 육성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파운드리 분야에서 50%가 넘는 압도적 점유율을 기록 중인 TSMC는 반도체 디자인서비스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닫고 지난 2003년 반도체 디자인서비스 기업 GUC(Global Unichip Corporation)의 지분을 매입해 현재 전속 디자인서비스 기업으로 두고 있다.
TSMC가 최대주주로 경영에 직접 개입하는 만큼 GUC의 등기임원 역시 대부분이 TSMC 출신이다. GUC는 TSMC의 전속 디자인서비스 기업으로서 파운드리 밸류체인에서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고객사는 정보통신기술(ICT)기업이 65%로 가장 많고, 나머지는 팹리스(fabless·반도체 설계 전문기업)들이다. GUC의 최근 5개년 평균 매출액 성장률은 15%에 달하며, 지난해 매출의 경우 한화로 약 9800억원으로 전년 대비 60% 가까이 급증했다. 같은 해 TSMC 매출 93조2600억원의 약 1%에 해당한다.
GUC는 총 530여곳으로 추정되는 TSMC의 고객사들을 곧 자사 고객으로 간주한다. 고객사가 원하는 시스템 반도체(칩)를 TSMC와 공동 대응해 만족도를 높이는 전략으로 세계 시장의 절반을 독점하고 있다. △IP(설계자산)·IC(집적회로) 칩 디자인서비스 △웨이퍼 샘플 제조 고객사 검증 △웨이퍼 대량 생산 △칩 패키징/테스트 △납품의 순서로 협업을 진행한다.
특히 TSMC 공정 IP를 공동 개발하면서 수율과 가격에서 경쟁사 대비 월등한 경쟁력을 확보했고, 자사만의 IP 에코 시스템을 운영하면서 TSMC IP 밸류체인 기업들과의 협력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반도체업계에선 TSMC의 사례를 비춰 볼 때 삼성전자 역시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업계 1위를 달성하기 위해선 파운드리 밸류체인에서 GUC와 같은 전속 디자인서비스 기업이 필요하다는 견해다. 삼성전자 전속 디자인서비스 기업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삼성전자와 한 몸처럼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 인력이 100명 내외에 불과하거나 TSMC와 멀티공정을 운영하는 기업들은 전속 디자인서비스 기업으로 삼기에는 적절치 않다는 설명이다.
한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입장에선 중국과 대만 등 GUC의 중화권 고객사를 점진적으로 잠식해 갈 수 있는 경험있는 디자인서비스 기업이 필요하다"며 "특히 삼성전자의 판매 전략인 대리점 정책의 특성상 고객사와의 최접점에서 삼성을 대신할 '꽌시(關係·관계)' 유지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파운드리 고객사는 영국 IP 기업 ARM의 핵심 IP나 파운드리 공정 IP를 리드할 수 있는 디자인서비스 기업을 좋게 평가한다"면서 "결국 고객사가 IP를 선택하는 만큼 TSMC-GUC와 같이 삼성전자도 전속 디자인서비스 기업이 파운드리 밸류체인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보유 IP에서 TSMC에 절대적 열세인 삼성전자가 최근 ARM을 인수 대상으로 눈독 들이는 것도 고객사 만족도 향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업계의 판단이다. 한편 ARM 코리아를 이끌고 있는 황선욱 지사장은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 출신으로, 현재 시스템반도체 디자인 솔루션 전문기업인 코아시아 계열사의 사외이사를 겸직하고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