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그룹 계열 바이오의약품 제조 및 개발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환경·사회·지배구조(ESG)'의 글로벌 평가에서 유독 낮은 점수를 받고 있어 배경에 관심이 모인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회계부정 의혹으로 수년간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를 바라보는 해외 ESG 평가사들의 엄격한 눈높이가 반영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해외 매출이 국내를 압도할 정도로 많고 글로벌 사업에서 기회를 찾고 있는만큼 글로벌 ESG 평가 결과에 대한 확실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배구조가 발목
25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MSCI가 시행한 2024년도 ESG 평가에서 'BB' 등급을 받았다. MSCI는 국내외 헬스케어 관련 251개 기업을 총 7개 등급(AAA·AA·A·BBB·BB·B·CCC)으로 나눈다. BB는 이 가운데 다섯번째에 해당하는 낮은 단계의 등급(하위 15%)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 5년간 MSCI 평가에서 BB 등급을 단 한 번도 넘지 못했다.
MSCI는 매년 약 8500여곳의 글로벌 상장기업의 ESG 경영실적을 파악해 각 기업이 속한 산업군별로 상대적인 등급을 부여한다. MSCI는 1999년부터 ESG 평가를 시행하며 이 분야에서 가장 공신력 있는 기관으로 꼽힌다.
MSCI의 평가는 유독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박하다. 같은 평가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경쟁사인 스위스계 CDMO사인 론자와 중국계 CDMO사인 우시바이오로직스는 나란히 상위 18%에 해당하는 'AAA' 등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낮은 점수를 받은 이유로는 아무래도 '지배구조' 항목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MSCI는 자체 평가모델을 통해 33개 이슈에 걸친 기업의 ESG 경영성과를 평가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 중 '지배구조' 이슈에서 업계 평균보다 뒤처진다는 평가('LAGGARD')를 받았다.
실제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 2018년 회계처리 기준을 고의로 누락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후 김태한 전 대표 등 다수의 경영진이 검찰에 기소되며 지배구조 리스크가 부상했다. 현재 대법원과 서울고등법원에서 총 3건의 관련 재판이 각각 진행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지배구조 이슈는 다른 평가사에서도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사안이다. 글로벌 ESG 투자 지수인 다우존스지속가능경영지수(DJSI)를 구성하는 S&P(스탠더드앤드푸어스)글로벌이 시행한 2024년도 ESG 평가에서도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전체 100점 만점 중 76점을 받았다. 업계 평균보다 높았지만 세부적인 지표를 살펴보면 지배구조 부문에서 평균(59점)보다 낮은 점수(45점)를 획득했다.
글로벌 투자정보회사인 모닝스타가 운영하는 ESG 평가기관인 서스테이널리틱스는 지난 3년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ESG 등급에 악영향을 끼친 요인으로 '회계·세무와 관련한 경영윤리사건'을 꼽기도 했다. 회계부정 관련 재판이 글로벌 ESG 등급 상승을 막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지점이다.
국내 ESG 등급과 다른 이유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해외와 달리 국내에서는 ESG 우등생이라는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ESG기준원(KCGS)이 수행한 2024년도 ESG 평가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배구조 부문에서 'A' 등급을 받았다. 전체 7개 등급 중 세 번째(상위 21%)로 높은 등급이다. 이보다 앞서 2023년에는 두 번째로 높은 'A+' 등급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국내와 해외 ESG 평가기관 사이에서 등급격차가 일어난 이유는 기관별로 다른 평가시스템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 국내 ESG 평가기관 소속 연구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지배구조 점수가 다른 것은 회계부정 관련 사건에 대한 가중치를 기관별로 얼마나 두는지, 이 사건을 언제까지 평가에 반영할 것인지 등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국내 ESG 평가에서는 우수한 성적을 받았다고 마냥 안심하긴 이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매출의 대부분이 해외에서 발생하는 만큼 고객사들이 국내보다 해외 ESG 평가지표를 눈여겨볼 가능성이 커서다. 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국내 매출액 비중은 전체 중 단 3.3%에 그친다.
최근 글로벌 제약사들은 CDMO 파트너사를 선정할 때 ESG를 주요 평가요소 중 하나로 받아들이는 추세다.
글로벌 제약바이오 컨퍼런스를 운영하는 CPHI가 지난 2023년 글로벌 제약사 임원 25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행했다. 여기서 임원 60%는 향후 2년 내로 CDMO 기업과 계약을 맺을 때 ESG를 비롯한 지속가능성 지표를 포함할 것이라고 답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내부에서도 이에 대한 고민이 깊다. 이는 지난해 발간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묻어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여기서 'KCGS A+ 등급 유지'와 함께 'MSCI 등급 향상', '서스테이널리틱스 평가 대응'을 지속가능경영 목표로 설정했다.
국내 제약업계 관계자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아직 투명경영과 윤리경영을 바탕으로 하는 선진 지배구조로 이행하는 과도기 단계"며 "글로벌 트렌드에 부합하지 않으면 지속가능하기 어렵기 때문에 생존전략 차원에서 이러한 변화는 불가피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