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다룬 영화 '인터뷰'를 놓고 미국과 일본의 대표 기업 구글과 소니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 암살을 소재로 한 이 코미디 영화가 '유튜브' 등을 통해 배포되면서 구글의 콘텐츠 유통 사업이 탄력을 받고 있는 반면 제작사인 소니는 해킹 공격을 받아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인터뷰' 온라인 상영..유튜브 사업 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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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사인 '소니 픽처스 엔터테인먼트(SPE)'는 지난 24일(현지시간)일 자사 영화 웹사이트(www.seetheinterview.com)를 포함해 유튜브 등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인터뷰'를 상영하기 시작했다. 25일 성탄절에 맞춰 미국내 300여개 독립영화관에서 영화를 개봉하기도 했다.
영화 인터뷰는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기 위해 북한으로 떠나는 쇼 제작자와 사회자가 미 중앙정보국(CIA)로부터 암살 지령을 받게 되면서 벌어지는 황당한 이야기를 줄거리로 한다. 당초 테러 위협으로 극장 상영이 취소됐으나 미국 독립영화관들의 요청으로 상영이 전격 결정됐다. 이 과정에서 제작사가 해킹 공격을 받는가 하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상영 취소 결정을 놓고 비판하면서 언론과 미국인들의 관심이 증폭됐다. 논란 끝에 최근에 개봉되자 이를 관람하려는 미국인들의 행렬이 줄을 이으면서 상당수 영화관에선 매진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외신에서는 영화 상영으로 구글이 재미를 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구글은 이 영화를 '유튜브 영화 채널'과 모바일 콘텐츠 장터 '구글플레이 스토어'를 통해 배포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관련 서비스가 재조명 받고 있어서다. 실제로 영화가 개봉되자마자 3시간 만에 유튜브 페이스북에 '좋아요'가 1만건 이상 클릭되는 등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구글의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는 짧은 분량의 비디오나 뮤직비디오를 공짜로 제공하는 것으로 잘 알려졌으나 사실 유료 콘텐츠도 다루고 있다. 경쟁사 애플의 '아이튠즈 스토어'에 밀려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하지만 인터뷰 상영을 계기로 유튜브는 영화 채널에 더 많은 유료 가입자를 확보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관련 사업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유료 가입자가 몰릴 경우 영화 뿐만 아니라 음악 등 다른 유료 콘텐츠 구입도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유튜브는 지난달부터 월정액 방식의 유료 음악을 시험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앞서 유튜브 최고경영자(CEO) 수잔 워지스키는 "유튜브의 유료 콘텐츠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영화 제작사 소니, 내부기밀 유출로 골머리
구글이 영화 인터뷰 덕에 미소를 짓고 있는 반면에 제작사인 소니측은 여러모로 곤란한 상황에 빠지게 됐다. 우선 이번 사태로 당초 계획했던 3000개 규모 극장 개봉 계획이 10분의 1 수준으로 축소됐다. 이로인해 막대한 영화 제작비(4400만달러)와 마케팅(3500만달러) 비용을 투입하고도 큰 손실을 볼 위험에 처했다. SPE에 대한 해킹 공격으로 컴퓨터 시스템 복구와 개인정보 유출에 따른 손해배상 및 소송비용 후폭풍까지 감안하면 총 손실액이 수억 달러에 달한다는 추산도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소니 경영진들이 주고 받은 민감한 내용의 이메일이 해킹으로 풀리면서 돌이킬 수 없는 어려움에 빠지게 됐다. 지난달 말에 해킹 공격으로 유출된 사내 기밀 문서 가운데에는 소니 경영진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인종 문제와 연관해 비하한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이메일에는 에이미 파스칼 SPE 공동 CEO가 헐리우드 스타 안젤리나 졸리에 대한 험담도 들어 있었는데, 파스칼은 졸리에 대해 "실력없고 버릇없는"이라는 표현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과 관련된 회사 기밀도 유출된 바 있다. 유출된 자료에 따르면 소니 경영진은 음악저작권 회사인 소니/ATV뮤직 퍼블리싱(Sony/ATV Music Publishing)의 매각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는 소니와 미국의 팝가수인 고(故) 마이클 잭슨이 각각 50% 투자해 지난 1995년에 설립한 곳이다. 이 회사는 비틀즈를 비롯해 앨비스 프레슬리, 셀린디온, 비욘세, 마돈나 등 유명 팝가수 노래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기업 가치는 15억~20억달러에 달하는 알짜다. 소니가 매각을 검토하게 된 배경은 주력인 전자 사업이 장기간 부진을 벗어나지 못하자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일본 소니 본사는 지난 3분기(7~9월) 12억달러 손순실을 낸 바 있다.
소니는 해킹 사고 여파로 소비자 신뢰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영국의 여론조사업체 유가브(YouGov)의 브랜드인덱스(BrandIndex) 보고서에 따르면 소니는 최근 소비자 브랜드 인지도 지수가 6년래 최저점을 찍은 것으로 나타났다.
◇美日 이원체제 소니, 위기 대응 취약 드러나
소니는 이번 사태를 통해 취약한 위기 관리 능력이 여실히 드러나기도 했다. 히라이 카즈오 CEO를 중심으로 한 일본 본사와 마이클 린튼 CEO가 이끌고 있는 미국 자회사이자 엔터테인먼트 사업 총괄회사가 해킹과 영화 상영 결정을 놓고 허둥대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소니는 일본 본사가 전자사업을 직접 다루고 있고, 100% 자회사인 미국의 '소니 코퍼레이션 오브 아메리카'가 영화와 음악, 출판물 등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소니 코퍼레이션 오브 아메리카' 밑에 '소니 엔터테인먼트(음악)'와 '소니 픽처스 엔터테인먼트(영화 ·텔레비전)'가 있는 구조다. 영화 인터뷰 제작사이자 해킹 피해를 당한 곳은 지배 구조상 가장 말단에 있는 '소니 픽처스 엔터테인먼트(SPE)'다.
소니는 80년대 세계 가전 산업을 주무르면서 헐리우드 영화 사업으로도 손을 뻗었다. 지난 1988년에 CBS레코드를, 이듬해에는 콜롬비아 영화사를 인수하는 등 콘텐츠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지난 2012년 히라이 가즈오가 소니 CEO로 취임하면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미국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정리했는데,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나온 마이클 린튼 CEO가 이를 총괄하게 했다. 마이클 린튼은 에이미 파스칼과 함께 SPE의 공동 CEO직을 맡고 있다.
소니는 해킹 사고가 터지자 대외 커뮤니케이션 창구로 SPE를 전면에 내세우는 반면 본사는 뒤로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다. 북한으로 의심되는 해킹 공격이 발생하고, 영화 인터뷰에 대해 북한측이 항의하자 이러한 불똥이 자칫 일본 본사에까지 번질 것을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같은 소니이지만 미국과 일본 사업이 엄연히 다르다고 선을 긋고 피해 확산을 피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히라이 CEO와 린튼 CEO가 연일 전화회의를 하면서 뒷수습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해커들이 유출한 이메일에 따르면 히라이 CEO는 이번 영화가 북한을 자극할 것을 우려해 린튼 CEO에게 수위 조절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내용은 에이미 파스칼 제작사 대표와 세스 로건 감독 사이에 오간 메일에서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