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퓨즈 카드. [사진=브릴리언츠] |
팔아 본 사람은 안다. 남에게 물건을 판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것도 세상에 없던 물건을 파는 일은 더욱 어렵다. 개념부터 설득해야 한다. 설득이 겨우 끝나면 지갑은 또 어떻게 열게 할 것인가.
국내 핀테크 스타트업 브릴리언츠는 미국에서 '스마트 멀티 카드'라는 낯선 물건을 200만달러(약 22억5000만원) 넘게 팔았다. 최근 두달 사이 성과다. 퓨즈 카드(Fuze Card)라는 이름의 스마트 멀티 카드는 신용카드와 멤버십 카드 등 각종 카드 30종을 담아 쓸 수 있는 실물 카드 모양의 스마트 기기다.
이른바 화이트 카드 방식의 간편 결제 서비스인데, 브릴리언츠가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한다.
국내에선 LG전자가 이 서비스를 내놓으려다 방향을 바꿔 스마트폰에 탑재된 형태의 LG 페이를 출시한 바 있고, 최근 통신사 KT가 클립카드 라는 화이트 카드를 선보인 바 있다.
화이트 카드 시장에 진입하는 사업자가 드문 이유는 일단 기기부터 팔아야 서비스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페이 등 대부분의 간편결제 서비스가 스마트폰을 통해 이용할 수 있는 점과 크게 다르다.
그런데 브릴리언츠는 퓨즈 카드를 개당 129달러(14만5000원)에 미국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인디고고에서 팔았다. 무려 1만3288명이 샀다. 비결이 무엇일까. 배재훈 브릴리언츠 대표를 경기도 성남시 판교사옥에서 만났다.
▲ 배재훈 브릴리언츠 대표. |
-안녕하세요. 스마트폰 입력 장치 'OTP'(Optical TrackPad)로 유명한 크루셜텍에 있다가 창업했다고 들었는데
▲크루셜텍 창업 멤버였습니다. CTO(최고기술책임자), CMO(최고마케팅책임자) 하다가 지난 2010년 상장 이후 1년 반 정도 뒤에 퇴임했습니다. 사실 쉬어도 되는 상황이었는데요. 그동안 일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썩히는 것이 일단 아까웠고요. 회사 나왔을 때 제 나이 마흔이었거든요. 100세 시대라는데, 40년 이상 놀 생각하니 그것도 아닌 것 같았습니다. 누군가 시키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무언가 엄청 파는 게 제 성격입니다. 창업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죠.
-창업 아이템으로 핀테크를 선정한 배경은 무엇이죠
▲국내 소비자는 유명한 대기업 브랜드를 사더군요. 이런 상황에선 하드웨어를 하더라도 소프트웨어도 해야 하고, 특히 남들이 못하는 어려운 기술이 들어가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소비자가 관심이 있는 분야이면 좋다고 봤습니다. 그게 핀테크였습니다.
-의구심은 없었는지
▲지난 2013년 말 정부의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한 달 정도 머물며 현지 사정을 익혔습니다. 당시 그곳에서 유행했던 게 IoT(사물 인터넷) 였습니다. 핀테크 얘기도 나오고 있었죠. 애플 페이가 막 나온다는 얘기가 있을 때였는데요.
그런데 미국은 스마트폰으로 쓰는 페이를 쓰기 불편하더군요. 미국에선 음식을 다 먹으면 종업원이 계산서를 가지고 오죠. 손님은 테이블에 앉아 신용카드나 현금으로 돈을 내지요. 그런데 애플 페이를 쓰면 아주 개인적인 물건인 스마트폰을 낯선 종업원에게 맡겨야 하잖아요. 이런 식사 문화에선 페이보단 기존 카드 방식이 가능성이 있겠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콘셉트를 잡고 사업을 시작했죠.
▲ 배재훈 대표. [사진=브릴리언츠] |
-세계 최초 맞나요
▲저희와 같은 콘셉트는 있었습니다. 미국 코인, 플라스틱 이라는 회사였죠. 그런데 이들은 제품 개발을 완료한 게 아니었습니다. 동영상을 멋지게 만들어 뿌리더군요. 그러면 사람들이 혹하죠. 그때부터 개발을 시작하더군요. 걱정은 했죠. 뒤쳐지는 걸까. 그러나 제품 개발이 좀 늦을지라도 그건 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제품 개발에 매진했습니다. 크루셜텍에 있을 때 세상에 없던 제품 OTP를 만들어 블랙베리에 납품한 경험이 있어 얇고 견고한 제품을 가장 잘 만들 자신이 있었습니다. 결국 상용화는 저희가 세계 최초가 됐습니다.
-다른 곳이 쉽게 따라올 수 있는 건 아닌지
▲맞습니다. 처음 만드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만 따라 하는 것은 쉽습니다. 한번 뜯어보면 되거든요. 그래서 국내외 특허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국내외 특허 31건이 등록 또는 출원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투자 유치 상황은 어떤지
▲국내에선 KTB네트워크(10억원)와 KDB산업은행(20억원), LB인베스트먼트(10억원)에서 투자 유치했고요. 일본 회계 솔루션 기업 MJS(30억원)도 투자했습니다. 미국에 이어 일본 진출도 준비 중입니다.
-국내가 아니라 미국에서 사업을 본격 시작한 것 같습니다. 이유가 무엇인가요
▲저도 국내 레퍼런스를 쌓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만 가격 문제가 좀 큰 것 같습니다. 이런 제품을 5000원 정도에 판다면 인기가 있을 텐데요. 이게 말이죠. 이런 액정을 넣고 배터리도 넣고 실제 카드처럼 얇게 만드려면 소비자 가격이 10만원대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걸 왜 10만원이나 주고 살까 하는 생각을 저도 할 정도입니다.
시장 반응을 확신할 수 없으니 다른 사업자들이 소극적일 수밖에 없을 거고요. 누군가 시작해서 잘 되면 따라가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미국 분위기도 그렇습니다만 결제 문화가 다르고 시장 규모가 크다는 점은 기회입니다. 저희가 잘하면, 국내외 다른 사업자와 콜라보(협력)도 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국내 사업자를 두드려보지 않았는지
▲두드려봤죠. 10만원이 넘는 물건을 어떻게 팔까 부담을 느끼더군요. 인터넷 댓글만 봐도 스마트폰 쓰면 되는데 굳이 하나 더 갖고 다녀야 하느냐는 반응이 있었죠. 그런데 말입니다. 요즘 목에 거는 카드 지갑 가지고 다니는 분들 많잖아요. 페이보다 카드에 수요가 있다는 말이죠. 미국에 가보니 이 사업을 잘 시작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본사를 미국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시장도 크고요. 미국에서도 크라우드펀딩을 해서 100만달러만 넘으면 대박이라고 합니다. 그걸 훌쩍 넘겼습니다.
▲ 퓨즈 카드 구성요소. [사진=브릴리언츠] |
-기술 차별점을 설명 부탁해요
▲여러 카드를 넣어 쓸 수 있는 스마트 멀티 카드를 0.84밀리미터(mm)로 만드는 것이 어렵고요. 그 얇은 공간에 배터리, IC 칩 등이 버그 없이 들어간 거죠. 기술 얘기를 좀 더 하면요. 보통 신용카드 뒷면을 보면 마그네틱 띠가 있잖아요. 카드를 긁으면 순간적으로 카드 번호가 신호로 바뀌는데요. 이거 어려운 기술입니다.
삼성페이도 갖다 대면 카드에서 신호가 계속 나와 결제가 됩니다. 보통 그 신호가 30~60초 정도 나오는데, 그 신호가 딱 한 번 전달되면 결제가 되는 식입니다. 저희 퓨즈 카드는 신호가 계속 나오는 게 아닙니다. 포스 단말기에 긁는 순간이 0.5초 정도인데요. 딱 그 순간에 신호가 전달되고 마는데, 연결이 됩니다. 그런 기술이 들어갔습니다. 이것이 어렵습니다.
-개발 인력이 많겠어요
▲현재 직원이 40명인데요. 30명이 개발자입니다.
-미국 크라우드 펀딩에서 성공한 비법 하나만 알려주시죠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에는 워낙 많은 제품이 올라오기 때문에 마케팅 전략도 중요합니다. 좋은 제품을 잘 준비해서 딱 내놓으면 소비자들이 알아서 사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했다간 '폭망'합니다. 따라서 사전에 SNS 등을 통한 마케팅 활동도 필요합니다. 이런 특징의 제품이 언제 나오니 궁금하면 이메일을 남기라는 식으로 홍보 활동을 했습니다.
저희는 지난 5월 정식 오픈했는데요. 지난 1월부터 관심 있는 고객 이메일을 2만개 이상 모았습니다. 펀딩을 시작할 때 이메일을 보냈죠. 덕분에 오픈 2시간 만에 목표액이었던 5만달러를 달성했죠. 입소문을 타고 더 큰 인기를 모았고요. 물론 제품 경쟁력이 뒷받침 돼야 가능한 일입니다.
-인디고고에서 매출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힘들었겠습니다
▲기술 관련 용역도 좀 했습니다.
-페이 시장을 어떻게 전망하는지
▲우리가 돈을 안 쓰고 살 수 있나요. 버스를 타거나 커피나 술을 마실 때, 약을 먹을 때도 돈을 써야 합니다. 페이는 인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시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계획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사업 같이하자는 연락이 옵니다. 당장 남아프리카공화국에도 퓨즈를 판매하는 인터넷 사이트가 열립니다. 블록체인도 할 생각이고요. 상장까지 갈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