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인공지능(AI) 스피커 시장이 국내외 정보기술(IT) 기업들의 격전지가 되고 있어. 오늘은 그걸 한 번 다뤄볼까 해.
AI 스피커라고 하면 얼리어답터들이나 쓰는 기묘한 IT 신제품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외국에선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어.
시장조사기관인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가 분석한 걸 보면, 지난 1분기 AI 스피커의 출하 대수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무려! 700% 이상 증가한 240만대라고 해. 딱 3개월 만의 기록이야. 작년 4분기 출하 대수도 600%가 늘어난 420만대였으니 앞으로는 얼마나 성장할까.
국내에선 SK텔레콤의 '누구'(작년 8월 출시)가 누적 판매량 15만대, KT의 '기가지니'(올해 1월 출시)가 10만대 정도 팔았다고 하니 전세계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짐작이 가지?
그렇다면 전세계 AI 스피커 시장에서 제일 잘 나가는 회사는 어디일까? 지금은 아마존이야. 현재 점유율이 80%가 넘는다고 해. 하지만 뒤늦게 뛰어든 구글 홈이 시장 영향력을 더욱 키우고, 애플의 홈팟이 올 4분기에 출시되면 아마존의 점유율은 60%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도 있어.
국내 사정은 어떨까? 흥미롭게도 글로벌 시장과 유사한 대목이 있어.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인 아마존이 2014년 11월 내놓은 '에코'가 세계 최초의 AI 스피커인데, 국내 최초 AI 스피커는 SK텔레콤이 내놓은 '누구'야. SK텔레콤의 자회사인 SK플래닛이 전자상거래 업체 11번가를 운영하니 이런 회사들의 사업 전략 또한 비슷하겠지?
자기네 회사 상품이나 서비스를 AI 스피커를 통해 팔고 자기네 쇼핑 플랫폼을 통해 스피커도 파는 식이라는 말이야.
아마존은 거치형 스피커 에코만 내놓은 게 아니야. 가벼운 이동형이면서 전작보다 가격이 저렴한 '에코 닷', 카메라를 장착한 '에코 룩',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에코 쇼' 등을 출시했거든. 다양한 수요를 잡고 수익도 적극적으로 창출하는 전략이야.
에코는 거실에 설치하고 가족들이 쓰려는 수요, 에코 닷은 개인별로 가지고 다니려는 수요를 잡는 거지.
그리고 에코 룩은 카메라가 사용자의 사진을 찍어서 옷을 추천해준다고 하니 아마존의 수익 창출에 딱이지. 무엇보다 에코 쇼는 음성으로만 결제하는 것에는 부담을 느끼는 사용자를 고려해 화면을 장착한 것 같아.
SK텔레콤도 이런 식으로 진화할 거야. 대충 감이 잡히지? 누구 미니만 해도 11번가에서 홈페이지 메인에 걸고 판매한 덕에 출시한지 일주일 만에 5000대 이상 팔렸대.
KT는 아직 아마존과 같은 전략은 안 보여. 다만, 판매 전략이 대단히 영리한 것 같아.
우리가 IPTV를 볼 때 셋톱박스가 필요하잖아? KT는 AI 스피커 자체가 셋톱박스 기능을 담고 있어. KT는 국내 1위 IPTV 사업자이니까 자사 가입자만 낚아도 시장 점유율을 재빨리 확대할 수 있지. 이렇게 확보한 가입자는 AI 스피커도 쓰고 IPTV 콘텐츠도 이용하니 일석이조.
그런 덕분인지 후발 주자인데도 판매량이 5개월 만에 10만대를 넘겼어. SK텔레콤의 누구가 7~8개월만에 10만대를 판매한 것과 비교되지. 그런데 기가 지니는 다른 AI 스피커보다 비싸다는 점이 흠이라면 흠이야. 29만9000원이거든. 다른 제품들은 대체로 10만원 초반에 형성돼 있으니 최대 10만원 이상 비싼 셈이야.
물론 IPTV에 가입하면 월 몇천 원만 내고 이용할 수 있긴 해. 이런 방식은 장점이면서도 단점이지. IPTV 시장 안에서면 놀아야 하니까. 근데 IPTV 안에서만 놀아도 가입자 규모가 720만명이나 되니까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아.
기존 가입자만 잘 전환시켜도 음성 빅데이터가 경쟁력인 AI 스피커 시장에서 대단히 큰 힘을 쓸 수 있지. 이렇게 모은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다른 형태의 제품을 내놓으면 성능이 확 개선되겠지.
이런 가운데 눈길을 끄는 회사가 하나 더 있어.
네이버야. 7~8월 사이에 일본과 한국에 '웨이브'를 거의 동시에 출시했어. 시작부터 외국 시장을 겨냥하는 것은 SK텔레콤이나 KT이 현재는 할 수 없는 영역이니 나름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라고나 할까.
게다가 일본에서는 네이버의 자회사 라인이 꽉 잡고 있거든. 라인이 일본 모바일 메신저 1위인 건 알지? 일본 인구가 1억2600만명 정도니까 5100만명 수준인 우리나라보다 시장이 훨씬 커.
그렇다고 네이버가 국내에선 영향력이 없을까? 네이버는 인터넷 검색하다는 뜻으로 쓰이는 '구글링'처럼 보통명사 수준이잖아. 1위 포털인 까닭에 다른 사람들 눈치가 보여서 그렇지 한 번 마음 먹으면 엄청난 파괴력을 보일 수 있는 게 사실이지.
약간 걸리는 대목은 네이버는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시작한 까닭에 하드웨어를 제작·판매한 경험이 거의 없다는 거야. 어떻게 하는지 지켜봐야겠어.
카카오도 '카카오 미니'를 3분기에 내놓을 예정이라는데, 제품 이미지만 공개된 상태라 아직 언급할 단계는 아닌 것 같아.
국내 기업들을 보면서 아쉬운 대목은 네이버를 제외하면 외국 시장으로 나가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이야. 언어의 한계 때문이지. AI 스피커는 음성을 기반으로 하는 서비스잖아. 외국 사업자의 국내 진입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건 다행이라고 볼 수도 있고. AI의 학습 능력이 점점 고도화되면 어떻게 될지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우리나라도 아마존과 같이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는 AI 플랫폼 기업이 나타날지, 몇 개 기업이 시장을 나눠 가질지 궁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