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산업) 구조를 그대로 두고는 한국의 잡스, 주커버그, 스필버그는 탄생할 수 없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키워드 ‘창조경제’와 관련해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지난 4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한 발언이다.
이 창조경제의 개념을 두고 말이 많다. 경제학 사전에도 없는 ‘창조경제’라는 말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것이다. 개념 논란이 왜 나왔는지 분명하지는 않다. 그러나 이런 논란 자체가 조금은 우습다. 정치적 슬로건을 두고 경제학 사전까지 들먹이면 답이 나오겠는가?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는 그저 ‘창조적인 또는 창의적인 경제 활동’ 정도로 이해해 주면 된다.
창조경제는 개념보다는 어떻게 실천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창조적인 또는 창의적인 경제활동을 가로막는 우리 경제구조의 부족한 점을 어떻게 다듬을 것인가’가 핵심이다. '제도와 규제'나 운용하는 ‘사람’의 문제일 수도 있다. 사실은 두 가지 모두 창조와 창의적인 경제활동을 방해하는 측면이 많다.
제도와 규제 문제는 시스템이다. 이는 대부분 선도적인 대응과는 거리가 있다. 법이나 규정을 개정하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결국, 이를 운용하는 ‘사람’이 풀어줘야 한다. 입법 취지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면 융통성 있게 법률적, 시스템적인 문제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것도 사람뿐이다. 융통성에는 보통 책임도 따르는 것이어서, 이에 관한 포괄적인 면책조항이 시스템적으로 받쳐줘야 한다.
이런 것들이 보완된다고 전제하면 궁극적으로 ‘사람’의 문제가 남는다. 그 사람이 얼마나 창조적이고 창의적인 사고와 행동 양식이 있느냐에 따라 ‘창조경제’의 성공 여부가 판가름날 것이다. 인사 판짜기는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와 정부의 컨트롤 범위 내에 있는 금융회사 인사가 도마에 자주 오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 100일을 넘기면서 금융권의 인사 판짜기도 마무리 국면에 들어가고 있다. 금융당국 수장 신제윤 금융위원장의 입을 통해 어느 정도 방향이 읽혔기 때문에, 큰 폭의 물갈이 인사에 충격이 크지는 않다. 그러나 내용에는 많은 사람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 같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 금융’에 들어맞는지도 잘 모르겠다.
새로 자리를 차지한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 내정자나 임종룡 NH농협금융지주 회장 내정자의 자질과 능력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모두 훌륭한 분들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금융위기 시대에 민간 금융회사의 수장으로서 어울리는지는 생각할 대목이 많다.
‘창조경제, 창조금융’이라는 슬로건을 보면 리스크의 관리로만 문제를 풀겠다는 의도는 아니라고 봐야 한다. 창의적인 발상으로 위기를 넘겠다는 전략으로 해석하는 게 맞다. 이러한 전략과 전술에 관료의 습성과 관성은 득이 될 것이 별로 없다. 위험(Risk)을 먹고 사는 금융업에서도 리스크 매니지먼트(management)보다는 리스크 테이킹(taking)이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우리 금융사(史)에서의 경험을 보더라도 리스크를 과감히 온몸으로 안은 경영자들이 성장에 보탬을 준 것은 사실이다. 옛 주택은행장으로 은행업에 첫발을 들여놓은 김정태 행장(왼쪽 사진 오른쪽)이 그렇다. ‘소매+소매’여서 문제라는 ‘국민+주택‘ 합병을 과감히 진두지휘하며 수완을 발휘했다. 삼성 출신으로 공적자금을 받은 우리은행을 맡았던 황영기 행장(사진 오른쪽)도 비은행 부문을 과감히 확대하면서 성과를 냈다.
신한금융그룹의 라응찬 전 회장은 우리나라 최고(最古)은행인 조흥은행을 인수했다. 실질적인 합병을 3년씩이나 늦추는 양보를 하면서도 결단을 내렸다. 하나고등학교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승유 전 회장도 마찬가지다. 보람은행과 서울은행, 외환은행을 연이어 인수하며 현재의 성장을 이끌었다. 반대와 반발이 많았지만 과감히 리스크를 테이킹 한 결과다.
이들이 범했던 잘못을 두둔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은 규제에 순응하기보다는 규제를 돌파하는 선택을 자주 했다. 법규나 규정에 ‘이런 것들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 ‘하지 말 것’이 아니라 ‘이것은 해도 되겠다’에 더 눈길을 뒀다. DNA가 다르다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이 그들의 적지 않은 잘못에도 성과가 더 빛나는 이유는 아닐까? 이것이 2013년 박근혜 정부에서 김정태, 황영기 같은 분들이 그리운 이유다.