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 산업인 게임에선 부자가 많다. 잘 만든 게임 하나로 돈벼락을 맞은 창업자나 개발자가 자주 등장한다. 회사를 키워 지분 가치를 점프시키거나, 과감한 투자 회수 및 재창업, 화려한 복귀로 세간의 이목을 끄는 슈퍼리치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외부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아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돈이 얼마나 많은 지도 명확하지 않다. 게임만큼 흥미로운 이 분야 부자들의 베일을 벗겨본다. [편집자]
아직도 많은 사람이 네이버와 한게임(NHN엔터테인먼트)을 계열회사로 아는데 아니다. 완전히 갈라져 현재 다른 회사다. 두 회사의 '오너'가 다르다. 네이버는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총수(동일인)로 지정된 이해진(50) 창업자가 주인이다. NHN엔터는 최대주주(17.27%)이자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이준호(53) 회장이 지배하고 있다.
이 회장의 전공은 게임이 아니라 검색이다. 지난 2000년 서치솔루션이란 검색업체를 설립, 당시 이해진 창업자가 이끄는 네이버컴과 합병하면서 지금의 네이버 검색엔진의 뼈대를 만들었다. 이후 NHN엔터가 네이버에서 인적분할(2013년 8월)로 떨어져 나오면서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자타공인 국내 최고 검색 전문가인 이 회장은 NHN엔터를 게임 이상의 종합 인터넷 기업으로 키우고 있다. 이 회장 개인의 NHN엔터 지분 가치는 2300억원 수준으로 그리 많지 않다. 다만 개인회사와 가족 명의의 보유 주식까지 더하면 6300억원으로 불어난다. 여기에 네이버 보유 주식까지 더하면 1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 자타공인 검색 권위자
이 회장은 국내 검색 기술의 권위자다.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이후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전산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과학기술원에서 검색 기술을 연구했다. 숭실대학교 정보과학대학 컴퓨터학부 부교수로 재직하며 1999년 박석봉 엠파스 설립자와 함께 '자연어 검색'이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서비스를 선보였다.
자연어 검색은 단어 위주가 아니라 문장 그대로 입력해도 그에 맞는 검색결과를 제공하는 서비스다. 이용자 입장에서 너무 편한 검색이다. 당시 검색포털의 선두업체 야후를 위협할 정도의 파란을 일으켰다. 이에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가 러브콜을 보냈다. 이 창업자는 서울대 컴공과 3년 후배이기도 하다. 이 회장에게 투자금 및 연구개발비 지원 조건으로 검색 솔루션을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이후 이 회장이 설립한 서치솔루션이 네이버와 일부 주식을 교환(2000년 5월)했다. 아울러 네이버는 2003년 11월 서치솔루션 잔여 지분을 모두 사들여 100% 완전자회사로 편입했다.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의 네이버 지분도 확대됐다.
이 회장의 네이버 보유 주식은 네이버 코스닥(이후 2008년 코스피로 변경) 상장 해인 2002년 10월 42만주(5.65%)였다. 최대주주인 이해진 창업자(58만주·7.83%)에 이어 개인 자격으로 두번째로 많았다. 당시 김범수 네이버 공동대표(현 카카오 이사회 의장)의 주식(17만주·2.37%)을 웃돌았다.
NHN엔터가 네이버에서 떨어져 나오고 이해진 창업자와 네이버가 각각 NHN엔터 보유 주식을 털어내면서 비로소 이 회장은 지금의 NHN엔터의 최대주주로 오르게 됐다. 지난해 3월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와 이 회장의 NHN엔터 지분 공동보유 관계가 깔끔하게 해소되기도 했다. 16년 동안 '한지붕' 살이를 했던 두 사람의 지분 관계가 완전히 정리되면서 남남으로 갈라서게 된 것이다.
▲ 이준호 NHN엔터테인먼트 회장 |
◇ 게임 넘어 종합 인터넷 기업으로
이 회장이 이끄는 NHN엔터는 주력인 게임을 넘어 핀테크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게임포털 한게임의 캐시카우 역할을 했던 고스톱·포커류가 정부의 사행성 규제로 휘청이자 게임만으론 어렵다고 판단해서다.
이를 위해 3500억원 대규모 유상증자(2015년 1월)를 추진, 이렇게 마련한 실탄으로 최근까지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벌이고 있다. 그동안 티켓판매 사이트(티켓링크)부터 보안(피엔피시큐어), 쇼핑(고도몰), 음악(벅스), 결제(한국사이버결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의 기업을 빨아들이면서 계열을 재편했다.
NHN엔터는 궁극적으로 '디지털 광고' 회사로 거듭나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게임 사이트를 비롯해 쇼핑, 보안, 음악, 결제 등에서 확보한 이용자 정보를 가지고 광고 사업에 필요한 '빅데이터'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아직까진 게임 외 뚜렷하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NHN엔터 재무 실적이 신통치 않다. 주가 또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현재 이 회장의 NHN엔터 보유 주식은 338만주(17%), 지분 가치는 2332억원(22일 종가 기준)으로 눈에 띌 만한 수준이 아니다.
◇ 개인회사+가족 지분 총 6300억
이 회장은 NHN엔터 최대주주임에도 지분율이 20%에 못 미칠 정도로 적다. 하지만 개인회사와 부인 및 자녀들의 보유 지분까지 더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우선 이 회장은 개인 사재를 털어 제이엘씨(JLC)와 제이엘씨파트너스란 회사를 각각 2014년 9월, 2015년 1월에 잇달아 세웠다. 이 두 회사는 설립 직후부터 NHN엔터 주식을 장내에서 진공청소기처럼 흡입하고 있다. 현재 각각 NHN엔터 주식 275만주(14.05%)와 195만주(9.99%)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 회사는 사업 목적으로 소프트웨어 개발 및 판매, 전자상거래 유통, 전자지급결제 대행, 광고대행 등을 올려 놓았으나 아직까지 뚜렷한 벌이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다 보니 주식 매입 자금은 주로 유상증자로 마련한 현금을 가져다 쓴다. 이 회장이 이들 회사의 곳간이 비는 족족 개인 돈을 채워놓고 있다. 제이엘씨파트너스만 해도 올 들어서만 두 차례 자본확충을 벌이기도 했다.
이 회장의 가족들도 경영권 안정을 위해 발 벗고 있다. 전업 주부로 알려진 부인 권선영(53)씨는 지난 2015년부터 회사 주식을 사들여 현재 7만400주(0.36%)를 보유하고 있다.
이 회장의 2세인 수민·수린 남매도 지난해 5월말 주주명부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 현재 이들 남매는 각각 50만주(2.56%)를 들고 있다. 이 회장과 그의 개인회사들 및 가족의 보유 주식 가치를 더하면 총 6324억원에 달한다.
◇ 네이버 지분 감안, 1조 부자
이게 전부가 아니다. 이 회장은 한때 네이버의 대주주로 적지 않은 지분을 갖고 있었다. 네이버에서 NHN엔터가 떨어져 나온 방식은 인적분할이다. 즉 기존 주주들은 지분율대로 존속 법인(네이버)과 신설 법인(NHN엔터)의 주식을 나눠 가졌다. 인적분할 직후(2013년 8월)에도 이 회장의 네이버 지분(3.74%)은 이해진(4.64%) 창업자 다음으로 많았다.
이 회장은 이후 장내에서 네이버 주식을 꾸준히 내다팔아 작년 2월 기준으로 지분이 2.03%(66만주)로 감소했다. 이후 지분 변동은 확인할 수 없다. 만약 이 회장이 네이버 주식을 그대로 갖고 있다면 현 지분 가치는 무려 5036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NHN엔터의 지분 가치까지 모두 더하면 1조원을 훌쩍 넘는다.
다만 이 회장이 최근 수년간 NHN엔터 지분을 늘리기 위해 자사주 폭풍매입에 나선 것을 감안하면 네이버 주식을 가만두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감안해도 이 회장은 1조원에 육박하는 주식 부호임이 틀림없다.
이 회장은 '본가' 네이버에서 물려 받은 게 많다. 네이버의 자회사 일본 라인주식회사는 도쿄 증시 상장(2016년 7월)에 앞서 2012년에 이 회장(당시 네이버 최고운영자)에게 스톡옵션 163만8000주를 동기 부여 차원에서 쥐어줬다. 라인 현 주가가 공모가(3300엔)를 웃도는 3960엔임을 감안할 때 이 회장의 스톡옵션 가치는 65억엔(원화 657억원)으로 적지 않은 규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