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형 제약사 가운데 상당수가 자기주식(자사주) 보유에 비해 소각 처분에 대해선 인색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가 부양 및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자기주식을 사들이는 시도는 있으나 궁극적으로 발행주식수를 줄여 주당 가치를 높이기 위한 자사주 소각 사례는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일부 주주들 사이에선 진정한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대형 제약사들이 자사주 소각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매입만 하고 소각하지 않은 자사주는 시장에 다시 유통될 수 있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주주환원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사주로 두둑한 곳간
21일 비즈워치가 매출 기준 5대 제약사(유한양행·녹십자·종근당·한미약품·대웅제약)와 이들의 지주사(유한양행 제외) 등 총 9개 기업을 분석한 결과 이들 가운데 지난 20년(2005~2024년) 동안 자사주를 소각한 곳은 한미약품 그룹의 지주사 한미사이언스와 녹십자 그룹의 지주사 녹십자홀딩스 두 곳으로 나타났다.
한미사이언스는 지난해 4월, 녹십자홀딩스는 2006년에 각각 자사주 일부를 소각한 바 있으나 나머지 기업들은 소각 처분을 한번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나마 유한양행과 한미약품은 각각 지난해 발표한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정책에 따라 오는 2027년까지 자사주를 소각하겠다고 주주들에게 약속한 상태다.
보통 자사주 매입은 단기적으로 유통주식 수를 줄여 주가를 안정화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회사가 사들인 자사주를 재매각 등을 통해 시장에 다시 푸는 사례가 있어 장기적인 주주환원 효과는 떨어진다. 실제로 종근당홀딩스와 녹십자홀딩스는 각각 지난 2017년, 2013년에 보유하던 자사주 가운데 일부를 매각한 바 있다.

5대 제약사 가운데 발행 주식 대비 자사주 보유비중이 가장 큰 곳은 대웅제약의 지주사 대웅이다. 작년말 보통주 1725만1270주를 자사주로 보유하고 있다. 발행주식 대비 자사주 비중은 30%에 육박한다. 뒤를 이어 △유한양행(8.0%) △종근당홀딩스(4.9%) △녹십자홀딩스(4.5%) △한미약품(1.0%) 등의 자사주 비중이 높다.
이들 기업이 자사주를 사들이기만 하고 소각까지 나서지 않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기업 입장에서 시장 변동성에 유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재무적 여력을 마련하고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요인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대웅제약은 지난 5년(2020~2024년)간 보유하던 자사주 가운데 총 74만3575주(6.4%)를 단계적으로 그룹 지주사인 대웅에 매각했다. 이를 통해 대웅제약은 부채비율 등 재무건전성 지표를 개선했다. 아울러 대웅은 주력 계열사인 대웅제약 지분율을 확대했다. 2020년 기준 보유 지분율은 45.0%였으나 5년간 대웅제약의 자사주를 거둬들이면서 작년말 기준 보유 지분율은 52.6%로 확대됐다.
자사주 취득방법 개선 요구도
제약사의 소액주주들 사이에선 자사주 소각 외에도 자사주 취득방식 자체를 바꾸라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5대 제약사 대부분은 증권사 등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자사주를 취득하고 있다. 이에 일부 소액주주들은 매입 투명성을 위해 제약사가 자사주를 직접 사들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간접 매입이 아닌 직접 매입에 나서라는 것이다.
이는 직접취득과 비교해 자사주를 간접 매입한 제약사는 목표치보다 자사주를 적게 매입해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아서다. 주주로서는 회사가 자사주를 얼마나 매입할지 예상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종근당홀딩스는 지난 2023년 주가 안정을 위해 1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취득 계획을 공시했다. 하지만 실제 매입에 투입한 금액은 63억원으로 자사주 취득 이행률이 63.7%에 그쳤다. 이보다 앞서 2022년 8월부터 신탁계약을 통해 1년간 진행한 자사주 취득 이행률은 33.4%에 불과했다.
직접 취득과 달리 간접취득은 제도상 신탁업자가 계약기간 동안 자사주를 매입할 뿐만 아니라 처분해 이익을 실현할 수 있다. 이로 인해 기업과 주주 간에 불필요한 오해가 쌓이기도 한다.
유한양행의 일부 소액주주들은 현재 회사와 계약을 맺은 신탁업자가 자사주를 공매도 등에 활용한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회사 측에 신탁계약 해지를 요구하고 있다. 이달 20일 열린 정기주주총회에선 이 사안을 두고 주주들 사이에서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유한양행은 홈페이지 등을 통해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으나 갈등이 제자리를 걸으며 계약 해지 여부를 이사회에서 논의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5대 제약사에 속하는 한 제약 업체 관계자는 "그동안 기초 체력이 갖춰지지 않은 탓에 자사주 소각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었던 게 사실"이라며 "이전보다 여력이 생긴 만큼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 규모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