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병신년(丙申年)이 저물고 정유년(丁酉年)이 다가온다. 재계는 올해보다도 훨씬 힘든 경영 환경과 마주해야 한다. 세계 경제회복이 더딘 가운데 미국 트럼프 정부 출범을 앞두고 불확실성은 더 커졌다. 여기에 '최순실 게이트'의 소용돌이까지 가세하면서 그야말로 '내우외환' 상태에 빠져있다. 내년 예상되는 주요 경영 변수를 정리해본다. [편집자]
통신·방송 업계의 내년 키워드는 단연 인수·합병(M&A)이다. 통신·IPTV 사업자와 케이블TV(SO)의 '빅딜'이 예고되면서다. SK텔레콤·SK브로드밴드와 CJ헬로비전의 M&A가 지난 7월 공정거래위원회의 불허 결정으로 무산된 이후 새로운 불꽃이 튀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각사 최고경영자(CEO)들도 적극적인 M&A를 예고하고 나서면서 내년은 통신·방송 업계의 M&A 질주가 이어질 전망이다.
◇ 내년은 통신·방송 M&A 장날
포문은 1등 DNA가 꿈틀거리는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이 열었다. 권 부회장은 SK텔레콤-CJ헬로비전 M&A가 완전 무산된 직후인 지난 9월 기자간담회를 열고 "통합 방송법이 국회 심의를 거치고 있다. IPTV 사업자가 MSO(복수 종합유선방송사업자)를 인수할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면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통합방송법은 방송법과 IPTV법을 일원화하는 것으로, LG유플러스와 같은 IPTV 사업자의 케이블TV 지분 소유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분 소유 제한을 폐지하는 내용을 담은 통합방송법 개정안을 내년 4분기 내 마련해 오는 2018년 입법예고할 계획이어서 LG유플러스의 물밑 작업이 내년 한 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LG유플러스는 SK텔레콤-CJ헬로비전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LG그룹의 M&A 관련 인력을 충원해 팀을 꾸리고 관계부처와의 협력도 긴밀히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권 부회장은 "방송통신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와 충분히 논의하고 협의를 통해 방향을 잡은 뒤 추진할 것이므로 SK텔레콤-CJ헬로비전의 전철을 밟을 것 같지 않다"고 했다.
▲ 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
매물로 나왔던 CJ헬로비전의 새 사령탑도 M&A를 천명하고 실제로 행동에 옮기고 있다. 지난 10월 말 변동식 CJ헬로비전 공동대표는 "유료방송 시장에서 독보적 1등이 되기 위해 승부수를 던지겠다"며 "헬로비전은 2000년 1개 SO에서 현재 23개까지 성장하면서 자체 성장도 했지만, 대부분 M&A를 통해 키워왔는데, 앞으로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적절한 시점에 (M&A를)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변 대표의 발언은 지난 12월 초 현실이 됐다. CJ헬로비전은 경남지역 SO인 '하나방송' 주식 전량을 225억원에 인수하고 소유·경영권을 취득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CJ헬로비전은 이번 하나방송 인수 이후에도 공격적 M&A를 이어갈 방침이다. CJ헬로비전 관계자는 "이번 M&A가 케이블 산업 시장 재편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면서 추가적인 M&A 가능성도 예고했다.
SK텔레콤 또한 'M&A 전문가'를 새 수장으로 앉히면서 시동이 꺼진 M&A 차량에 시동을 다시 걸겠다는 의사를 확인했다.
지난 21일 SK텔레콤의 지휘권을 받은 박정호 전 SK주식회사 C&C 사장은 SK그룹 내 대표적인 M&A 전문가로 통한다. 그가 실력을 발휘한 M&A 사례로는 초대형 딜만 SK텔레콤(한국통신), 신세기통신, 하이닉스반도체(SK하이닉스) 등에 이른다. 인수 대상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 사장은 호주 카세일즈닷컴과 조인트벤처(JV)를 만들어 SK엔카의 글로벌 자동차시장 진출 가속화를 주도했고, ISDT를 인수해 반도체 모듈사업 진출에도 기여한 바 있다.
변수는 M&A 대상 기업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와 미래창조과학부가 추진하는 '유료방송발전방안' 등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업계 관계자는 "마케팅 비용을 써서 시장을 공략하는 것과 케이블TV를 인수하는 것 중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추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케이블TV 권역제한(지역 사업 독점권)을 폐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유료방송발전방안은 IPTV 사업자의 케이블TV 헐값 인수를 돕는 수단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어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
◇ 사물인터넷 꽃피고 5G '꿈틀'
새로운 먹거리로 떠오른 사물인터넷(IoT) 시장에서도 본격적인 경쟁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산업용 IoT 서비스에 필요한 네트워크·장비가 속속 상용화 과정을 밟으면서 가격도 내려가고 있어 대중화 전망이 밝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이 지난 6월 구축한 산업용 IoT 전용망 '로라'(LoRa)와 KT, LG유플러스 연합이 내년 1분기 공동 구축할 예정인 협대역(NB) IoT 망은 저마다의 기술력과 저렴한 가격을 내세우고 있다. SK텔레콤에 따르면 로라의 모듈 가격은 기존의 절반, 통신료는 3분의 1, 유지보수 비용의 경우 3분의 2 수준이다. KT와 LG유플러스도 가격을 크게 낮추기로 하면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개별 소비자를 상대로 월 정액 요금을 내는 방식을 권해야 하는 홈 IoT와 달리 내년 본격 상용화되는 산업용 IoT는 기업 등을 상대로 계약이 성사되면 안정적 수익 창출이 기대되기 때문에 놓칠 수 없는 수익원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중장기적인 먹거리인 5세대(5G) 이동통신시장에서의 경쟁도 내년에 절정을 이룰 전망이다. 내년 하반기 무렵에는 이동통신 표준화 기술협력 기구인 '3GPP'에서 단계별 5G 표준화 작업이 대부분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재 선두주자는 KT다. KT는 내후년 열리는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선제적으로 5G 시범 서비스를 선보여 기술 표준을 선도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KT는 내년 9월까지 '평창 5G 규격' 기반의 5G 시범 서비스를 위한 네트워크 구축을 완료할 목표다. 안정화 작업을 거친 뒤 평창 올림픽이 열리는 오는 2018년 2월9일 5G 시범 서비스를 전격 선보일 예정이다.
SK텔레콤도 기세가 무섭다. SK텔레콤은 5G 시험망을 내년 초부터 서울·수도권 주요 지역에 구축·운용하는 한편, 에릭슨∙퀄컴등 장비·칩셋 분야 1위 업체들과 5G 기지국 장비·단말의 프로토타입 1차 개발이 완료되는 내년 하반기에 상호 연동 테스트를 진행하기로 했다. 업계 관계자는 "내년은 통신·방송 업계의 M&A 드라이브와 신사업 경쟁이 주목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