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으로부터의 자유. 자율주행차가 만드는 미래를 요약하라면 이렇게 쓸 수 있다. 그 자유는 운전자에게 시간과 공간의 자유를 줄 것이고, 늘어난 시공간에서는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싹틀 것으로 보인다. 자율주행차가 한국경제에 주는 이익이 2030년 38조원에 달할 것이란 계산이 나올 정도다. 국내외 자동차·정보통신기술(ICT) 업계의 경쟁 현황이 어떤지 살펴봤다. [편집자]
▲ 그래픽: 유상연 기자 prtsy201@ |
자율주행차 산업에 '춘추전국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자율주행차라는 새로운 먹거리를 두고 벤츠, BMW, 아우디, 현대차 등 기존 완성차 업체들과 테슬라, 구글, 애플, 우버 등 '게임 체인저'를 노리는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신생 업체들의 경쟁 구도가 형성되면서다.
29일 국내외 업계와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프로스트앤설리반에 따르면 자율주행차 시장 규모는 2020년 189억달러(22조원)에서 2025년 626억달러(73조원), 2035년에는 1152억달러(134조원)로 치솟을 것으로 전망되는 등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자동차부품연구원은 글로벌 컨설팅 업체 KPMG의 분석을 토대로 완전 자율주행차가 한국경제에 미칠 영향을 약 37조7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자율주행차는 자동차의 단순한 기능 업그레이드 수준을 넘어 차 스스로 주변환경을 인지하고 위험을 판단해 주행한다. 또 무선 인터넷으로 연결돼 각종 ICT 기반 기능을 제공하는 커넥티드 서비스도 가능한 차량을 뜻한다. 성능이 고도화된 자율주행차는 인공지능(AI), 영상인식, 카메라, 센서, 지도 및 경로 안내, 고장 진단, 클라우드, 5세대(5G) 통신, 보안 등 다양한 ICT 영역과 융합을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 '기술 경쟁'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정체구간 자율주행(TJA·Traffic Jam Assist) ▲자율주차 보조장치(APA·Automated Park Assist) ▲고속도로 자율주행(AHD·Automated Highway Driving) 등의 기술을 중심으로 부분 자율주행차를 내놓고 있다.
대표적인 예는 메르세데스-벤츠다. 벤츠는 지난 5월 부분 자율주행 기능을 넣은 '더 뉴 E클래스'를 선보였다.
이 차는 앞서가는 차량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주고, 전방 차량이 출발하면 자동으로 주행을 시작하는 한편, 카메라로 제한속도 표지판을 인식해 속도를 제어하는 '드라이브 파일럿' 기능이 탑재됐다. 이와 함께 한 차선 자율주행, 자동 긴급제동, 보행자 인식 기능 등도 갖춰 미국 네바다주에서 자율주행 실험 면허를 획득했다.
국내 완성차 업체인 현대·기아차의 경우 정체구간·고속도로 자율주행 등의 기능을 넣은 투싼 수소연료전지차, 쏘울 전기차가 지난해 12월 네바다주에서 자율주행 실험 면허를 땄다. 제네시스 G80에도 정체구간·고속도로 자율주행 지원, 차간 거리·차선 중앙 주행 유지, 톨게이트·표지판 인식 등의 기능을 넣는 등 부분 자율주행차를 선보이고 있다.
현대차는 이달 열린 '2016 LA 오토쇼'에서 완전 자율주행차에 한발 다가선 '아이오닉 일렉트릭'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 차는 벤츠, 아우디, 도요타 등에 이어 미국자동차공학회(SAE)로부터 자율주행 기준 레벨(0~5단계) 중 레벨4 인증도 받았다.
▲ 자율주행차를 둘러싼 자동차-ICT 업계 등의 전략 구도. [자료=보쉬] |
◇ 자율주행차 생태계는 '합종연횡'
완성차 업계의 이런 발걸음에 맞춰 자율주행차 관련 시스템을 만드는 '티어 원'(TIER 1·1차 협력사)들도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티어 원으로는 자율주행차에 필수적인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을 만드는 회사인 독일 '보쉬'가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삼성전자가 미국 자동차 전자장비(전장) 업체인 하만을 인수하면서 자율주행차 티어 원 대열에 가세하고 있다.
2차 협력사로 분류되는 티어 2에는 세계적인 자율주행차 부품업체인 모빌아이(Mobileye)가 있다.
이 회사는 테슬라의 자율주행시스템인 '오토 파일럿'에 핵심 부품을 공급했으나 최근 결별하고 BMW와 손잡은 바 있다. 통신업체, 운전자와 차량 간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HVI(Human Vehicle Interface) 기술을 제공하는 업체들도 티어 2에 속한다.
▲ 자율주행차 관련 기술. [자료=정구민 국민대 교수] |
◇ 게임 체인저 노리는 ICT 기업들
구글, 애플, 테슬라, 우버 등은 카쉐어링과 같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자율주행차의 비전을 제시하며 자신들이 영위하던 ICT 사업영역을 자동차 분야로 확대하고 있다.
특히 우버는 스마트폰으로 다른 사람의 차량을 호출해 택시처럼 이용할 수 있는 공유경제 모델을 제시해 작년 기준 기업가치가 한화로 약 80조원에 달하는데, 자율주행차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최근에는 도요타, 볼보 등 완성차 업체들과 잇따라 손잡고 대중교통을 대체하겠다고 나섰다. 미국 피츠버그에선 자율주행 택시도 시험 운영하고 있다.
테슬라 또한 지난 7월 공개한 '마스터플랜2'에서 자율주행차 공유 서비스를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자신의 차를 쓰지 않는 시간에 타인에게 빌려주고 돈을 벌 수 있는 서비스를 내놓겠다는 얘기다. 이 서비스가 고도화되면 자동차 스스로 집 앞에 도착하고 알아서 빌린 곳으로 돌아가는 렌트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구글은 이미 2009년에 무인 자동차 개발에 착수한 뒤 이듬해 모델을 선보였고, 올해 6월에는 크라이슬러와 협력해 자율주행 기술을 탑재한 시험용 모델을 내놓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업계 한 전문가는 "구글과 같은 ICT 기업들은 자율주행차를 말하면서 자동차를 팔겠다는 게 아니라 미래 교통의 비전을 제시한다"며 "수백조원에 달하는 미래의 교통 시장을 노리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